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1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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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元鉉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수정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권대웅 |
출생 시기/일시 | 1926년 8월 3일 - 이원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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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사건 시기/일시 | 1943년 5월 - 이원현 대구 상업 학교 항일 학생 결사 태극단 사건 |
활동 시기/일시 | 1944년 1월 - 이원현 인천 소년 형무소에 투옥 |
몰년 시기/일시 | 1945년 5월 5일[음력] - 이원현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63년 - 이원현 대통령 표창 추서 |
출생지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수정리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수정리 |
학교|수학지 | 대구 상업학교 - 대구 |
활동지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수정리 |
[정의]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이원현(李元鉉)[1926~1945]은 의성군 금성면 수정리에서 태어났다. 대구 상업 학교 재학 중 1943년 4월에 동교생 이상호(李相虎)·김상길(金相吉)·서상교(徐尙敎) 등이 앞서 조직했던 항일 학생 결사 태극단(太極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42년 5월에 결성된 태극단은 조국 독립을 위한 비밀 결사로서 전국적 조직을 통한 무력 항쟁을 목적으로 하였다. 따라서 단원들은 우선 조직 확대를 위해 동지 포섭 활동에 힘을 쏟았다. 1943년 5월에는 그동안 가입한 단원 전원이 대구시 앞산 비파산(琵琶山) 약수터에 모여 결단식을 갖고, 구체적 투쟁 방안에 관하여 협의하고 조직을 정비하였다.
태극단의 단원들은 용두산(龍頭山)·비파산 등 비밀 장소를 이용하여 학술 연구 토론회, 각종 체육회를 개최하여 동지 간의 유대 의식과 민족적 교양의 함양 및 체력 증강에 힘을 쏟았다. 또한 궁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군사학 연구에도 정진하여 군사 관계 서적의 번역, 글라이더 및 폭발물 제조에 관한 연구도 추진하였다. 그러나 1943년 5월 배반자의 밀고로 태극단의 조직과 활동이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학교에서 수업 도중 다른 단원들과 함께 붙잡혔다.
이원현은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44년 1월 대구 지방 법원에서 징역 단기 2년, 장기 3년형을 언도받고 인천 소년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3월 병 보석으로 출옥하였으나,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1945년 6월에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부에서는 이원현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