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0840 |
---|---|
한자 | 李世璡 |
영어음역 | Yi Sejin |
이칭/별칭 | 명서(明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종대 |
성격 | 문신 |
---|---|
출신지 | 충청북도 음성군 |
성별 | 남 |
생년 | 1669년 |
몰년 | 1749년 |
본관 | 벽진(碧珍) |
대표관직 | 한성판윤 |
[정의]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명서(明瑞).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이지걸(李志傑)이고, 형은 이세근(李世瑾)이다.
[활동사항]
이세진은 1725년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26년 지평으로 붕당의 폐해를 논하는 ‘파붕당(罷朋黨)’을 상소했다가 삼수부로 귀양을 갔다. 1727년 유배에서 풀려난 뒤 필선, 장령, 헌납, 사간을 역임하였다. 1729년 박필주와 양득중의 비례(非禮)를 논핵하다가 파직되었다.
1731년 산릉도청에서의 노고를 인정받아 가자(加資)되어 형조참의가 되었다. 1742년에는 우부승지에 발탁되었다가 연로하다는 이유로 특별히 동지중추부사로 승진하였다. 1743년 형조참판, 1745년 한성좌윤 등을 거쳐 1748년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이세진은 그 자급(資級)이 경재(卿宰) 반열이었지만 실직을 거치지 않아 기사(耆社)에 들 수 없다가 81세가 되어서야 기로소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