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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A010101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해평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재호

해평리해평면에서 낙동강에 접한 자연마을로 흔히 ‘해평큰마’로 불린다. 구미 선산 사람들이라면, 예로부터 낙동강 서쪽 지역을 대표하는 곳이 선산이고, 강의 동쪽 지역을 대표하는 곳은 해평이라는 데 조금도 의심함이 없다. 이렇듯 해평 지역은 예로부터 구미를 비롯한 선산 지역의 문화적 근거지 역할을 했으며, 특히 해평큰마로 불리는 해평리는 그 문화의 산실이었다고 여겨진다.

해평면이 구미 선산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적 근거지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해평을 본관으로 하는 고려시대의 성씨들이 무려 일곱이나 된다는 점(김씨, 길씨, 윤씨, 전씨, 손씨, 유씨, 섭씨)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해평김씨의 시조 김훤술은 고려 태조 왕건의 공신이었고, 해평윤씨는 고려 명종 때부터 출사하였다. 그리고 해평길씨야은 길재를 비롯하여 고려말기 신흥사대부에 속하면서 ‘영남사림파’ 형성의 주초가 되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 성씨들은 대개 고려초기부터 조선중기까지 활약한 재지사족들인데, 임진왜란 이후 조선후기에도 향촌의 명현들의 숫자가 많이 줄어들긴 하였으나 결코 끊이지는 않았다. 지금은 해평을 본관으로 하는 일곱 개 토성(土姓)들 중에서 세 개(김씨, 길씨, 윤씨) 성씨만이 남아 있다.

마을은 풍수지리상의 형국론으로 보아 행주형(行舟形)을 이루고 있다. 혹은 목마른 말이 낙동강의 물을 마시는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에 속하는 명당이라고도 한다. 항해하는 배의 형상을 한 행주형이기 때문에 옛날부터 마을에 우물을 파지 않았다. 우물을 파더라도 염분이 많은 수질이라서 식수로 이용하는 데는 일정부분 어려움이 따르기도 하였다. 팔공산의 지맥은 서북으로 향하여 조계산(曺溪山)에서 다시 회룡고조(回龍顧祖)로 해평면의 진산인 미석산(彌石山)이 되었고, 미석산이 다시 마을의 주산인 갈마산(渴馬山)을 낙맥(落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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