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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 큰애가 네 살 때 합동결혼식을 했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D020302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병암1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서영숙, 조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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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한복실)

남편은 청송심씨, ‘심대웅’씨로 전라도 광주에서 살다가 아주 어릴 때 병암1리로 이사를 왔다. 시아버지는 광주에 살고 있을 때 일찍 돌아가셨다고 한다. 남편의 형제로 남동생만 있었고, 남동생의 장모가 한복실 할머니 친정 근처에 살고 있어서 그 분의 중매로 혼인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잘 사는 줄 알고 시집을 왔는데 와보니 속아서 왔다며 거듭 말하였다.

“여기는 어떻게 소개해 가지고 왔는데 처음에 속아가지고 왔어. 저 시동생 장모가 서울서 살았는데 그이가 중매를 했는데. 속았지. 잘 살고 그런다구. 그래서 속아서 시집을 왔지. 오니깐 시어미가 계시는데, 없이 살아. 초가집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다 헐어서”

시집을 오니 전기불도 들어오지 않는 초가집이었고 남편의 나이는 37세로 재혼이었다. 첫 번째 부인은 시어머니가 못 살게 굴어 내쫓은 것이었다.

“아저씨는 지금 칠십 둘. 그때는 서른일곱. 그러니까 속아서 왔지. 결혼을 해가지고 하도 못되게 해가지고 가버린겨. 그러니까 속아서 왔다니까. 첫째 며느리가 잘 들어왔댜. 근데 쫓아냈댜. 그래서 나는 속아서 온 거지”

친정에서 오빠와 함께 내려왔는데, 친정도 가난하고 시댁도 가난해서 같이 살다가 나중에 혼례식을 하자고 해서, 혼례식도 올리지 못한 채 그날부터 같이 살게 되었다. 그렇게 살다가 큰 아들이 네 살 때 정부에서 합동결혼식을 올려줘서 그때 혼례식을 치렀다.

“그때, 없이 살 때는 정부에서 합동결혼식을 시켰잖아. 그래서 합동 결혼했어요. 저기 문산에서. 초파일 날. 한 삼십 명이 같이. 살다 애 살다 큰 애 낳고서는 했지. 친정에서 오빠가 데리고 왔지. 그러니깐 속았는데 혼인식을 왜 안하느냐고. 우리 엄마도 우리 친정도 가난하고 여기도 가난하니까 그냥 살기만 하자고. 그래서 합동결혼식을 하고 말았지. 그 때 큰애가 네 살 때였는데, 큰 애가 지금 서른다섯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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