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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세웠네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C010201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황경수, 윤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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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사

비산1리의 가장 큰 자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꼽자면 단연 ‘미타사’를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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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산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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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사 전경

동양 최대의 지장보살이 세워져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고, 마을 사람들이 절을 짓는 데 참여를 했다고 하여 비산1리 마을 사람들에게는 훨씬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절이기도 하다. 비산1리의 할아버지들에게 미타사가 언제부터 세워지게 되었는지 그 유래에 대해서 여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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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사에 있는 지장보살1

“할아버지, 마을 뒤쪽으로 큰 불상이 보이는데 저 절이 미타사 인가요?”

“그렇지. 지장보살이라고 높게 큰 거 있어. 애초에 세울 때는 동양의 최고라고 그랬어.”

할아버지는 미타사가 세워지기 전부터 절이 들어서게 된 계기까지 이야기를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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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사에 있는 지장보살2

미타사 자리는 예전에 절터가 있던 곳으로 돌부처가 나와 개인이 관리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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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사 마애여래입상3

그러던 어느 날 젊은 비구니 스님이 마을 사람의 권유로 절터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의 웅장한 미타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라고 한다.

미타사 자리가 예전에 절터가 있었어. 절터가 계단이 된 게 댓 개 됐어. 예전에 큰 절이었다 이거야. 그런데 폐사가 되었는데 그 예전 돌부처가 하나 있었어. 절이 없어지고 절터만 있었지. 언제 창건이 시작됐냐하면 1965년도. 작년에 죽었지만, 나이 스물댓 살 된 비구니 스님이 충남 수덕사에서 교육받고서, 말하자면 한 번 돌아다니면서 수양하러 나왔던 차에 여기 최봉락 씨라는 분이 그분을 만나가지고 ‘여기 절터가 있으니까 한번 가 보자.’ 그랬는데 마침 절터에 산주인이 원두막까지 짓고 조금 있었어. 그래서 그런 빈 칸이 있었으니까 거기 한번 있어보자. 해서 거길 간 거야.”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최봉락 씨가 미타사의 전 주지 스님인 명안 스님을 만나 절터의 불상을 모셔 줄 것을 부탁하여 마침 산 주인이 만들어 놓은 원두막에서 스님이 기거하게 된 것에서 미타사가 시작되었다는 이야기였다.

할아버지는 미타사가 건립되기 전에 마을에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었는지에 대해서 매우 자세히 알고 있었다. 미타사를 온전한 절로 만들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스님이 기거하는 동안 먹을 것을 조달하기도 하고, 미타사 건립을 위해 조금씩 모금을 하여 자신들의 손으로 미타사를 건립하였다는 미타사 건립 초창기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비구니 스님이었던 명안 스님이 그 불상을 모시면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미타사를 건립한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할아버지는 직접 절을 짓는데 함께 했던 사람으로서 자세하고 생생하게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럼. 그래서 거기 기거하면서 반찬이고 밥이고 먹게 하고 우리네가 전부해서 동네 사람들이 모금을 해서, 절을 처음 이제 대웅전이라고 한 칸 짓고, 거기 산신당 하나를 조그마하게 지었어. 전부 져 날라지었지. 절이 자꾸 커지고 점점 더 늘구게 되고 시방은 절이 부자가 되어서 지금은 올라가는 데 거진 다가 절 땅이라고. 지금은 절도 번창을 하고 그렇게 되었지.”

이처럼 할아버지도 직접 미타사를 짓는데 참여했을 정도로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이룩한 절이라고 하며 당시에는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현재 날로 발전하고 있는 절의 모습을 보면 매우 뿌듯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미타사는 매우 큰 절로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사찰이기 때문에 다양한 행사가 있는지 묻자, 칠월 칠석, 사월 초파일 등의 행사가 있다고 알려 주었다. 특히 음성군의 노인 어른들을 초청한 경로잔치는 특별히 자랑할 만한 것이라고 말을 해 주었다.

“행사야 많지 뭐. 칠월 칠석. 사월초파일 백일기도, 천일기도 별거 다 있고 행사야 많지. 미타사 저기서 해마다 봄에 음성군 전체에 초청해서, 한 가지 좋은 거 얘기해 줘야겠네. 음성군 경로회 노인들 초청해서 경로잔치 한 번씩 한다고. 사람들이 꽤 많이 오지. 한 200명 오지. 희망이 있는 사람만 오는 거지 뭐. 한 5~6년 전부터 한 거지 뭐. 미타사에서 주관해서 하는 거지.”

할아버지가 해 준 미타사에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약 1㎞ 정도 떨어진 미타사를 찾아 갔다. 현재 미타사희원 스님이 주지로 있다. 희원 스님은 미타사의 자세한 건립 유래와 여러 가지 신비로운 전설들을 이야기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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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사의 주지스님이신 희원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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