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09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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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丁壽崗 |
영어음역 | Jeong Sugang |
이칭/별칭 | 불붕(不崩),월헌(月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유봉희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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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 |
성별 | 남 |
생년 | 1454년 |
몰년 | 1527년 |
본관 | 나주 |
대표관직 | 대사간 |
[정의]
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불붕(不崩), 호는 월헌(月軒). 소격서령(昭格署令) 정자급(丁子伋)의 아들이며, 교리(校理) 정수곤(丁壽崑)의 아우이다.
[활동사항]
정수강은 1474년(성종 5) 20세에 진사가 되고 1477년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을 지냈다. 1482년에는 정조사(正朝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글씨를 잘 쓰고 문장이 유창하여 1499년에 장령(掌令), 4년 뒤에 부제학(副提學)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로 파직되어 고향인 음성 자은갈(自隱葛)[지금의 원남면 조촌리 덕고개]에 내려와 소요하였다. 그 후 1506년에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재등용되어 강원도관찰사, 판결사(判決事)에 이어 대사간을 지냈고 1512년에는 병조참지(兵曹參知)가 되어 일본의 사신을 영접하는 일을 맡기도 하였다.
같은 해 7월에는 야인(野人)이 함경도 갑산(甲山)·창성(昌城)을 침입하자 이를 격퇴하였고, 이어 8월에는 일본과 임신조약(壬申條約)을 맺는데 세견선(歲遣船)의 수와 세견미(歲遣米)의 양을 결정하는 데도 참여하였다.
[학문과 사상]
정수강은 글씨를 잘 쓰고 문장이 유창하여 명문장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한문 소설과 문집을 펴는 등 학문에 뛰어났다.
[저술 및 작품]
명문장가로 이름을 떨쳐 한문 소설 「포절군절(抱節君節)」을 지었으며 문집으로는 그의 호를 딴 『월헌집(月軒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