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 자는 성우(聖友), 호는 야춘(惹春). 참판 김낙회(金樂會)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김태희가 완도군수로 있을 때 문덕(文德)으로 백성을 이끌어서 군민들이 강무정(降務亭)을 세워 자취를 기록하였다. 벼슬은 참판에 이르렀으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1894년 갑오변란 이후 임천(林泉)에 은거하며 지내다가, 1908년(순종 2) 7월 2일 함흥지방재판소 번역관보로 임명되고 1909년 3월 23일 공립황주보통학교 본과 부훈도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