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20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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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New Year's Day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이숙 |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음력 정월 초하루에 지내는 명절.
[개설]
설은 좁은 의미로는 음력 정월 초하루를 의미하지만, 옛사람들은 넓은 의미로 대보름까지를 설로 보았다. 이에 따라 음력 1월 1일은 한자어로 원일(元日)·정일(正日)·원정(元正)이라 하고, 새해의 첫머리는 정초(正初)·세수(歲首)·연수(年首)·연두(年頭)라고 하였는데, 특히 첫날의 시작인 설날 아침은 원단(元旦)이라 하여 중요시하였다.
음성 지역의 설 풍속은 전국의 풍속과 대동소이하여 차례를 드리고 세배를 한 다음 떡국을 먹고 성묘를 드리는 등 혈연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마을의 행사로는 동제인 산신제가 정초에 가장 많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연원 및 변천]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설은 음력 정월 초하룻날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일본 정부는 양력설을 강요하며 공공연히 음력설을 쇠지 못하게 하였다. 음성 지역의 경우 설날 아침에 떡국을 끓였는지 밥을 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일본 순사들이 솥을 검사하고 다녀서, 감곡면 사곡리 사람들은 묵계하에 설날 새벽 일찍 차례를 지낸 뒤 다시 밥을 해놓기도 하면서 음력설을 지켰다고 한다.
[풍속]
설날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설빔으로 갈아입고 차례를 지낸다. 설빔은 남녀노소 모두가 새옷을 입는 풍속으로, 아이들은 새 옷을 고대하며 설날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하였다. 아무리 가난해도 양말이나 버선 한 켤레 정도는 갈아 신겨야 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설날이 돌아오면 걱정부터 앞섰다. 형편이 여의치 못할 때는 헌옷을 깨끗이 손질해 두었다가 입히기도 하였다.
설날 차례는 조상님께 한 해가 바뀌었음을 고하는 새해 첫 인사를 올리는 의례이다. 차례는 4대조까지 모시며, 차례상에는 밥 대신 떡국을 올리므로 ‘떡국차례’라고도 한다. 음성 지역에서 보고된 자료에 의하면 가정에 따라 떡국과 함께 밥을 올리기도 한다. 차례 방식은 일반 기제사와 같다.
차례를 지낸 다음에는 웃어른들께 세배를 드린다. 집안 어른들은 물론 동네 웃어른들께도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세배를 하였다. 세배를 할 때 어른들께는 “만수무강하세요.”, “복 많이 받으세요.” 등으로 말하고, 아랫사람에게는 상대에 따라 “부자 될 꿈이나 꾸었나?”, “장가 갈 꿈 꾸었나?”, “건강하고 공부 열심히 하여라.” 등의 덕담을 하였다.
세배가 끝나면 떡국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성묘를 다녀온다. 성묘는 돌아가신 조상의 묘를 찾아 새해 인사를 드리는 예이다. 설날에 성묘를 하지 못할 경우 보름 안에만 하면 크게 책을 잡지 않았다. 설날 저녁에는 가족과 함께 윷놀이를 많이 했으나 요즘은 윷놀이보다 화투놀이를 더 많이 한다. 그밖에 여자들은 널뛰기를 하였고, 남자아이들은 제기차기와 구슬치기 등의 놀이를 하였으나 요즘은 거의 하지 않는다.
정초의 풍속으로는 새해 신수를 보는 토정비결이나 무당의 신수점을 보기도 하였다. 삼재막이라 하여 삼재가 들면 삼재부적을 붙이거나 절에 가서 삼재풀이 불공을 드리는 액막이 풍속 등을 하였다. 또한 정초(正初)의 십이지일(十二支日)이라 하여 음력 1월 1일부터 12일까지 각 간지에 따라 지켜야 할 일들이 있었다. 주로 여성들의 금기가 많은 것이 특징이었으나, 이 풍속은 오늘날 거의 사라졌다.
[현황]
설날의 차례, 성묘와 같은 조상 숭배는 뿌리 깊은 미풍양속으로 현재까지도 강하게 지켜지고 있다. 반면 동네 웃어른께 세배를 다니는 일은 과거에 비해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