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05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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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熢燧 |
영어의미역 | Beacon Fire Stati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차용걸 |
[정의]
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의 관에서 소식을 전하던 통신 방법.
[개설]
봉수는 말 그대로 밤에는 봉(烽: 횃불)으로, 낮에는 수(燧: 연기)로 급보를 전하던 군사 통신 시설 및 제도이다. 고대부터 사용된 방법으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지속적으로 운영되다가 1894년 폐지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대부분의 봉수 관련 유적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것으로, 특히 조선 세종 때 봉수대 시설의 규칙과 전달 방법 및 노선의 정비가 이루어졌다.
봉수는 연변 봉수(沿邊烽燧)·내지 봉수(內地烽燧)·경봉수(京烽燧)로 구분되었으며, 지방에서 운용된 권설봉수(權設烽燧)도 있었다. 노선으로는 국경 지역에서 도성에 이르는 5개의 직봉(直烽) 노선과 직봉으로 합류하는 간봉(間烽) 노선이 있었다.
[변천]
충청북도 음성군 내에는 망이산(望夷山) 봉수와 가섭산(迦葉山) 봉수의 2개소가 있다. 이들은 모두 동남해안에서 도성으로 이어지는 직봉 노선의 내지 봉수에 해당된다. 망이산 봉수는 본래 충주목 소속으로, 현재의 충청북도 음성군과 경기도를 가르는 경계에 위치한다.
노선은 충주 마산봉수에서 직봉인 죽령을 통과한 노선과 간봉인 하늘재 방면을 합해 가섭산 봉수로 전달되어 망이성에 이르며, 추풍령을 통과한 간봉 노선이 청주와 진천을 통과한 소을산 봉수 노선까지 아울러 경기도 죽산 건지산 봉수로 전달되었다. 음성현 시기에는 가섭산 봉수가 현에 소속된 유일한 봉수로, 현재 가섭산 정상 북쪽 봉우리에 유적이 남아 있다. 봉수대에는 감관(監官) 1명과 봉군 5명씩이 5교대로 근무하였으며, 봉군을 지원하는 보인(保人)은 봉군 1명당 3명씩 배정되어 있었다.
[현황]
망이산 봉수는 이미 발굴 조사를 마쳤으나 정비가 더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가섭산 봉수 유적은 인근에 현대적인 통신 중계 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통신 시설의 과거와 현재가 상존하는 곳으로, 앞으로 정밀한 학술적 조사와 정비가 요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