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D020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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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병암1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서영숙, 정연민 |
혼인이야기를 듣기 위해 먼발치에서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김금자 할머니를 오덕욱 할아버지 옆으로 모셔왔다. 뭘 그런 걸 물어보냐면서 두 분 모두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오덕욱 할아버지가 21세, 김금자 할머니가 20세였던 1955년에 혼인하였는데 당시에는 스무살만 되면 혼인을 하였다고 설명해 주었다.
오덕욱 할아버지의 부인인 김금자 할머니는 1936년 경기도 율면에서 4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김금자 할머니는 이천시 모가면에 있는 모가초등학교를 24회에 졸업하였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아버지가 학교를 일찍 보내고 싶어서 사촌언니의 이름을 빌려서 ‘김윤기’로 입학하였다. 당시에는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고, 다니더라도 8·15 해방을 겪으면서 학업을 중단한 사람들이 많았다. 김금자 할머니의 사촌언니도 학교를 입학하지 못해서 아버지가 그 이름을 빌려서 입학시킨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는 일정 때였기 때문에 일본어를 배웠고, 8·15 해방 후 6학년 1년간만 우리말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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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1
“나는 우리 반에서 나이가 제일 작았어요. 일곱 살에 들어갔는데, 십일월 오일 날이 생일인데, 그렇게 조그만한 사람을 학교에 넣었으니. 그래가지고 다 나보다 한 살씩 더 먹었어. 네 살 다섯 살 더 먹은 사람도 있고. 내가 제일 나이가 어려 우리 반에서는. 열세 살에 졸업을 했으니. 보통 열넷에 졸업을 하잖아. 너무 일찍 들어가 가지고, 내 나이가 안 차서 사촌언니 이름을 따서 학교에 넣었다니깐. 샘이 나서 아버지가. 그래서 그렇게 학교를 들어갔어요. 그래 이름도 글쎄, 내 이름이 아니여. 나는 김금자거든 이름이. 근데 김윤기로다가 졸업을 했다니깐 언니 이름으로”
김금자 할머니는 조용조용한 성격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따로 일을 하지 않고 있다가 사촌오빠의 중매로 오덕욱 할아버지에게 시집을 왔다.
오덕욱 할아버지 집안이 많이 기운 상태였는데도 친정집에서는 반대하지 않았는데, 그만큼 할아버지가 멋쟁이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결혼생활이 뭔지 잘 몰랐는데 살다 보면서 남편 없이는 못 살겠다는 걸 알게 되고, 맏동서가 잘해줘서 친형제마냥 지내고, 시어머니도 워낙 착하셔서 시집살이는 안하고 살았다. 오덕욱 할아버지와는 한평생을 같이 살았지만 말다툼 한 번 안했을 정도였다.
“이 동네, 저기 저 사는 사람이 우리 식구의 고종사촌 오빠가 이 동네 한 동네 살았어. 고종사촌 오빠가 고종사촌 오빠가 한동네 살아가지고선, 그가 중신을 해가지고선 여기서 처갓집 동네까지 가자면 거의 뭐 한 100리 된단 말이여. 인제 그래가지고선 중신을 해가지고 결혼을 했지. 어머니가 가서 선을 보고 왔어요. 그 땐 뭐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뭐 선보고 와서 잘났거나 못났거나 그냥 이쁘거나 안 이쁘거나 그 땐 서로 사주만 맞으면 가는 거야. 선만 보고 오면 서로 아주 싫다고 딱 잡아떼기 전에는 한다고. 우리 어머니는 원래 대범해서 말도 잘 안하시는데. 괜찮다고 하시더라고. 맞선은 없으니깐 어머니가 보고 와서 얘기하면 끝나는 거지”
오덕욱 할아버지가 직접 만나 선을 본 것이 아니고 어머니께서 선을 보고 오신 거라, 혹시 마을에 따로 마음을 둔 여자는 없었냐고 여쭤보자, 할아버지는 ‘허허허’하고 호탕하게 웃으며 말하였다.
“그때는 나이가 어려서 뭐 그런 거 그거 그런데 동네 색시들은 많았는데 전부 오빠, 오빠 하는 색시들이지 뭐 그래야 뭐 그런대 눈 뜨지도 않고 너무 여자들 하고 그렇게 장난도 안 하고 누구 좋아하는 사람도 없었고 그랬다고. 그래가지고 어머니가 보고 오셔서 대번 결혼한 거지 뭐.”
혼인은 음력 이월 초여드레에, 이천에 살고 있던 김금자 할머니 댁 마당에서 구식으로 치렀다. 당시 홍역이 심해서 마을에서 아이들이 죽어 나갔는데, 2살이던 막내 동생도 홍역이 심해서 어머니는 가지 못하고 아버지, 함진애비, 중신 선 분(김금자 어르신의 고종사촌오빠)만 함께 갔다. 함진애비로 앞집 노인이 갔는데 친구 아버지였다. 함진애비는 아무나 갈 수 없고 맏아들을 낳은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라 하였다. 또 ‘재끄름이’란 풍속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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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2
“인제 대개 맏아들 낳은 사람을 함진아비 시킨다고 그래가지고선 함진아비는 아무나 가는 게 아니야 딸 낳은 사람은 못 가. 가고 싶어도 꼭 맏아들 낳은 사람이나 돼야 데려가지. 갔다가 거기서 예식하고 인저 재끄름이라고 하지. 재끄름이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 이웃에다가 방 한 칸 얻어서 예복 다 갈아입고 나서 가마타고 예식 하러 들어가는 거야, 색시 집으로. 가마를 타고 가면 신랑한테로다가 이 재를 뭉쳐다가 던진다고. 들어가는 길 중간에서, 재끄름이라고 해서 재를 뿌리는 겨 얼굴에다가 꺼먹칠하고 청년들이 그렇게 장난하는 거야 그렇게. 몰골이 말이 아니지. 솥 밑에 꺼먹 재 있잖아, 솥 밑에 끄으름, 재. 그걸 손바닥에 묻혀서 얼굴에 막 묻히고, 신랑이 그래서 예식하는 겨. 그렇게 해서 하는 겨”
이웃에 방 한 칸을 빌려서 그곳에서 사모관대로 갈아입고 가마를 타고 김금자 할머니 댁으로 들어갔다. 그 곳 마을 사람들이 가마꾼을 했는데, 가마를 타고 이동 하던 중에 마을 사람들이 ‘재끄름이’를 하였다. 그 마을이 ‘연안김씨’ 집성촌이여서 김금자 할머니의 사촌오빠, 조카들이 가마에 매달려가며 얼굴에 재를 묻혔다.
예식 들어가기 전에 함부터 팔았는데, 함진애비가 나무로 만든 기러기를 들고 혼례식 하는 곳으로 들어간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오징어를 쓰고 노래를 부르는 등의 장난은 하지 않고 함을 지고 혼자 들어가 술 한 잔 얻어먹고 나오면 끝이 났다.
“장난도 안하고 혼자 들어가니깐. 우린 안 가고, 함진애비 혼자 들어가는 거야. 동네사람들 안내로, 가족들 안내로 들어가서 조용히 갖다 주고 오는겨. 함진애비한테는 장난 안 해요. 기러기라는 거 있지? 고거 들고선 들어가지. 나무로다 기러기 만든 거. 그거 해가지고 함 팔고 들어오면은 그때서 신랑이 예식 하러 들어가는겨.”
처가댁 입구에 들어가서 빨간색, 남색의 함보로 싼 함을 떡시루 위에 올려놓는다고 하였다. 그러면 신부아버지가 함 뚜껑을 열고 손을 넣어서 물건을 꺼내었다. 함 속에는 남색, 빨간색 치맛감과 반지가 들어있었는데, 남색 천을 꺼내면 아들, 빨간색 천을 꺼내면 딸을 낳는다는 말이 있었다.
“함을 인제 들여보내면, 친정아부지가 거기다 갔다 상에다 놔요. 상에서 뚜껑을 열고서 손을 이렇게 넣어서 빨간 거 남치마 뭐 이렇게 넣잖아요, 빨간 치마 남치마 넣잖아요. 남치마를 먼저 집어서 꺼내면 아들난다고 하고 빨간 치마를 먼저 집어서 꺼내면 딸을 낳는다고 그러더라고. 아들 낳는다고 야단인데 나는 생각이 안 나네.”
사주는 서로 선 봐서 양가 합의가 되면 날 받아서 바로 보내기 때문에 다른 거는 들어가 있지 않았다.
첫날밤 이야기를 여쭤보자, 오덕욱 할아버지는 멋쩍은 듯 고개를 돌렸고, 김금자 할머니께서 조용한 어투로 이야기해 주었다. 할머니는 첫날밤 할아버지가 자리에 안아다 눕혀 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때는 인제 족두리 벗고 족두리도 여기 왜 꽂은 거 빼면 와르르 쏟아지잖아. 그렇게 해서 벗고 여 옷고름 풀러 주고 옷 적삼은 벗기나 보데? 벗기고는 이제 치마하고 속치마하고는 벗기고서는 그걸 인제 색시를 번쩍 안아다 누워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이는 안 안아다 눕히고 그냥 가 드러누워요. 그래서 내가 어머 세상에 딴 사람들은 이렇게 언니들 하는 거 보면 요렇게 우리 신랑이 번쩍 안아다 눕히더라고. 안 안아다 눕히고 그냥 가 드러눕기에. 그래도 이렇게 드러누워서 잡아당기더라고. 그래 사람들은 문구멍 뚫고 다 바깥에서 구경하잖아요? 또 첫날밤 치루는 걸 그래서 이렇게 해서 잡아 당기길래 그냥 못 이기는 척 하면서 들어가 드러누웠어요. 그랬어요. 우리는 자존심 상해서 아주 남들은 다들 언니들 보니까 번쩍 안아다 눕히더라고요. 그러는 거래요. 원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