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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00875
한자 蔡壽
영어음역 Chae Su
이칭/별칭 기지(耆之),나재(懶齋),청허자(淸虛子),양정공(襄靖公)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유봉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성별
생년 1449년연표보기
몰년 1515년연표보기
본관 인천
대표관직 호조참판

[정의]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기지(耆之), 호는 나재(懶齋) 또는 청허자(淸虛子). 아버지는 부사를 지냈던 채신보(蔡申葆)이며 할아버지는 사예(司藝) 채윤(蔡倫)이다.

[활동사항]

채수는 1468년(세조 14)에 생원시에 급제하고 1469년에 추장문과(秋場文科)에 장원하여 홍문관부수찬(弘文館副修撰)에 제수되었고,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이 되어 『세조실록』·『예종실록』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1475년(성종 6)에 이조정랑(吏曹正郞)으로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장악원(掌樂院)의 관직을 겸했다. 1476년에 문과 중시에 을과로 급제하고 성종에게서 사가독서(賜暇讀書)의 은전도 받았다.

1478년(성종 9)에 응교(應敎)로 있을 때 도승지 임사홍(任士洪)의 비행을 탄핵하여 성종의 윤허를 받아 외직으로 몰아냈다. 1479년 정현왕후(貞顯王后) 윤씨의 폐위에 반대했다가 파직되었고 2년 후 용서되어 직첩이 환급되었다. 그 후 충청도관찰사·한성부판윤·대사성·호조참판을 역임했다. 1485년(성종 16)에는 노사신 등이 바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성현(成俔)·김종직(金宗直) 등과 함께 교정을 보아 윤색(潤色)하였다.

채수세조 때 사육신을 참하고 많은 사람을 귀양 보낸 바 있었는데, 1489년 고향에 돌아와 부친의 삼년상을 마치고 나서 뛰어난 문장으로 순리에 타당하게 연좌된 많은 사람들의 억울하고 원통함을 타당하게 역설했다. 이에 성종이 마음을 움직여 당시 연좌되어 귀양살이하는 자를 모두 놓아주게 하였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中宗反正)에 박원종(朴元宗)과 도모한 공으로 정국공신(靖國功臣) 4등으로 인천군(仁川君)에 봉해졌다. 1511년 채수가 지은 패관소설(稗官小說)인 「설공찬전(薛公璨傳)」이 민심을 자극한다고 하여 탄핵을 받고 곧 불태워버렸다. 그 후 공직에서 은퇴하여 고향인 음성에서 소요하였다가 경상도 함창(咸昌)에 은거하며 독서와 풍류로 여생을 보냈다.

[학문과 사상]

『세조실록』·『예종실록』 등의 편찬 사업에 참여하였고,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산경(山徑)·지지(地誌)·시문(詩文)에 두루 능통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에는 『나재집(懶齋集)』·『평해망양정기(平海望洋亭記)』가 있으며 패관소설인 『설공찬전』도 지었다.

[묘소]

묘는 최후 은거지인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곡산(谷山)에 있다. 신도비는 좌의정 이행(李荇)이 지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양정(襄靖)이며 현재 경산시의 임호서원(臨湖書院)과 문경시의 웅연서원(熊淵書院)에 제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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