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1031 |
---|---|
한자 | 金道式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박곡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명구 |
[정의]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도식(金道式)[1889~1923]은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박곡리 출신으로, 의성군에서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안평면 대사동에서 3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하고 그 다음날인 3월 19일에는 400여 명의 군중들과 함께 도리원 장터로 시위 행진한 다음 도리원 주재소로 몰려가서 수감 중인 동지들을 탈환하려는 계획을 수립하고 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 행렬이 ‘흰재’ 마루에 다다랐을 때 이미 정보를 입수하고 총으로 무장한 도리원 주재소 순사들이 출동하여 저지하려 하였다. 이에 격분한 시위 군중은 몽둥이와 돌멩이를 가지고 주재소로 몰려가 포위하고, 투석으로 건물을 파괴하며 격렬한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 주재소에 있던 일본 경찰에 발포로 말미암아 많은 사상자를 낸 채 시위 군중은 해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선두에 서 있던 김도식을 비롯 이양준·이봉수·김일석·이용학·이리경·권사연·권해운·정흥록 등 9명이 총상을 입었다.
김도식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5월 10일 대구 지방 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죄로 징역 2년 6월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