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8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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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宗發 |
이칭/별칭 | 경온(景蘊),용연(容淵)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출생 시기/일시 | 1740년 - 김종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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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759년 - 김종발 이상정의 문하에서 수학 |
활동 시기/일시 | 1777년 - 김종발 문과에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812년 - 김종발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41년 - 김종발 문집 간행 |
출생지 | 김종발 출생지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서변리 |
수학지 | 김종발 수학지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
묘소|단소 | 김종발 묘수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송내 1리 |
성격 | 문신|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안동(安東)|상락(上洛) |
대표 관직 | 장령 |
[정의]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舊]. 자는 경온(景蘊), 호는 용연(容淵). 김현좌(金賢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이모(金履模)이고, 아버지 김남응(金南應)이며, 어머니는 순천 김씨(順天 金氏) 주억(冑嶷)의 딸 이다. 부인은 숙인(淑人) 여주 이씨(驪州 李氏)로서 이헌주(李憲周)의 딸이다. 천사(川沙) 김종덕(金宗德)의 동생이다.
[활동 사항]
김종발(金宗發)[1740~1812]은 어려서 재능과 지혜가 출중하고 도량이 넓었다고 한다. 20세인 1759년(영조 35)에 동생 김종섭과 함께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아 성리학에 고명하였다.
1777년(정조 1)에 문과에 급제하여 가주서(假主書)로 관직에 나갔다. 1779년 장릉 별검이 되었으며, 1782년에는 종부시 주부를 지냈다. 1797년(정조 21)에는 사헌부 지평에 임명되었지만, 바로 사직 소를 올렸으며, 1798년 장령으로 승진, 임명되었을 때에도 병을 핑계로 사직 소를 올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으로 돌아온 후 원자(元子)의 올바른 교육을 위한 기구를 만들 것과 동궁(東宮)의 관료들이 바르게 근무할 수 있게 사전 대비책을 세울 것을 상소하였다. 또한 동문인 유장원(柳長源), 이우(李堣), 황학(黃㶅) 등과 더불어 이상정의 학설 계승 발전에 노력하였다.
[학문과 저술]
영귀정의 역사를 전하는 「영귀정 중건 소식(詠歸亭 重建 小識)」을 남겼으며, 네 형제 중 세 명이 연이어 먼저 세상을 떠나자 아들과 조카들에게 김종경, 김종섭, 김종덕 형제들의 유집(遺集) 초고(草稿)를 잘 보존하고 행장, 묘갈, 서문을 과장하지 않도록 지도하면서 가학(家學)을 잇게 하였다.
『유가 요람(儒家 要覽)』, 『예서(禮書)』를 남겼으나 전하지 않고, 1941년 6대 손자 김기호(金基鎬) 등이 간행한 『용연 선생 일고(容淵 先生 逸稿)』 4권 2책이 전한다.
[묘소]
묘는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송내리[장각골[獐角谷]]에 있다
[상훈과 추모]
유사(遺事)는 문인인 조우각(趙友慤), 행장은 부사(府使) 유범휴(柳範休)[1744~1823], 묘갈명은 도사(都事) 김도화(金道和)[1825~1912] 등이 각각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