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09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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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邕夢辰 |
영어음역 | Ong Mongjin |
이칭/별칭 | 응용(應龍),응기(應祈)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종대 |
[정의]
조선 중기 음성현감을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순창(淳昌). 자는 응용(應龍)·응기(應祈). 옹몽진은 순창옹씨 시조이다.
[활동사항]
원래 옹몽진의 선조는 고려 때 교목세신(喬木世臣)의 거족이었으나 조선 개국에 반대하여 이성계의 미움을 받아 서인이 되었다. 옹몽진은 음성향교지기를 지내다가 1553년(명종 8)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556년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67년 판관에 이르러 음성현감에 부임하여 고을 선비 류눌(柳訥)과 백성의 숙폐(宿弊)를 상의하고 손수 진두(陳頭)에 서서 선정을 베풀었다. 그 결과 종래와 같은 과중한 부역을 감하고 민의에 의한 시책을 펼쳐 칭송이 자자하였다. 그 후 벼슬이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상훈과 추모]
옹몽진이 임기를 마치고 떠나자 고을 사람들이 합심하여 향교 앞에 유애비(遺愛碑)를 세웠다. 높이 158㎝로 재료는 화강암이다.
[묘소]
묘소가 전라북도 정읍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