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14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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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周泳 |
영어음역 | O Juyoung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증재록 |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사업가.
[활동사항]
오주영은 조선 인조(仁祖) 때 영의정을 지낸 추탄(楸灘) 오윤겸(吳允謙)의 11세손이며 오극선(吳克善)의 아들이다. 2세 때 충청북도 중원군 신니면 신청리로 이사하고 1920년 12세 때 서울특별시 종로구 화동(花洞)으로 이사하였으며, 1921년에는 전라북도 익산군 황화면 고내리로 이사하였다.
1922년 14세 되는 해에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으로 이사하여 정착하였다. 음성개량학교 4년과 서울중동학교 속성과 1년을 마치고 휘문고등보통학교의 검정고시를 거쳐 17세 때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수학하였다.
천성이 총명하고 너그럽고 후하여 젊어서 명예를 얻기보다는 고장에 정착하여 스스로 도정업 등 실업에 종사하며 근면 성실과 검소를 바탕으로 남에게 널리 베푸는 생활을 하였다. 또한 고장의 어려운 일과 분쟁에는 정을 베풀어 해결을 하였고, 일제강점기, 광복, 6·25전쟁 등의 혼란기에는 사재(私財)로 구휼하였다. 일상을 불우한 학생과 어려운 이의 뒷바라지에 바쳤다.
[상훈과 추모]
1982년 12월 4일 문학박사 조건상(趙健相)이 찬하고 지역 주민의 뜻을 모아 민간단체협의회에서 세운 송덕비가 있다. 묘는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문산리에 있고 송덕비 내용은 “끼치온 덕(德) 두터우니 공(公)의 도량(度量) 넓었을 걸/ 평생 두고 넓은 자취 누구에게도 무던했네/ 비에 담긴 서툰 글로 어찌 다 할까만/ 돌에 새겨 우러르니 갸륵한 일 놀라우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