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6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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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寺刹 |
이칭/별칭 | 사원(寺院),가람(伽藍),절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집필자 | 이동철 |
건립 시기/일시 | 591년 - 부귀사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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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기/일시 | 650년 - 수도사 창건 |
건립 시기/일시 | 693년 - 은해사 거조암 창건 |
건립 시기/일시 | 711년 - 은해사 운부암 창건 |
건립 시기/일시 | 780년 - 거동사 창건 |
건립 시기/일시 | 809년 - 은해사 창건 |
건립 시기/일시 | 809년 - 죽림사 창건 |
건립 시기/일시 | 816년 - 은해사 기기암 창건 |
건립 시기/일시 | 834년 - 은해사 묘봉암 창건 |
건립 시기/일시 | 834년 - 은해사 중암암 창건 |
건립 시기/일시 | 1520년 - 은해사 백흥암, 인종 태실로 조성 |
건립 시기/일시 | 1545년 - 은해사 서운암·백련암·백운암 창건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부처를 숭상하고 불법을 익히는 장소.
[개설]
사찰은 사원(寺院)·가람(伽藍)이라고도 하며 우리말로는 ‘절’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은 고구려의 불교 도입 이듬해인 373년(소수림왕 3) 평양에 세워진 이불란사(伊弗蘭寺)와 성문사(省門寺)이다. 영천의 사찰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창건된 것은 은해사(銀海寺) 소속의 거조암(居祖庵)이다.
[내용]
1. 삼국 시대
영천 지역 사찰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창건된 은해사 거조암 창건이 693년, 혹은 경덕왕대[742~765]이고, 은해사는 809년(헌덕왕 1)에 창건되었으므로 늦어도 8세기 후반에는 영천의 불교가 자리 잡았고, 이에 상응하는 사찰이 건립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전하는 사찰로는 죽림사(竹林寺)[809년, 금호읍 봉죽리], 영지사(靈芝寺)[무열왕대, 대창면 용호리], 부귀사(富貴寺)[591년, 신녕면 왕산리], 수도사(修道寺)[650년, 신녕면 치산리], 거동사(巨洞寺)[780년, 자양면 보현리], 묘각사(妙覺寺)[선덕여왕대, 자양면 용화리], 은해사 기기암(奇奇庵)[816년, 청통면 치일리], 은해사 묘봉암(妙峰庵)[834년, 청통면 치일리], 은해사 운부암(雲浮庵)[711년, 청통면 치일리], 은해사 중암암(中岩庵)[834년, 청통면 치일리], 봉림사(鳳林寺)[선덕여왕대, 화북면 자천리] 등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창건 연대가 정확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이 시기에 이 모든 사찰이 건립되었는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신라 오악(五岳)의 하나로 알려진 팔공산(八公山)을 중심으로 수많은 사찰이 경영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2. 고려 시대
고려 시대는 불교 융흥의 시기였으나, 개경(開京)을 중심으로 사원 정책이 이루어진 탓에 변방 지역인 영남 지역의 사찰 상당수는 쇠락·폐사한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 때 영천 지역의 사찰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찰은 은해사 거조암이다. 거조암은 보조국사 지눌(知訥)[1158~1210]이 정혜결사(定慧結社) 이전에 3년 동안 수행하고 저술한 「정혜결사문(定慧結社文)」과 원참조사(元旵祖師)가 저술한 『현행경(現行經)』에 기록되어 있어 고려 시대 불교계에서 거조암이 주요한 사찰이었음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은해사 진불암(眞佛庵)은 고려 문종 때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시대의 각종 읍지(邑誌)에 나타나는 고려 시대에 존속했던 사찰은 은해사·운부사·백흥암·안흥사·정각사(鼎覺寺)·죽방사(竹防寺)·영지사·거조사·공덕사(公德寺)·원명사(圓明寺)·상원사(上元寺)·상용암(上聳庵)·충효암(忠孝庵)·중암암·서운암(瑞雲庵)·백운암(白雲庵)·기기암·백련암·묘각암(妙覺庵)·선흥암(善興庵)·정각사(正覺寺)·죽림사·거동사·삼귀암(三歸庵)·수도사·진불암·부귀암·불굴사(佛窟寺)·법화사(法華寺)·봉림암(鳳林庵)·정수암(淨水庵)·묘봉사·백지사(栢旨寺)·원명사 등 34개이다. 이들 사찰 중 이름 변경이나 중복되는 것을 고려하면 30개가 존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3. 조선 시대
조선 시대는 유교 국가의 기초를 확립하기 위해 숭유억불책을 강행하므로 상당수의 사찰이 훼철되거나 정리되는 단계였다. 고려 시대 영천 지역에 존속했던 사찰이 대부분 존속했던 것으로 보이며, 1545년(인종 1)에는 은해사 서운암·백련암·백운암이 창건되기도 했다.
조선 시대 각종 읍지에는 상용암·충효암·정각사·공덕사·법화사·선흥사·삼귀암·정수암의 8개 사찰이 폐사하고, 22개 사찰이 존속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울러 이 시기는 임진왜란 및 병자호란 등 수 차례의 병란으로 상당수 많은 사찰이 전소 또는 폐사되는 불운을 겪었다. 따라서 삼국 또는 고려 시대에 창건되어 조선 시대까지 존속해 온 사찰이라 하더라도 대부분 양란(兩亂) 시기에 큰 피해를 입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양란 후 사찰 나름의 피나는 자구책으로 소규모 본전 및 소수의 건물을 중창, 중건 등으로 어렵게 복구해 그 명백을 유지함으로써 현상 유지에 급급했던 시기였다.
특히 은해사 백흥암은 1520년(중종 15) 인종의 태를 뒤편 산에 봉안했다가 인종이 등극하자 새롭게 조성되면서 어압봉안소(御押奉安所)로 지정되어 국가의 특별한 보호와 지원을 받기도 했다.
4. 일제 강점기
일제 식민지 지배 시기에는 조선 사찰령으로 30본사[1924년에 31본사] 제도가 시행되어 경상도에는 영천에 은해사가 본사에 포함되었다.
5. 현대
해방 이후 불교 정화 과정에서 한국 불교 종단은 조계종(曹溪宗)과 태고종(太古宗)으로 양분되었다. 이때 조계종은 남한 전 지역 사찰들을 25교구 본사로 조직했는데, 경상북도에는 네 개의 교구 중에 제10교구 은해사가 있어 당시 영천 지역 불교의 사세를 짐작케 한다. 현재 은해사에 소속된 사찰로는 거조암을 비롯하여 백흥암·기기암·묘봉암·백련암·서운암·운부암·중암암·진불암·묘적암·거동사·봉림사·수도사·죽림사·신흥사·영지사·부귀사 등이 있고, 포교당으로 영천포교당과 신녕포교당이 있다.
그 외 만불사(萬佛寺)와 한광사(閑曠寺)가 조계종이 아닌 사찰이다.
2011년 현재 영천 지역의 사찰은 22개이며, 전통 사찰로 지정된 것은 13개, 폐사[지]는 15개이다. 종파별로는 법왕종의 한광사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조계종 사찰이다.
지역별 사찰의 분포를 보면, 청통면 팔공산 지역에 은해사·운부암·백흥암·기기암·거조암·원명사·상원사·상용암·충효암·중암암·서운암·백운암·백련암의 13개소이고, 화북면에 정각사·공덕사·봉림사 등 3개소, 자양면에 묘각사·거동사·법화사 등 3개소, 신녕면에 수도사·진불암·부귀사 등 3개소와 그 외 지역이다. 이들 사찰은 영천 지역의 팔공산·보현산·모자산·치산 등 대부분 명산대천(名山大川) 지역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