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10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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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郡石 |
이칭/별칭 | 이군식(李軍植),이군식(李君植)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구련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명구 |
[정의]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군석(金郡石)[1890~1967]은 경상북도 의성군 조문면 구련리 출신으로, 조문면에서의 3·1 운동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조문면의 시위는 대리동 교회 영수인 박낙현(朴洛鉉)과 같은 교회 집사 윤용구와 교인 윤영주·오상룡 등이 3월 18일 의성 장날 장터에서 시위할 것을 결의하여 시작되었다. 4명은 동지 규합에 나서 같은 교회의 김자룡·신진수 그리고 의성 도동 교회[현 의성읍 교회] 김천특 및 안평 석탑 교회 최경원 등과도 연락하며 뜻을 모았다. 거사 전날인 3월 17일 만세 시위 계획은 일본 경찰에 의해 사전에 탐지되었지만, 주도 인사들은 3월 18일 장터로 잠입하여 거사를 강행하였다. 박낙현이 독립 만세를 선창하자 시위 군중도 이에 호응하며 독립 만세를 고창하고, 시내로 행진하였다.
김군석은 이때 군중의 선두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시위를 주도하다가 현장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5일 대구 지방 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죄로 징역 6월형을 선고 받고 항소하였으나, 5월 22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9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