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음성문화대전 > 음성의 마을 이야기 > 병암리 > 할아버지 때부터 대대로 마을을 지켜왔어요(마을생활) > 나 없으면 저이가 어떻게 살지(한복실 할머니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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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실 할머니는 병암1리 부녀회장이다. 처음 병암1리를 찾아 갔을 때 조사자들이 시집살이에 대해 여쭈자, 시집살이를 아주 심하게 겪었다고 할머니들이 입을 모아 한복실 할머니를 지목하였다. 한복실 할머니는 현재 병암1리 부녀회장을 맡고 있고, 병암1리 부녀회 이야기와 각종 계모임에 대해서 많은 도움 말씀을 해 주었다. 한복실 할머니는 할머니라고 부르기가 무색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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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청송심씨, ‘심대웅’씨로 전라도 광주에서 살다가 아주 어릴 때 병암1리로 이사를 왔다. 시아버지는 광주에 살고 있을 때 일찍 돌아가셨다고 한다. 남편의 형제로 남동생만 있었고, 남동생의 장모가 한복실 할머니 친정 근처에 살고 있어서 그 분의 중매로 혼인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잘 사는 줄 알고 시집을 왔는데 와보니 속아서 왔다며 거듭 말하였다. “여기는 어떻게 소개해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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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온 그 날부터 고된 시집살이가 시작되었다. 시어머니는 시집 온 첫날부터 남편하고 한 방에서 못 자게 하고 다음날 아침에는 밥을 못한다고 구박을 하였다. “그냥 꼬박 밤새가지고 다섯 시 됐는데 부엌에 나가서 밥을 하라는데. 비가 왔는데 초가집인데. 빗물이 뚝뚝뚝 떨어지고. 밥을 하는데 기냥 눈물인지 콧물인지. 밥을 할 줄 알아야지. 보리밥인데. 그래가지고 어떻게 해가지고 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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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살이가 너무 힘들어서 집을 나가기 위해 보따리를 여러 번 쌌지만, 남편 때문에 나가지 못하고 매번 보따리를 풀어야만 했다. “뭐 달아날라고 보따리 수없이 쌌는데. 갈라면은 우리 아저씨가 불쌍해서 들어오고 그랬다구. 나 아니면 자기가 혼자 사니까, 아저씨는 잘하잖어. 그러니깐 미련이 있어서 못 가고 돌아오고 돌아오고. 서울도 갔다가 살라고 가봤다가 돌아오고 돌아오고 했지. 그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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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가 건강 악화로 집으로 다시 돌아오고 얼마 후에 소를 도둑맞았다. 당시에는 소가 큰 재산이었기 때문에 소를 잃어버린 충격이 커서 시어머니가 화병에 걸리셨다. “옛날에는 소가 재산이었어. 면에서 사준 소여. 네 마리가 됐거든 그 소가. 그래가지고 소를 도둑을 맞아 잃어버렸어. 그래가지고 우리 어머니가 병이 나가지고 돌아가신겨. 밥을 안 드셔가지고.” 정부에서 소를 사줘서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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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며느리가 출산할 때는 시어머니가 아이를 받아주는데, 시어머니는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한복실 할머니는 출산할 때 아이를 받아 줄 사람이 없어서 2남 2녀 모두를 혼자서 아이를 낳고 혼자 태를 잘랐다. “혼자 낳아가지고 태 자르고. 그래가지고 우리 엄마가 어떻게 자르는 걸 봤거든. 보고 했지. 가위로. 가에다가 그 가위로 대가지고 자르더라고. 우리 엄마 보니까 동생들만 어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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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았을 때 삼신할머니께 빌었느냐고 여쭤보았다. 그러자 막내아들이 태어나고 한 동안 잠을 자지 않아서 삼신할머니한테 빌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기가 태어나고 보름 정도가 지났는데 밤에 잠을 자지 않아서 동네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부정을 타서 그렇다며 삼신할머니한테 빌라고 했다. 그래서 방에 짚을 깔고 밥과 미역국을 차려놓고 3일 동안 빌었더니 신기하게도 그 다음날부터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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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오기 전에는 교회에 잠깐 다녔었는데 시집을 오고 나서는 시어머니가 절에 다니고 있어서 절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들을 절에 올린 뒤로 일 년에 다섯 번씩 꾸준히 절에 나가고 있다. “일 년에 정월달에 한 번 가고, 초파일에 가고, 칠월칠석날 가고, 인저 백중날은 우리 아들이 있어가지고 가고. 나 살 때까지 해 주게.” 한복실 할머니는 충주호에서 막내아들을 떠나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