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C020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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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동 신동(새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권삼문 |
‘우리나라에는 재사(齋舍)가 많다. 이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풍경이다. 외국인이 볼 때는 일년내내 비워둘 집을 왜 짓느냐고 하면서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재사는 숭조목족(崇祖睦族)이라는 절대 가치의 상징이다. 이것은 우리의 자랑이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문화유산인 것이다. 조상을 위한 재사 한 채를 짓기 위해서 모든 종인(宗人)이 단결하고 온 정성을 다 쏟는다. 얼마나 아름답고 거룩한 일인가.’라고 인동장씨의 현조를 소개하는 『옥산 연봉』에서 기술하였듯이 재실은 해당 문중의 족세(族勢)와 위세를 가늠하는 한 지표가 되기도 한다. 재실은 현대에 와서 주로 묘사를 모시는 공간으로서 제한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으나 이의 건립과 유지를 위해서 해당 문중이 기울여 온 노력의 과정과 정신은 지속되고 있다. 오늘날 재사 공간은 문중회합 등의 장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양양재(洋洋齋)]
신동 104번지 에 있다. 새마의 서쪽에 있다. 신동 입향조인 장현도(張顯道)의 재사이며, 양양이라 함은 넓고 크다는 뜻이라 한다. 편액의 글씨는 대원군의 친필이라고 한다. 이 재실의 주인공인 월포공의 10대손이 참판을 지냈으며 대원군과 친한 사이라서 글을 받았다고 한다.
1890년에 건립된 재사로 1924년에 중수하였다. 주위에 방형의 토석담장을 둘렀으며 앞에 3칸 규모의 산형(山形)대문을 세워 출입토록 하였다. 재사는 정면 6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집인데, 평면은 어칸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온돌방 2칸을 두고, 우측에는 온돌방 1칸과 마루 1칸을 두었는데 우측의 온돌방과 마루의 주위에는 헌함을 둘러 우측마루가 누마루의 느낌이 들도록 하였다. 가구는 오량가의 소로수장집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 이곳에서 월포 선생을 추모하는 석채를 매년 4월 첫째 일요일에 모신다.
[영모재(永慕齋)]
마을회관 뒤편에 있다. 함안인(咸安人) 조연(趙淵)과 그 손자인 지(址)와 역(墿)을 함께 추모하는 묘재이다. 1923년에 건립하였으나 최근에 새롭게 고쳐 지었다.
재사는 정면 4칸 측면 1칸 반의 팔작기와집인데, 주위에 기와를 얹은 돌담을 둘렀으며 앞에는 3칸 규모의 산형대문을 세워 재사로 출입케 하였다. 재사의 평면은 어칸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 1칸씩을 둔 중당협실형인데, 전면에는 반칸 규모의 퇴칸을 두었으며 퇴칸의 전면에는 각 칸마다 4짝의 유리창문을 설치하였다.
[이산정(二山亭)]
인동인 장우극(張宇極)의 존모지소(尊慕之所)이며, 이산(二山)이란 천생산(天生山)과 유학산(遊鶴山) 사이에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정면 4칸 측면 1칸 반의 팔작기와집인데, 주위에는 방형의 토석담장을 둘렀으며 전면에는 3칸 규모의 산형대문을 세워 재사로 출입케 하였다. 평면은 어칸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 1칸씩을 둔 중당협실형인데 전면에는 반칸 규모의 퇴칸을 설치하였으며, 가구는 오량가의 이익공이다.
[아천정(我泉亭)]
인동인 장준식(張濬植)의 추모지소(追慕之所)이며, ‘아천’은 주자(朱子)의 ‘거연아천석(居然我泉石)’이란 시구(詩句)를 취한 것이라 한다.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팔작기와집인데, 주위에는 기와를 얹은 돌담을 둘렀으며 전면에는 3칸 규모의 산형대문을 세워 재사로 출입케 하였다. 평면은 어칸의 2칸 마루방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2칸의 온돌방을 우측에는 1칸의 온돌방을 연접시킨 중당협실형이다. 전면에는 반칸 규모의 퇴칸을 설치하였으며, 전면 기둥의 하부에는 석간주를 세워 전면의 퇴칸은 누마루를 이루게 하였으며 퇴칸의 전면에는 평난간을 설치하였다. 가구는 오량가의 이익공집이며, 처마는 겹처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