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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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남효온이 구미 지역의 금오산 등지를 지나며 지은 한시. 남효온은 조선시대의 생육신으로 자는 백공(伯恭), 호는 최락당(最樂堂)·추강(秋江)·행우(杏雨)·벽사(碧沙)이다. 김종직에게서 학문을 배우고 김굉필·정여창·김시습 등과 가까이 지냈다. 세조에 의하여 물가에 이장된 단종의 생모 현덕 왕후의 소릉(昭陵)을 복위하기 위해 상소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실의에 빠져 각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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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년(중종 5) 이행이 구미 지역을 유람하며 지은 한시. 이행은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이다. 자는 택지(擇之), 호는 용재(容齋)·창택어수(滄澤漁水)·청학도인(靑鶴道人)이다. 갑자사화 때 폐비 윤씨의 복위를 반대하다가 유배되었으나, 기묘사화 후 입조(入朝)하여 대제학, 이조판서, 우의정 등을 지냈다. 1634년 간행된 이행의 문집 『용재집(容齋集)』 중 권7에 1510년 이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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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3년(인조 21) 박진경이 구미 지역의 금오산을 등반하며 쓴 유람기. 「금오록」은 1643년(인조 21) 박진경이 일행 14명과 함께 경상북도 구미시 금오산을 등반하면서 경치와 느낌을 상세한 여정 및 소사(小事)와 함께 일일이 상세하게 기록한 유람기이다. 「금오록」은 2박 3일간의 기록으로, 첫날에는 등산 여정의 사전 상황, 일행, 등산 전의 소감 등을 기록하였다. 둘째 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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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노상직이 경상북도 구미시의 금오산을 지날 때 길재를 추모하며 지은 한시. 노상직은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 금곡리에서 태어났다. 생부는 극재 노필연인데 후에 숙부인 우당 노호연의 양자가 되었다. 5세에 『효경』을 배우기 시작해 12세 때 사서삼경을 다 읽었다. 15세 때 향시에 응시했으며 17세 때 당시 김해부사인 박원석이 고을의 자제들을 모아 하과(夏課)를 실시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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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송순이 구미 지역의 금오산을 보고 길재의 충절을 칭송하며 지은 한시. 송순은 조선 명종 때의 문신이자 시인이다. 자는 수초(遂初)·성지(誠之), 호는 면앙정(俛仰亭)·기촌(企村)이다. 대사헌 등을 거쳐 우참찬에 이르러 기로소에 들어갔다가 벼슬에서 물러났다. 강호가도(江湖歌道)의 선구자로 시조에 뛰어났으며, 작품에 「면앙정가」, 저서에 『기촌집(企村集)』 등이 있다.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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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8년(중종 23) 정사용이 구미 지역의 금오산을 보고 길재의 충절을 칭송하며 지은 한시. 정사용은 조선시대의 문신으로 호는 호음(湖陰)이다. 「금오산」은 정사용의 문집 『호음잡고(湖陰雜稿)』에 수록된 「북상록(北上錄)」에 속해 있는 한시이며, 『야은집(冶隱集)』에도 수록되어 있다. 금오산인(金鰲山人)이라는 호가 있을 정도로 금오산과 매우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야은 길재의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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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봉한리에서 발굴된 일제강점기 작가 미상의 가사. 「금오산가」는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봉한리의 김억기가 소장하고 있는 가사집에 「회심곡」, 「규방교훈가」, 「화조가」, 「백발가」 등과 함께 수록되어 있는 개화기 가사로 애국정신을 고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금오산가」는 서사·본사·결사로 구성되어 있는데 서사에서는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과 금오산에 대해 소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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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손소가 구미 지역의 금오산 자연 경관과 더불어 길재의 충절을 칭송한 부(賦). 손소(孫昭, 1433~1484)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자는 일장(日章), 호는 송재(松齋)이다. 이시애의 난 때 출정하여 공을 세우고, 뒤에 계천군(溪川君)에 봉해졌다. 「금오산부」는 손소가 금오산에 올라 느낀 감회를 읊은 작품으로 손소의 문집인 『양민공집(襄敏公集)』에 전한다. 금오산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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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2년(철종 3) 장복추가 구미 지역의 금오산을 유람한 후 지은 유람기. 장복추(張福樞, 1815~1900)는 조선 후기의 예학자이자 당시 최고의 학단을 이끈 교육자이다. 자는 경하(景遐), 호는 사미헌(四未軒)이다. 장복추는 경상북도 예천 지역에서 출생하였지만 본관이 인동으로 경상북도 구미 지역과 관련이 깊은 인물이다. 「금오산유록」은 장복추가 1852년 8월 탑동(塔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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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에서 지주중류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길재(吉再, 1353~1419)는 고려 말기의 학자로 호는 야은·금오산인이다. 고려 삼은 가운데 한 사람이며, 저서에 『야은집(冶隱集)』과 언행록으로 『야은언행습유록(冶隱言行拾遺錄)』가 있다. 길재의 충절을 기려 세운 지주중류비는 1983년 6월 20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67호로 지정되었다. 길재의 충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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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구미 지역 출신 김낙삼이 채미정에 올라 느낀 심회를 읊은 한시. 김낙삼(金洛三, 1877~1946)은 조선 말기의 처사로 자는 팔응(八應), 호는 몽산(蒙山)이다.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몽대에서 태어났다. 「등채미정」은 김낙삼이 채미정에 올라 야은 길재를 생각하며 지은 칠언 율시이다. 채미정은 고려 말기의 충신이며 학자인 야은 길재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17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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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겸진이 구미 지역의 금오산을 바라보며 느낀 심회를 읊은 한시. 하겸진(河謙鎭, 1870~1946)은 한국의 유학자로 자는 숙형(叔亨), 호는 회봉(晦峯)·외재(畏齋)이다. 「망금오산유감」은 하겸진이 금오산을 바라보며, 세월의 흐름에 따라 야은 길재의 자취가 사라져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지은 칠언 율시로 『회봉집(晦峯集)』에 수록되어 있다. 비 온 뒤 금오산 빛은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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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옥이 구미 지역의 열녀 상낭박씨의 절개를 칭송하며 쓴 전기. 이옥은 조선 후기의 문인으로 자는 기상(其相), 호는 문무자(文無子)·매사(梅史)·매암(梅庵)·경금자(絅錦子)·화석자(花石子)·청화외사(靑華外史)·매화외사(梅花外史)·도화유수관주인(桃花流水館主人)이다. 평민 여성 상낭이 절개를 지켜 죽은 일은 조선 후기 선비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쳐 많은 문사들이 상낭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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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노상리에서 명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길재(吉再, 1353~1419)는 고려 말기의 학자로 호는 야은·금오산인이다. 고려 삼은 가운데 한 사람이며, 저서에 『야은집(冶隱集)』과 언행록에 『야은언행습유록(冶隱言行拾遺錄)』가 있다. 하위지(河緯地, 1412~1456)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호는 단계이다.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1456년(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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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 곽종석이 구미 지역 출신인 길재를 추모하여 지은 한시. 곽종석(郭鍾錫, 1846~1919)은 구한말의 학자로 자는 명원(鳴遠), 호는 면우(俛宇)이다. 저서에 『면우선생문집(俛宇先生文集)』이 있다. 「야은굴」은 『면우선생문집』제3권에 전하는 한시로, 통일신라 말기의 승려 도선(道詵, 827~898)이 참선한 후 득도했다는 ‘대혈(大穴)’이라 불리는 곳을 배경으로 하여 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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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조식이 구미 출신의 길재의 충절과 학문을 사모하여 지은 전기. 조식(曺植, 1501~1572)은 조선 전기의 학자로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이다. 여러 차례 벼슬이 내려졌으나 성리학 연구와 후진 양성에만 전념하였다. 「야은선생전」은 『남명선생문집(南冥先生文集)』에 실려 있는 전(傳)으로 조식이 야은 길재의 충절과 학문을 기리며 지었다. 길재(吉再,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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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장류가 구미 지역 출신인 열녀(烈女) 향랑(香娘)에 대해 쓴 전기. 「열녀향랑전」(장류)은 열녀(烈女) 향랑(香娘)의 일대기와 장류(張瑠)의 찬(贊)으로 구성되어 있다. 형곡마을에 사는 향랑(香娘)은 일찍 어머니를 여의었다. 향랑은 미련하고 무정한 계모 밑에서 온갖 구박을 받으며 자랐지만 타고난 자태가 아름다웠고 길쌈과 바느질에 능하였다. 향랑은 성장하여 시집을 갔는데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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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민택이 구미 지역의 열녀 상낭(尙娘)의 절개를 칭송하며 쓴 전기. 김민택(金民澤, 1678~1722)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치중(致中), 호는 죽헌(竹軒)이다. 경종이 즉위하자 소론 이진검·이진유 등이 김민택의 형 호조참판 김운택을 논핵하였다. 이때 형 김운택의 용서를 청하는 상소를 하였고, 뒤에 실록랑·지제교를 지냈다. 저서에 『죽헌집(竹軒集)』이 있다. 평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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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고종 4) 경상북도 구미 지역 출신의 허훈이 금오산 일대를 유람한 후 쓴 기행문. 허훈(許薰, 1836~1907)은 한말의 의병장으로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 지역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방산(舫山)이며 의병장 왕산(旺山) 허위(許蔿)의 맏형이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의 공포를 계기로 항일 운동에 나섰다. 1990년 건국 훈장 애국장이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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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과 해평면에서 채미정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미정은 1986년 10월 15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12월 26일 명승 제52호로 변경되었다. 고려 후기의 충신이자 학자인 길재(1353~1419)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1768년(영조 44) 채미정을 건립하였다. 길재의 호는 야은(冶隱)·금오산인(金鰲山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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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곽종석이 구미 지역의 채미정에서 길재를 기리며 읊은 한시. 곽종석(郭鍾錫, 1846~1919)은 구한말의 학자로 자는 명원(鳴遠), 호는 면우(俛宇)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조약의 폐기와 조약 체결에 참여한 매국노의 처형을 상소하였다. 「채미정야은구거」는 『면우선생문집(俛宇先生文集)』제3권 시편에 실려 있는 곽종석의 칠언 율시로, 채미정에서 고려의 충신 야은(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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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지역 출신의 길재가 고려왕조를 회고하며 지은 시조. 길재(吉再, 1353~1419)는 여말선초의 성리학자로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재보(再父), 호 야은(冶隱)·금오산인(金烏山人)이다. 금주지사(錦州知事) 원진(元璡)의 아들로 경상북도 구미에서 출생하여 1363년 냉산(冷山) 도리사에서 처음 글을 배웠다. 길재는 고려왕조가 망하자 어머니 봉양을 핑계로 금오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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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전통시대와 현대에 지어진 건축물. 구미는 1973년 구미1공단이 조성 완료된 이래 구미2공단, 구미3공단, 구미4공단 등 계속적인 공단의 확장으로 2006년에는 수출 305억 달러, 생산 46조 원을 달성하는 등 디지털전자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내륙 최대의 수출산업기지로 빠르게 성장한 산업도시이다. 용도 지역별 면적 구성을 보면 경상북도 내의 같은 산업 도시인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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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에 있는 야은 길재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정자. 정자 이름은 길재가 고려가 망한 후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벼슬에 나가지 않고 고향에서 은거 생활을 한 것을 중국의 백이 숙제가 고사리를 캐던 고사에 비유하여 이름을 지은 것이다. 구미 채미정 뒤에는 숙종의 어필 오언절구(五言絶句)가 보존되어 있는 경모각과 유허비각이 배치되어 있다. 정면 3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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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은 최근 많은 등산객이 찾는 탓에 잘 알려진 산이 되었다. 외지에 나가서 구미에서 왔다고 하면 으레 ‘금오산을 올랐노라’는 말을 듣게 된다. 구미 사람들은 외지 방문에서 돌아올 때면 멀리서 나타나는 금오산을 보고서 ‘구미에 다 왔구나’ 하는 표지로 삼고 있다. 한반도의 진산(鎭山)은 백두산이다. 백두산에서 태백산이 이루어졌고, 다시 소백산이 되고, 소백산은 죽령과 새재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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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과 칠곡군 북삼읍, 김천시 남면에 걸쳐 있는 도립공원. 금오산이라는 지명은 옛날 이곳을 지나던 아도(阿道)가 저녁노을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모습을 보고 금오산(金烏山)이라 이름 짓고 태양의 정기를 받은 명산이라 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남숭산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1970년 6월 1일 경상북도 공고 제95호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의 도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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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 있는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서원. 1567년(명종 22)에 선산의 유학자 최응룡과 김취문이 중심이 되어 선산부사 송기충에게 서원 건립을 건의하였고, 송기충은 이를 경상감사를 거쳐 조정에까지 알려 마침내 재가를 받아 1570년(선조 3)에 금오산 밑에 건립하게 되었다. 1575년(선조 8)에 사액서원이 되었다.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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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사익(士益). 야은 길재의 6세손으로 증조부는 길인종(吉仁種)이고, 조부는 길대연(吉大淵)이다. 아버지는 진사 길면지(吉勉之)이고, 외조부는 최이한(崔以漢)이며, 부인은 배관(裵寬)의 딸이다. 길겸은 1546년(명종 1) 생원이 되었고, 1548(명종 3) 무신별시에 병과 12위로 급제하여 병조정랑, 청홍도평사, 당진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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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에 있는 조선시대에 세운 야은 길재 선생 추정 묘비. 길재의 자는 재보(再父), 호는 야은(冶隱), 또는 금오산인(金烏山人)이며, 본관은 해평(海平)이다. 말년에는 선산의 향리에서 강학을 베풀어 그 학통을 김숙자(金叔滋)에게 전하고 이를 다시 김종직(金宗直),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등이 이었다. 길재 묘비는 충의를 기리고, 학문적 성과를 기리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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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운 길재의 유허비(遺墟碑). 야은 길재는 고려 후기의 인물로서 이색, 정몽주, 권근 등에게서 배웠으며, 벼슬이 문하주서(門下注書)에 올랐으나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개창된 후 태종이 태상박사(太常博士)라는 관직을 내렸으나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 하여 사양하고, 선산에 은거하여 절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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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평. 자는 사가(士可), 호는 징강(澄江).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6세손이며, 형은 현감 길겸(吉謙)이다. 길회는 1570년(선조 3)에 진사가 되었으며, 1577년(선조 10)에 문과에 급제하여 삼사(三司)를 역임하였다. 홍문관과 예문관의 문학 등 여러 벼슬을 거치면서 청간(淸簡)한 품위를 지켰으며, 임진왜란 때는 관서(關西) 지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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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 자는 자배(子培), 호는 강호(江湖). 순충공 김선궁(金宣弓)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진사 김관(金琯)이다. 김숙자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했으며, 총명하고 용모 또한 단정하였다. 1419년(세종 1) 문과에 급제한 후 사관이 되었으나, 시기하는 무리가 많음을 알고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부모 봉양과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1431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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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일선(一善). 자는 순좌(舜佐), 호는 호와(箎窩). 아버지는 야은(野隱) 김술로(金述魯)이다. 김익흠(金益欽)은 부친의 등창을 입으로 빨고 하늘에 기원하여 완쾌시켰으며, 부모를 봉양하는데 정성을 다했다. 부친의 상을 당해서는 3년 동안 시묘(侍墓)하였다. 이후 효행을 인정받아 효자에 정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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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평리는 해평면에서 낙동강에 접한 자연마을로 흔히 ‘해평큰마’로 불린다. 구미 선산 사람들이라면, 예로부터 낙동강 서쪽 지역을 대표하는 곳이 선산이고, 강의 동쪽 지역을 대표하는 곳은 해평이라는 데 조금도 의심함이 없다. 이렇듯 해평 지역은 예로부터 구미를 비롯한 선산 지역의 문화적 근거지 역할을 했으며, 특히 해평큰마로 불리는 해평리는 그 문화의 산실이었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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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도선굴 암벽 두 곳에 새겨진 글자. 남통동 도선굴 통로 기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천석통로(穿石通路)라는 내용의 도선굴 통로 왼쪽 수직 암벽에 새긴 암각문이고, 다른 하나는 도선굴 내부 돌출된 벽 위에 고정시킨 금오산 굴 통로기(金烏山窟通路記)라는 제목의 직사각형 판석(板石)의 명문(銘文)이다. 금오산 굴은 금오산의 빼어난 경치를 한눈에 바라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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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강(安康). 별칭은 이성(利城) 또는 이성백(利城伯)이다. 노종선(盧從善)은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세조 대에 무과에 급제하여 이원현감(利原縣監)을 지냈으며, 이후 벼슬이 조봉대부와 군기시첨정에 이르렀다. 만년에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금오산 아래에 은거하며 야은(冶隱) 길재(吉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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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금호리에 있던 돌섬. 위로는 냉산(冷山) 웅봉(雄峰)이 굽어보고 아래로는 매학정(梅鶴亭)을 바라보는 녹전암은 옛날 모든 장사꾼들이 부산과 대구 등지에서 상품을 배에 싣고 상주·안동 방면으로 올라오다가, 이곳에 와서 돛을 풀고 물귀신에게 순풍을 빌며 뱃길이 무사하기를 제사 지냈다는 곳이기도 하다. 또 귀양지로서 충신암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나 오늘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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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원호리에 있는 강학을 위한 조선 전기 건물. 대월재는 조선 전기의 명신이며 청백리였던 구암(久庵) 김취문(金就文, 1509~1570)이 강학 공간으로 마련한 건물이다. 김취문은 선산 평성(들성) 출신으로 송당 박영(朴英)의 문인이다. 1537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종2품에 올랐으며, 명종 때는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또한 야은 길재, 강호 김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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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야은 길재(吉再, 1353~1419)와 관련하여 도(道)를 가르쳐 널리 깨우친다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또는 도랑가에 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도량댕이[道村, 文章谷]이라고도 한다. 본래 경상북도 선산군 상고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상률동, 하율동, 송동, 관동, 고기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도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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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고려시대에 해평 서쪽 낙동강을 따라 솔숲을 조성하고 강의 범람을 막은 것이나, 조선초기 야은 길재 등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어 영남학파의 기초가 닦여진 것 등을 참고할 때, 이곳의 벼농사는 그 역사가 전국의 어느 곳보다 빨랐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태진의 연구에 따르면 14~16세기에 지역의 인물배출이 집중하는 것과 제언(堤堰)을 중심으로 한 수전개발 사이의 관계를 밝혔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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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비안(比安). 자는 영가(寧可). 호는 율정(栗亭). 박서생(朴瑞生)은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음보(蔭補)로 성균학정이 되었다. 1401년(태종 1) 증광문과에 병과 3등으로 급제하고, 1407년(태종 7) 문과중시에서 을과 1등으로 급제하였으며, 이조참판과 사헌부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벼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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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봉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삼강(三綱) 정려각. 봉계마을 출신의 충신, 효자, 열녀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이다. 충신은 야은(冶隱) 길재이며, 효자는 배숙기, 열녀는 조을생(趙乙生)의 아내 약가(藥哥)이다. 길재(吉再)[1353~1419]는 고려말과 조선초의 학자로 1374년 벼슬길에 올랐으나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 연구와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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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 출신 문인이 창작한 시조. 시조는 고려 말엽에 발생하여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도 창작되고 애창되는 정형시로 국문학의 대표적인 장르의 하나이다. 시조는 무당의 노랫가락, 향가, 고려 가요 등에서 발생하였다는 등 여러 가지 견해가 있으나 향가에서 기원하여 고려 가요의 분장 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시조의 초기는 단가(短歌)의 가곡이었으며, 조선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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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고려 후기 학자 길재가 어린 시절에 자라를 놓아주면서 부른 노래. 야은(冶隱) 길재(吉再)는 외가에서 지내면서 8세 때 임지로 떠나는 아버지를 따라 간 어머니를 그리워하였다. 어느 날 어미를 잃은 채 자신의 손에 잡힌 자라새끼를 놓아주면서 부른 노래이다. 「방별가」는 길재의 행장(行狀)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자라야 자라야/너도 엄마 잃었니?/나도 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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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량동에 있는 조선 전기 사당. 이 사당은 1403년 당시 경상도관찰사이던 남재(南在)가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소거지를 사당으로 건립한 데서 비롯되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맞배지붕집인데, 어간(御間)을 양협간(兩夾間)보다 넓게 잡았으며,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간을 두었다. 초익공(初翼工)의 겹처마집이며, 목부(木部)에는 모로단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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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량동에 있는 조선 전기 길재를 모신 서원. 1529년(중종 24) 현감 조천계(趙天啓)가 화동산(花洞山) 아래에 서원 건립을 시도하였으나 중단되었다. 1585(선조 18) 현감 유운룡(柳雲龍)이 유림들과 상의하여 야은 길재의 묘 앞 산기슭 나월봉(蘿月峰) 아래에 다시 서원 건립을 추진하여 3년의 공사 끝에 완공하여 오산서원이라 하였다. 길재를 주향으로 배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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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시대 인물 유운용의 선정비. 유운용의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자는 응견(應見), 호는 겸암(謙菴)이다. 임진왜란 때 영의정으로 국난 극복에 공을 세운 유성룡(柳成龍)의 형으로 퇴계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모든 경사(經史)를 통독함으로써 사문의 촉망을 받았다. 1572년(선조 5) 친명(親命)으로 음사(蔭仕)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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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성산(星山). 아버지는 평양소윤 이문광(李文廣)이다. 이여량은 1380년(우왕 6) 문과에 급제하여 예부좌랑에 제수되었다. 1386년 사간원좌정언에 올랐다. 이 무렵 우왕이 놀이에만 여념이 없었고 폐신(嬖臣) 노영수(盧英壽) 집에 자주 행차하여 정사를 소홀히 하는 일이 허다했다. 이에 이여량은 다른 신하와 더불어 배종했다가 간관으로서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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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인동도호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숙여(肅與). 임윤원(任胤元)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임수적(任守迪), 아버지는 임용(任瑢)이다. 임희우는 1762년(영조 38) 정시 문과에 병과 9위로 급제하였다. 1779년(정조 3) 2월 고성현령에 임명되고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로 부임하였다.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지주중류비(砥柱中流碑)가 세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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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금호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옛날부터 재궁[재실]이 있는 곳이라 해서 재궁골 또는 쟁골로 통하고 있다. 마을에 후삼국 통일에 큰 공을 세운 삼중대광문하시중선주백순충공(三重大匡門下侍中善州伯順忠公) 김선궁(金宣弓)의 묘소 및 재사신도비각(齋舍神道碑閣) 및 생육신(生六臣) 경은(耕隱) 이맹전(李孟專)의 묘소와 재사(齋舍)가 있어 재궁이라 이름 붙였다. 마을 형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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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신. 본관은 해주. 자는 운정(雲程), 호는 신당(新堂). 증조부는 정희언(鄭希彦)이고, 할아버지는 정유(鄭由), 아버지는 현감 정철견(鄭鐵堅)이다. 1467년(세조 12)에 출생하여 1485년(성종 16) 진사시에 입격하고 1492년(성종 23)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가 되었다. 정자·지평·정언을 거쳐 1504년(연산군 10) 교리로 있으면서 갑자사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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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에 있는 야은 길재의 충절을 기려 세운 비. 야은 길재는 고려 후기의 인물로서 이색, 정몽주, 권근 등에게서 배웠으며, 벼슬이 문하주서(門下注書)에 올랐으나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 왕조가 개창된 후 태종이 태상박사(太常博士)라는 관직을 내렸으나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 하여 사양하고, 선산에 은거하여 절의를 지켰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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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시우를 시조로 하는 경상북도 구미시 세거 성씨. 길당(吉塘)은 고려 문종 때 송나라에서 귀화한 팔학사의 한 사람으로서 벼슬이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이르고, 해평백(海平伯)에 봉해졌는데, 이것이 해평길씨의 뿌리가 되었다. 그 후 계대(系代)가 실전(失傳)되었다가 후손인 성균관생원(成均館生員) 길시우(吉時遇)를 시조로 삼아 세계(世系)를 잇고 있다. 해평길씨는 야은 길재(吉再)의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