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E010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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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사정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기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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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마을 유래비
[강당마을 유래]
강당마을은 한강의 상원지류를 앞으로 하고 차령과 노령의 정기서린 부용산 기슭에 자리잡은 安東金氏 세거지이다. 아무리 가물어도 모래톱에서 일정량의 물이 솟는 모래 우물이 있어 모래샘 또는 沙井이라 하였다. 금소목이는 음성현의 金村部曲으로 쇠를 다루던 곳이며 신라 때부터 퉁쇠로 농기구를 만들던 퉁뱅이들이 모여 살아 부곡이 형성되었고 음성 지역에서는 씨족이 마을을 이룬 가장 오래된 텃골로 文씨·慶씨가 부자 소리 들으며 살던 문경 텃골이 있다. 안동김씨의 시조 金宣平의 18대 손 군자감정 金懳께서 임진왜란 후 광해군이 등극하자 불만을 품고 낙향하시어 터를 잡아 살면서 부락 입구에 강당을 짓고 주변에 느티나무를 심으시고 후손을 가르치셨다. 1909년 가을 의병을 쫓던 왜군들의 방화로 강당이 소실되었던 것을 1935년 봄 현 위치로 이전 개축하여 강당이라 하였다. 예로부터 마을에서는 음력 정월에 부락의 안녕을 빌며 제사를 지내던 서낭당이 있어 지금도 불상사가 없는 살기 좋은 평화스런 마을이다. 1914년 강당말, 내촌, 벌터를 합하여 沙丁里로 명명하고 1956년 읍으로 승격되어 독립 里가 되었다. 1963년 새마을 운동 시작으로 안길 40m를 확장하고 젊은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지게로 돌을 운반하여 재건탑을 세우고 지붕, 담장, 아궁이를 개량하여 전국 최초로 모범 부락이 되었다. 1967년에는 마을회관 30평을 건립하고 1990년 주민과 출향인사가 한마음으로 농로 2,130m를 포장하고 1995년 경로당 22평을 신축하였다. 옛 근서면 사정리 당시 87호에 406명이 거주하다 현재는 45호에 130명이 살고 있다. 앞에는 한 쌍의 봉황이요, 뒤로는 부처님의 연꽃자락에 안겨 있는 이 마을은 金寸部曲이였네. 부처님 생명수 받아 마음을 씻고 모래샘 물 받아 마시니 사정인가 생명수 모래 샘물 흘러 호수 이루고 후학 양성하는 강당이 되니 충렬의 고장이요 안동김씨 후예가 이룬 강당마을이라네. 연연히 맥을 이어 인재 배출하니 세세연년 복받은 마을로 후세에 영원히 전하고자 새천년을 맞이하여 부용각과 이 비를 세운다.
서기 2000년 10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