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D020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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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신평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영진 |
영농회의 생성은 구미산업공단 조성으로 인한 비자발적 이주민들의 이주 전 생업과 이주단지 조성에 의한 이주민들의 생계대책과 맥을 같이한다. 신평2동으로 이주한 이주민들은 전형적인 농촌거주자들이다.
1970년대 초반 신평2동으로 이주하기 전까지만 해도 어떤 사람들은 과수원을 경영하면서 부농 소리를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전형적인 전통농업인 벼농사를 지으면서 생계를 꾸렸다. 부업으로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길렀으며, 밭에는 땅콩을 심어 농가 소득을 올리기도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생업배경 때문에 이주단지를 선정할 때 단지 주변에 농사지을 땅을 대토할 수 있기를 희망하였다. 이주 당시 공단조성과 이주단지가 들어선다는 소문 때문에 땅값이 많이 올라 원래 가지고 있던 만큼의 농토를 구입하지는 못했지만, 많은 이주민들은 농사를 짓기 위해 농토를 구입하였다. 이주단지 주변에 있는 농토가 너무 비싸 선산 무을과 칠곡군 약목 등지의 좀 더 싼 농토를 구입한 사례도 있다. 농토를 구입하지는 못하였지만 타인의 농토를 소작하거나 임대 경작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지금도 소작과 임대경작을 하는 가구가 더러 있을 정도이다.
이렇듯 이주 1세대 주민들의 생계방식이 농업이었던 탓에 이주 후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농업과 연계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배경은 신평2동 영농회를 결성하고 유지 존속시키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농사는 개인의 힘으로 경영할 수도 있지만 농업협동조합에 가입하여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원활하게 영농자금을 대출한다든지, 좀 더 저렴하고 우수한 농자재를 구입한다든지, 재배품종 구입이나 농업정보 교환 등의 문제가 성공적으로 농사를 짓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신평2동 이주민 1세대들은 이주 전부터 지역의 농업협동조합 조합원으로 소속된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은 이주 후에도 조합원으로 활동하면서 농사일에 종사하였다. 언제부터 영농회가 조직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이와 같은 전통이 이어져 오면서 도시마을의 영농회가 오늘날까지 유지 존속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