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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2098
한자 善山三綱旌閭
영어의미역 Gate Monument of Samgang in Seonsan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봉한리 915-3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광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7년 9월 29일연표보기 - 선산 삼강정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33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선산 삼강정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성격 목조건축
양식 홑처마 맞배집
건립시기/일시 1795년연표보기
관련인물 길재(吉再)|배숙기(裵淑綺)|약가(藥哥)
재질 목조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봉한리 915-3 지도보기
소유자 구미시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봉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삼강(三綱) 정려각.

[개설]

봉계마을 출신의 충신, 효자, 열녀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이다. 충신은 야은(冶隱) 길재이며, 효자는 배숙기, 열녀는 조을생(趙乙生)의 아내 약가(藥哥)이다.

길재(吉再)[1353~1419]는 고려말과 조선초의 학자로 1374년 벼슬길에 올랐으나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 연구와 제자를 키우는데 전념하였다. 이색·정몽주와 함께 고려의 삼은(三隱)으로 불린다.

열녀 약가조을생(趙乙生)에게 시집을 갔는데, 남편 조을생이 자원하여 나가 싸우다가 왜구들에게 잡혀가자 그 날부터 남편이 돌아오기까지 8년을 하루같이 수절하며 지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조정에서는 1404년(태종 4) 열녀로 포상하였고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기록하여 후세에 귀감으로 삼으니 많은 사람들이 시를 지어 찬양하였다.

배숙기는 조선 성종 때 사람으로 부모를 정성으로 모셔 정려가 세워졌다.

[건립경위]

1795년(정조 19) 선산부사 이채(李采)가 봉계리 한 마을에서 충신 야은 길재, 효자 배숙기, 열녀 약가가 났다며 비각을 지어 삼강정려라 이름 붙였다.

[형태]

선산 삼강정려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이다. 내부는 통칸으로 처리하였으며, 앞면에는 살창을 설치하였다. 기둥은 원주(圓柱)를 사용하였으며, 주상(柱上)에는 무익공(無翼工)으로 처리한 홑처마집이다.

열녀 약가 정려는 장방형의 자연석을 치석하여 만들었다. 비의 크기는 높이 125㎝, 폭 40㎝, 두께 22㎝이다.

[금석문]

삼강정려각의 정면에 ‘백세청풍팔년고등(百世淸風八年孤燈)’이라 쓴 편액이 걸려 있다.

열녀 약가 정려비의 앞면에 ‘열녀조을생처약가정표(烈女趙乙生妻藥哥旌表)’라 각자하였으며, 서체는 해서체로 크기는 13×12㎝이다.

[현황]

구미시 고아읍 봉한리를 지나는 국도 33호선 논 가운데 동향으로 서 있다. 삼강정려각 내에 보존되고 있으며 건비 후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정려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이다. 내부는 통칸으로 처리하였고, 전면에는 살창을 설치하였다. 기둥은 원주(圓柱)를 사용하였으며 주상(柱上)은 무익공(無翼工)으로 처리한 홑처마집이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 유교의 이념인 충(忠), 효(孝), 열(烈)의 정신을 지닌 사람이 한 마을 출신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으며, 고을의 수령이 그 정신을 선양(宣揚)하기 위하여 후세에 기록을 남기고 건조물을 마련한 역사적인 사실에 그 의의가 높다. 1997년 9월 29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3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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