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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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전해오는 아리랑 민요. 구미 지역에서 불리는 아리랑인데, 최근에는 「영남 아리랑」이라고도 한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불렀던 여러 가지 노래가 하나로 모여서 엮어졌기 때문에, 각 절마다 노래 부른 주체가 처녀·노인 혹은 아낙 등 다채롭다. 처녀·총각의 연애, 인생의 허무함, 좋은 땅은 신작로로, 괜찮은 처녀는 갈보가 되는 현실 비판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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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모내기를 하기 전에 못자리에서 모를 찌면서 부르는 노동요. 모찌는 일은 적당히 자라난 모를 논에 옮겨 심기 위하여 뽑아내는 작업인데, 모를 모숨모숨 뽑아내는 것을 ‘모찐다’라고 한다. 「모찌는 소리」 사설에도 “모를 찌세 모를 찌세 이 모판에 모를 찌세”라고 하여 일의 형태가 그대로 노래로 불린다. 1993년 7월 23일 MBC ‘한국민요대전’ 제작팀에서 구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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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향랑이라는 아낙이 강물에 몸을 던지며 불렀다는 노래. 「산유화」는 조선 숙종 때 상형곡에 사는 향랑이라는 아낙네가 시집에서 버림받고 친정으로도 가지 못해 수절하다가 강물에 몸을 던지기 전에 남겼다는 노래이다. 일반적으로 「산유화」라고 하면 농부들이 김매며 부르는 경상도 지역을 본원지로 한 노동요이다. 구미에서 채록된 것은 독특한 것이다. 「산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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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삼을 삼을 때 부르는 노동요. 「삼삼기 노래」는 노동요의 일종으로 부녀자들이 삼을 삼을 때 부르는 부녀요(婦女謠)이기도 하다. 일명 「삼삼기 소리」라고도 하며 「줌치 노래」라고도 한다. 노래의 내용이 주로 밤을 새워 삼일을 할 때 잠을 쫓는 것으로 되어 있어, 지역에 따라서는 「잠 노래」라고도 한다. 대부분의 「삼삼기 노래」는 부녀자들의 고된 노동과 시집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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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불리는 성주굿의 내용이 담긴 민요. 성주신은 집의 여러 신들 중에서 최고의 신으로 집안을 다스리고 부귀와 영화 일체를 관장한다. 성주굿은 성주신을 받들어 제액초복(除厄招福)하는 굿이다. 구미 지역을 포함한 경상도 지역에서는 일반적으로 지신밟기를 할 때 성주굿의 내용이 담긴 「성주풀이」를 한다. 따라서 「지신밟기 소리」와 「성주풀이」는 명칭은 다르나 같은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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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음력 정초에 굿패나 걸립패가 지신밟기를 하면서 부르는 민요. 정초에는 집집마다 악귀와 잡신을 물리치고 마을의 안녕과 풍작, 가정의 다복을 축원하는 행사가 벌어지는데 이를 ‘지신밟기’라고 한다. 이 때 풍장과 함께 상쇠가 앞에서 고사소리로 덕담을 푼다. 1984년 7월 26일 최정여·임갑랑·박종섭이 구미시 옥성면 초곡리의 육종수(남, 당시 64세)에게서 채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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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편찬된 경상도 선산부의 옛 읍지. 도지에 수록된 선산부(善山府) 옛 읍지로 지역에서 편성되어 상송되었으며,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1760년(영조 36) 이후 전국적 상송령에 따라 수집 편성된 『여지도서』선산편에 이어 지역의 현실을 담은 읍지가 계속 편찬되어 상송되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경상도읍지』에 수록된 『선산부읍지』가 있다. 『경상도읍지』의 『선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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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편찬된 인동부의 옛 읍지. 도지에 수록된 인동부의 옛 읍지로 지역에서 편성되어 상송되었으며,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1760년(영조 36) 이후 전국적 상송령에 따라 수집 편성된 『여지도서』인동편에 이어 지역의 현실을 담은 읍지가 계속 편찬되어 상송되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경상도읍지』에 수록된 『인동부읍지』가 있다. 『경상도읍지』의 『인동부읍지』는 과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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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강창은 과거에 낙동강 수로를 이용하여 남쪽 바다와 해안에서 생산된 해산물과 소금 그리고 경상도 중부와 북부 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혹은 임산물을 실어 나르는 배들이 일시적으로 정박하는 도선장(渡船場)이었다. 이 때문에 선산읍으로 들어가는 마을 입구에 교역장을 위한 창고가 있었다. 직지사의 삼층석탑(三層石塔)도 이곳에서 선산군으로 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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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던 시기 구미 지역의 역사. 구미시의 ‘구미’라는 명칭은 조선시대 선산도호부 상구미면·하구미면에서 비롯되어 1914년 상구미면·하구미면이 개칭된 상고면·하고면이 구미면으로 통합·개칭된 데서 비롯되었다. 독립된 지방행정구역으로서의 구미시는 1978년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이 통합되어 구미시로 승격되면서 성립되었고, 1995년에 선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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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의 남화사 보광명전 2층 약사전에 봉안된 고려 시대 불상. 고려 시대에는 지역별로 다양한 양식의 불상들이 조성되었는데, 구미 남화사 석조약사여래좌상은 통일 신라 시기 경상북도 지역에서 유행하던 조각 양식을 다분히 계승하면서도 고려 시대의 다소 추상화된 조형적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2008년 11월 3일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544호로 지정되었다. 광배를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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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일대에 전승되고 있는 풍물. 무을풍물은 구미시 무을면 상송리에 있는 수다사에서 도를 닦았던 승려 정재진이 마을 사람들에게 풍물을 가르치면서 시작되었다. 정재진의 쇠가락은 무을면 오가리에 살았던 이군선이 이어받아 나름대로 새롭게 하였다. 이군선의 쇠가락은 무을면 오가리의 이남문과 윤필선, 그리고 무을면 무이리의 최일영 등이 이어받았다. 이남문은 6·25전쟁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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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덕촌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의 효자 김광수(金光洙)의 정려비. 김광수는 일선인(一善人)으로 자가 사옥(士玉)이다. 선산 이문리(里門里)에 거주하였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육십 노모 병환에 약을 구하러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구하지 못했다. 근심 걱정으로 울면서 식음을 전폐하고 의원을 찾자 의원이 이르기를 “뱀을 구해서 달여 드리면 치료가 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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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효자. 본산은 선산(善山). 동생은 김윤덕(金允德)이다. 김윤수(金允壽, 1387~1463)는 1427년(세종 9)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병마사(兵馬使)에 이르렀다. 오랑캐 기병(騎兵)의 침입을 막아냈으며, 부모의 상을 당해서는 여막을 짓고 시묘(侍墓)하였다. 이후 효행을 인정받아 효자에 정려되었다. 1453년(단종 1) 중추원사(中樞院使)가 되고 충청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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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선산 지역은 대략 안동 지역보다 열흘 이상 못자리를 늦게 하며, 해평 지역은 특히 선산에서도 가장 늦다. 오늘날은 대개 4월 25일 넘어서 못자리를 마련하며, 25일 동안 자라면 모를 이앙하기에 충분한 상태가 된다. 모내기는 6월 1일에서 7일 사이에 가장 많이 한다. 이렇듯 늦게 못자리를 하고 그러면서도 짧은 기간 동안에 모를 성장시켜 모내기를 할 수 있는 상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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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농소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과거 낙동강의 수로(水路)가 경상도 지역의 중요한 교통로 역할을 할 때 상주~선산 간 교통의 요충지였다. 낙동강 강변의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자리잡고 있어 과거 선산과 상주를 왕래하는 보부상들이 땀을 식히고 갔다고 전한다. 임진왜란 당시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최씨, 김씨, 임씨 세분을 모신 삼열사(三烈祠)가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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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세계를 올곧고 비옥하게 가꾸며 사는 것은 아름답다. 더구나 남들이 근접하기 어려운, 가치 있는 것을 위해 한평생을 바치는 일은 아름답다 못해 숭고하다. 판소리 명창 가운데 이런 삶을 살았던 명창이 적지 않지만 근래의 명창 중에서 박록주만큼 그렇게 산 이도 흔치 않다. 수많은 소리꾼 중에서 어떤 소리꾼을 명창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적어도 다음과 같은 조건을 두루 갖추어야 명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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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6월 최재화가 주동이 되어 경상북도 청년들을 만주 신흥무관학교로 보낸 사건. 3·1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각지의 뜻있는 인사들은 새로운 투쟁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해평 산양리의 최재화(崔載華, 1892~1962)는 1919년 4월 2일 밤 동민들을 이끌고 고향인 해평경찰서(海平警察署) 주재소(駐在所)를 습격하였다. 또한 대구로 나가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 김수길(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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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금산리에 있는 산. 과거에는 조계산으로 불리기도 했고, 경상도 방언으로는 비틀산이라고 한다. 베틀산의 유래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려시대 문익점은 목화씨를 전래시켜 재배에 성공하였고, 문익점의 손자인 문래(文萊)는 목화로부터 실을 뽑는 기계인 ‘문래’를 만들었다. 문래의 동생 문영(文英)은 조계산의 모양과 해평면 오상리에 있는 공상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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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지형. 산은 구체적으로 가파른 사면과 단일한 봉우리가 포함되어 있는 높이 솟아오른 지형(landform)을 의미한다. 해수면을 기준으로 특정한 높이 이상의 지형을 산이라고 지칭하지는 않지만 영국의 경우 일반적으로 600m(2000ft) 이상의 지형을 가리킨다. 우리나라의 경우 산지(山地, mountains)는 기복량이 100~200m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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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에서 일어난 반봉건(反封建) 농민항쟁. 구미시 선산은 18세기 이래 농업생산력의 증대와 상품유통경제가 발달하는 추세 속에서 상업적 농업이 발달하였다. 선산에서는 쌀과 면화 및 면포가 상품화되어 경상도는 물론, 물길로 서울·강원도·충청도·함경도까지 판매되었다. 쌀과 면포 외에 마포·콩·보리 등도 상품화되어 장시에서 거래되었다. 이 같은 상업적 농업의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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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을 본관으로 하여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 살았던 성씨. 선산은 신라 눌지왕 때 일선군(一善郡)이라 칭하였고, 614년(진평왕 36) 주(州)로 승격되었지만 687년(신문왕 7)에 폐지되었다. 757년(경덕왕 16) 숭선군(崇善郡)으로 이름을 고쳤으며, 995년(성종 14)에 다시 선주(善州)로 고쳤고, 1018년(현종 9) 상주의 속주가 되었다. 1143년(인종 21)에 일선현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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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시조는 당(唐)의 한림(翰林)을 역임한 어매(禦梅)로서 874년경 황소(黃巢)의 난을 피하여 신라로 왔다는 8학사(八學士) 중의 하나이다. 대광부군(大匡府君) 여양유(呂良裕)를 중시조로 한다. 여위현은 경상도 성주성(星州城) 북쪽의 야동(冶洞)에 살았는데,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잠저(潛邸)에 있을 때 친구로 지냈다. 이성계가 왜장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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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현대까지 경상북도 구미시의 역사. 구미 지역은 전근대 사회에서는 선산과 인동이 중요한 행정구역이었다. 선산은 삼국시대부터 일선, 숭선, 선주로 불리다가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 개편 때 선산군으로 개명되었고 2년 뒤 선산도호부로 개칭되었다. 인동은 삼국시대에 사동화로 불렸고, 1604년(선조 37)에 인동도호부로 승격되었다. 그 뒤 1978년 인동면이 구미읍과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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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지역을 중심으로 성리학통을 전개한 유학자들. 해평길씨 길재가 정몽주의 학통을 이어 받아 고향 선산으로 돌아와 후학을 가르쳤고 선산김씨 김종직 부자가 그의 학통을 계승하면서 선산은 15세기 영남사림파 형성의 중심지가 되었다. 또한 고려 말에 성주·선산 등지 토성들의 상경종사(上京從仕)가 활발해지자 재경 관인이나 혹은 타읍 출신의 사족들이 대거 선산 지방으로 모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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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의 대표적 의병장 허위는 경상북도 구미시 임은동 출신이다. 한말과 일제강점기를 통해 허위 가문은 수많은 항일운동가를 배출하였다. 허위의 맏형 허훈은 진보의진의 창의장이었고, 셋째 형 허겸은 형과 아우를 도와 의병 투쟁에 참여하였다. 1910년 국권 상실 이후에는 허겸·허형·허필은 그 일가를 이끌고 만주와 노령으로 망명하여 항일 투쟁을 계속하였다. 허위는 한말에 거유(巨儒)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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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음력 6월 15일에 지내는 명절. 유두(流頭)란 말은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뜻으로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이란 말의 약어이다. 음력 6월 15일은 흔히 유월명절이라고 한다. 유두는 연중 가장 바쁜 시기로, ‘미끈유월’이라는 말처럼 이때가 되면 두레의 김매기로 인하여 쉴 틈이 없다. 밭농사도 마무리 손길로 매우 분주한 때이다. 유두의 유래는 정확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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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국가와 향토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일어나 싸운 민병. 1592년 4월 13일 일본군이 부산진을 침략하면서 북상하자 구미 선산에서는 노경임(盧景任)을 대장으로 하는 선산향병(善山鄕兵)이 조직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군이 들이닥치면서 곧 무너졌다. 그리고 해평 출신 부안현감 고한운(高澣雲)이 군졸과 흩어진 의사들을 모아 금오산성에서 진을 치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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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 지역에서 일어난 전투.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의 군위현조에 이보의 약전에 의하면 “임진왜란 이후 인동현감으로 재임하면서 당시 인동은 왜구의 중요 통로가 되어 왜구의 피해가 특별히 심하여 전야(田野)가 비었고 사는 사람이 없는지라 관찰사가 논계하여 읍을 혁신하고 공으로써 임시 현감을 차임하고 또 과곡관을 겸임하니 추절을 당하여 득곡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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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있는 조선 말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조강하(趙康夏, 1841~1892)의 선정비. 조강하는 외척인 풍양조씨 문중의 인물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예조판서, 독판내무부사(督辦內務府事)에 이르렀다. 1883년(고종 20)에 경상도관찰사로서 군비 태세를 살피는 순찰사를 겸직하였다. 경상도의 진휼을 위하여 내탕전(內帑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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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던 시기 구미 지역의 역사. 구미시의 ‘구미’ 명칭은 조선시대 선산도호부 상구미면(上龜尾面)·하구미면(下龜尾面)에서 비롯되어 1914년 상하구면·하구미면이 개칭된 상고면·하고면이 구미면으로 통합, 개칭된 데 기인한다. 독립된 행정구역으로서의 구미시는 1978년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이 통합되어 시로 승격하면서 성립하였고,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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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 출신 명창이 부르거나 구미 지역에서 불리고 있는 창악(唱樂). 판소리는 한 사람의 창자(唱者)가 고수(鼓手)의 북장단에 맞추어 긴 서사적인 이야기를 소리[唱]와 아니리[白]로 엮어 발림(너름새)을 곁들이며 구연(口演)하는 창악적 구비서사시(口碑敍事詩)이다. 12마당이 전해 왔는데 현재는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등 5마당이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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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허위(許蔿)가 활동하던 시기는 조선 왕조 말기로, 1895년 명성왕후 시해사건, 1905년 11월 을사보호조약과 그에 따른 을사의병(乙巳義兵), 1907년 해이그밀사사건과 고종의 강제 퇴위, 군대해산으로 이어지면서 조선은 국가로서의 주권을 서서히 상실해가고 있었다. 허위는 이러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막대한 재산을 내어 의병을 결성하여 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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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일본의 주권침략에 대항하여 싸운 허위의 구국 의병투쟁.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한반도에서 그들의 우월한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을미사변(乙未事變)을 일으키는가 하면, 조선인들의 고유한 문화적 전통과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두발과 복장의 형태마저 강제로 바꾸도록 하였다. 이른바 이것이 단발령(斷髮令)과 변복령(變服令)이다. 일찍부터 일본과 서양을 금수(禽獸)로 여겼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