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음성문화대전 > 음성의 마을 이야기 > 사정리 > 가도가도 산이라 아버지가 가마 돌려라 했어요(마을생활) > 아버지 네 번 장가보낸 할머니(김숙자 할머니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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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회관에 들어서자 아직 농사철이 아니기 때문인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모여 계셨다. 간단한 인사를 한 뒤 할머니들 방으로 들어서 재미난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청하였다. 처음에는 다들 꺼려하셨지만 ‘솔방울 장사를 하며 겪었던 이야기’를 시작으로 꽁꽁 숨겨 두었던 이야기보따리를 하나둘 풀어 놓았다. 그러다 한 할머니가 “여기 아버지를 네 번이나 결혼을 시킨 할머니 있슈, 그 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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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생전에는 꽃단장하고 예쁘게 하고 다녔는데 어머니 돌아가시고 난 후 고생을 많이 했다. 신파가 동네에 들어왔을 때 동네 사람들이 김숙자 할머니가 어머니가 없다고 데려다가 신파를 가르쳤다. 그 당시에는 마을마다 명절 때 천막을 지어놓고 마을 청년, 학생들이 동네잔치 식으로 신파를 가르쳐줬었다. “옛날에, 내가 엄마가 없었시유. 그랬는데 동네에서 신파를 했어. 나를 엄마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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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어머니가 낳은 오빠는 의용군으로 갔다가 병이 걸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얼른 낳으라고 사다준 약이, 열이 들어가는 약을 사다줘야 하는데 열이 폭발하는 약을 사다줘서 집에 오고 3일 만에 죽었다. 당시에 올케가 아들을 낳았었는데 그 아들도 곧 죽고 말았다. 오빠가 그렇게 죽고 아들도 죽자 아버지가 소 판 돈 반을 주면서 친정으로 내쫓았고, 남은 돈으로 그때부터 부인을 얻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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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자 할머니의 당고모부가 자기 며느리 친정에 중신을 넣어서 혼인이 이루어졌다. 울산이씨 ‘이윤섭’씨로 당시 23세였고 군인이었다. 남편은 할아버지 대부터 강당말에 살았다고 한다. 신랑은 4남 2녀 중 넷째로 시집을 왔을 때 시부모님과 형님 부부, 시동생 2명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혼인하고 3년 만에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어머니 정을 못 붙여서 시어머니 정을 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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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3년 만에 남편이 제대를 했고 21세에 첫 아이를 낳았다. 당시에 화랑 담배(군인용 담배)에 애기 못 낳는 약을 넣어서 애기가 안 들어섰다고 했다. 제대하고 바로 아이가 생겼다. “난 우리 첫아들 날 때, 시어머니 정신 시누 정신까지 다 빼놓은 사람이야. 애기를 낳았다는 소리만 들었지. 아파 죽겄는 겨. 소리소리 지르고 나 죽겄다고. 그러니까 날달걀을 깨서 먹이고 얼른 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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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제대 후 농사를 지었는데 남의집살이를 하며 1년에 7가마를 지으며 어렵게 시작했다. 남편은 품 팔고 자신은 방공일, 공공일에 식당에서 품 팔고, 그렇게 모아서 소도 사고 땅도 샀다. 가난했기 때문에 부모 덕 하나 안보고 자수성가할 수밖에 없었다. 남자가 3일을 일하면 쌀 한 말을 주었지만 여자는 5일을 일해야지 주었다. 그렇게 바쁘게 일하느라 아이들 데리고 놀 시간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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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고 있던 시아주버니가 광을 캐러 다녔는데, 도시락을 싸주면 밥을 다 먹고 엄지손가락만한 돌을 주워서 그 안에 넣어주었다. 맏동서와 돌을 깨서 맷돌에 갈아서 금가루를 모았다. “돌을 깨가지고 맷돌에 이렇게 갈면, 금은 시은이 다 집어 먹고 돌만 남아. 시은은 동글동글 하잖아. 시은이라고 있어. 금 빨아먹는 시은. 동글동글한 게 반짝반짝반짝하지, 윤이 나지. 그게 물이여, 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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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일을 하느라 아이들을 일찍 떼어놓고 다녔지만, 자장가만큼은 꼭 불러주었다. “자장 자장 우리 자장 우리 애기 잘도 잔다 자장 자장 자장 우리 애기 먹고 자고 먹고 놀고 잘도 잔다” 이렇게 불러주면 아이들은 울다가도 어느새 잠드는지 모르게 잠이 들었다. 가난해서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게 한이다. 큰아들하고 딸은 초등학교까지만 보내고 나머지 두 아들은 무기고등학교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