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A020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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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황경수, 고유리 |
할아버지 이야기가 끝나자, 할머니가 차와 과일 등을 내왔는데, 할아버지께서는 현재 할머니가 아파서 병원에 다니고 있다며 안타까워 하였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이 좋은 모습을 보며 할머니와의 혼인에 대한 이야기를 여쭤 보았다. 할아버지는 18살의 어린 시절에 아무것도 모른채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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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과의례-혼인
“일찍 했어요, 18살에. 18살에 장가를 안 갈려고 그러는데, 나도 어리거든. 철부지가 뭘 알어. 우리 할아버지가 아들 양자해서 손자가 태어났으니까 귀엽단 말이여. 얼른 손자며느리를 봐야겠어서 숨어도 다니고 도망도 다니고 그러는데, 결국 거역할 수가 없었어. 중학교를 가난해서 못 갔는데 집에서 한문 공부를 좀했는데 하루는 갓을 쓴 노인들이 왔었는데 그게 선을 본거여. 누가 중매를 해서 신부 집에서 신랑감이 어떤가 하고 보러 왔던 거여. 그때 쪼그만하지 뭐. 17살 정도 됐을 때 선을 보러 왔었지. 가서 정혼이 돼서 장가를 갔어요. 우리 할머니는 진천 덕산 사람인데 나보다 한 살 위여. 그 때 장가를 들러 가보니까 여자는 다 컸고 나는 아직도 덜 커. 죽 서서 구혼 예식을 치루는데 ‘신랑이 더 작어.’라는 말을 들었던 게 생각이 나. 함은 지금같이 야단스럽게 안보내고 여기서 함진애비를 샀어. 동네에서 평민이랄까 그런 사람을 사서 노자를 줘서 함에 넣을 거 넣어서 보내면 그 집에서 받지. 함속이라고 해서 신부가 입을 치마저고리 감을 보내요. 직접 해서 입고 오라고 보내는 건지 몰라도 있는 사람들은 더 보내고 질도 좋은 것을 하지. 어떤 사람들은 빌려서도 넣어 보내고 잔치 끝난 다음에 회수를 하기도 했던 세월이었어요.”
할아버지는 이어서 “혼인하고 난 뒤부터 지금의 집에서 살게 되었어요. 슬하에 아들이 다섯이요. 딸은 못 낳았고. 아들만 다섯 낳았습니다. 나가서 있고 큰놈하고 셋째, 넷째는 서울 살고 있고 둘째는 미국 가서 살고 있어요. 나는 환갑 잔치만 했는데 그 때 내가 현직에 있을 땐데 집에서 안하고 음성 식당에 가서 하고, 우리 식구는 그때부터 병이 나서 아파서 못해주고 나중에 10년 후에 칠순을 겸해서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지금도 할머니를 매우 아껴 주는 모습이었으며, 결혼을 하던 모습을 아주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기억력도 좋고 그 당시의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교사가 내 천직이야]
할아버지가 오래전부터 교직에 몸을 담고 현재는 정년퇴직을 한 상태라는 이야기를 듣고 할아버지의 직업관에 대해 여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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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교사가 된 과정 및 교사관
“할아버지는 언제부터 교사를 하고 싶으셨어요? 무슨 계기가 있었나요? 할아버지 시절에는 임용고사 같은 시험은 없었을 것 같은데요?”
할아버지는 수줍은 듯한 웃음을 지으며 교사가 된 과정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 해 주었다.
“나? 첨부터 교직이요. 난 어려서 자랄 적에 나한테 역할을 준 선생님이 있어. 그분이 일본분인데 초등학교 4학년 시절에 식민지 정책에서 일본 사람들한테 탄압을 엄청 받을 때요. 선생님이 초등학교 앞에 냇가로 수영을 하러 데리고 가셔. 일본 시마나현 사람인데 그 쪽도 양반 상놈을 많이 따지나봅디다. 냇가에 가서 놀면 선생님은 물이 깊으니까 대기를 하고 있어. 빠지면 구할려고. 하루는 선생님이 그런 소릴 해. 식민지 정책에 시달리니까 학생들이 볼 것이 없지. ‘너희들한테도 혼이 있다.’ 왜말로는 다마시라고 해요.”
할아버지의 초등학교 때 일본인 선생님께 영향을 받고 선생님이 되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혼을 살려라.’ 그래서 다마시가 도대체 뭔가 하고 생각을 했는데, 내가 나중에 성장하고 나니까 ‘너희들이 식민지 시대에 살지만 너희들한테도 조상이 있고 피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살려라.’라는 뜻이더라고. 다른 나라 사람이지만 난 그 선생님을 아주 존경해요.”라고 교사가 된 이유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리고 이어서 “그때는 저 사범학교를 졸업해서 가는 방법이 있고 시험을 봐서 가는 것이 있어요, 준교사 사범학교는 정교사고 시험을 보는 것이 준교산데, 중학교 졸업 이상이 준교사 시험을 볼 수 있어요. 10과목 정도 시험을 봐야 해요.”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모두 신기해서 그 당시에도 교사가 되려면 시험을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 여쭤 보니 당연히 시험을 봤어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할아버지는 사범학교를 들어갔지만 6·25가 나서 피난을 가다가 한국군으로 들어갔고 군복무를 39개월간 하였다.하지만 힘든 곳에서 군복무를 하셔서 병이 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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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성 할아버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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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3라고 작전, 거기서 일을 했는데, 너무 과로를 하는 바람에 병이 났어요. 병을 얻어서 제대를 하고 나와 보니까 3년이니까 같이 공부하던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교장선생님한테 가서 ‘저 이제 제대를 했으니 복학을 하겠습니다.’라고 하니까 그 학년에 그냥 다니라는 것이야. 동생들도 몇 번째 동생이고 내가 만학도라 학교에 늦게 들어갔는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어. 그래서 길을 찾은 것이 집에서 독학을 해서 삼정교사 준교사(초등학교 준교사는 초등학교 준교사 자격검정에 합격한 자, 고등학교 졸업자 또는 이와 동등 이상의 학력이 있다고 인정되는 자를 입소자격으로 하는 임시교원 양성기관을 수료한 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초등교육과를 졸업한 자이다.) 시험을 봤어요. 그래서 학교에 들어가니까 그 때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이 정교사로 와 있었어요. 친구들하고 같이 있어서 그렇게 교직생활을 했어요.”
이렇게 자신이 교사가 되어서 그 일을 천직으로 삼고 학교에서 아이들과 생활하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교사 시절 사진을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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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성 할아버지42
“다른 사람들은 정코스를 나와서 교직에 들어갔고 난 군인 갔다 와서 시험을 봐서 교직에 들어갔으니까 그때 충주사범학교 교장 선생이 이준갑 씨인데 그 어른이 ‘안 된다. 차근차근 밟아라.’라고 하셨지. 정당한 말씀이여. 내 속에는 어떻게 하든지 만회해서 그 사람들보다 나으면 나았지 떨어지면 안 되겠다 해서 열심히 했어. 불고가사(不顧家事)라고 할까. 집일은 몰랐어. 나는 하숙생과 같았어. 먹으면 학교 가고 먹으면 학교 가고 일요일도 없었어. 주위에서 어여삐 봤든지 불쌍히 봤든지 대통령 표창과 장관 표창도 받아봤어요. 95년에 정년퇴임을 했어요. 65세가 정년퇴임인데 30년생이니까.”
할아버지는 길고 긴 교직 생활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고, 표창장을 받은 이야기며 가정을 돌보지 않고 교사 생활에 충실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유교 정신을 간직하고 살아온 삶]
이렇게 잠시 적막이 흘렀고, 어색해진 우리는 적막을 깨기 위해 할아버지의 현재 생활 모습 중 혹시 종교를 가지고 계신지에 대해서 여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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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활동
“나? 나는 뭐 유교에 가깝죠. 그런데 우리 식구는 독실한 불교 신자예요. 종교에 자유가 있으니까 뒷받침을 하죠. 나는 종교를 묻는다면 유교라고 말할 수 있죠.” 유교라면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 같아서 “혹시 유교와 관련해 지금까지 지키고 있으신 법도, 뭐 그런 것들이 있으신가요?”라고 여쭈어 보았다. 할아버지는 “우리는 기제사를 지내죠. 나한테는 우리 할아버지부터 기제사를 지내는데 정식으로 엄격하게 지냅니다. 나는 제사를 지낼 때도 우리 넷째 아들이, 아들이 없어요. 딸만 둘이여. 넷째 아들의 손녀딸은 참석을 시켜요. 우리 며느리들도 꼭 공수하고 끝날 때까지 지켜보게 해요. 차례는 아직 뭐, 차례는 안 지내고 조상 차례를 모시는데, 가까이 우리 파조 추밀공이라고 있어요, 그분서부터 양촌 문촌공 할아버지 그 아드님 기제를 모시는데 내가 꼭 참석을 합니다. 우리 애들도 참석을 하라고 하는데 일요일 날 되면 참석을 하는데 그러지 않으면 못해요. 그건 아주 틀림없이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있으니 마치 서당의 훈장과 같은 날카로움이 있었다.
[교단에서 내려와 다시 새로운 가르침을 위한 출발]
할아버지는 교단에서 내려온 후에 서예를 취미로 하고 있다. 할아버지가 이야기 하는 모습 뒤편에 붓글씨 쓴 것들이 걸려 있었다. 할아버지께 여쭈어 보니 그냥 취미 삼아 써 본 것이라고 하면서 수줍어하였다. 교단에서 정년퇴임을 한 후에는 수년간 노인회 회장을 맡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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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상황
“노인회가 있잖아요 여기. 노인 회장을 맡기잖아요. 노인회 맡은 게 여적지 하고 있어요. 96년서부터 했으니까 10년이 넘었네. 그만 하려고 해도 자꾸 거듭 해달라고 해서 하고 있는데. 그만 해야지 이제. 종사 일을 좀 해야 될 거 아니에요. 집안 어른들이 맡겨서 종사 일도 여태까지 하고 있어요.”
할아버지가 요즘 하고 계신 일은 청소년의 유교 교육과 삼락회 행사라고 하였다.
“향교에 유교에 관여를 해서 청소년들 유교 교육을 해요. 초등학교까지 다니면서 맨날 하는 게 아니고 거기서 일정을 짜주면 하루에 두 시간 내지 세 시간씩 초, 중, 고 다 하고 학생들 모아 놓고 얘기 하는데 그때 보람을 느껴요. 학생들이 조용히 들어줄 때. 어느 학교에서는 가서 하는데 식당에서 하더라구요. 자모회의를 하다가 그분들이 죽 와서 들으셔. 효에 대한 강의를 열심히 할 땐데 끝나고 나니까 아주머니들이 와서 어머니들한테도 언제 해 줄 수 없냐고... 또, 삼락회라는 모임이 있어. 맹자의 삼락장("부모 생존하고 형제 무고한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고 위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고 아래로는 사람들을 대하여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 또 하나의 즐거움이고 천하의 영특한 인재를 가르치는 일 즉 교육하는 일이 다른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 맹자의 진심편, 君子由三樂章)에서 온 말인데 부모가 부존하고 형제가 잘 있으니 그게 일락이요 하늘을 보고 땅을 봐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으니 일락이요 천하의 영재를 봐서 교육을 하니 일락이라. 삼락회에서도 행사를 해요, 거기서 행사를 하는데도 가고. 그렇게 해서 배우면서 하죠.”라고 하면서 정년퇴임 후에도 여러 일로 인해 바쁘다고 하면서 이제는 서서히 모든 일을 정리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앞으로 할아버지의 계획]
이제 할아버지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지 궁금해서 “할아버지 앞으로 어떤 일을 계획하고 있으세요?”하고 여쭈어보니 “내가 80이 다 됐거든. 내가 생각해 봐도 의욕이 있는데 차차 나도 생을 접을 때가 왔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주위 정리를 해 놓아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올해도 계획을 하고 있어요. 언제까지 될지는 모르지만 기력이 닿는 한은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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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계획
할아버지는 앞으로도 기력이 닿는 한 아이들을 계속 가르치고 싶다는 말을 해 주었다.
할아버지가 유교인지라 유교와 관련해 가훈도 있다고 하면서 “우리 애들한테 가훈이랄까? 내가 세 가지를 항상 강조하고 있어요. ‘효제, 근검, 청정’ 세 가지를 지키려고 해요. 형제지간에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 있고 부지런하고 검소하고 맑고 우리 애들한테 가훈으로 하고 있어요. 나도 그걸 지키려고 노력을 합니다.”라고 하면서 가훈을 직접 붓글씨로 써서 액자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보여 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