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E0206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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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사정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서영숙, 조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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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건지기 위해 온 충청도
전라도에서 이 먼 곳까지 어떻게 오게 되었냐고 물어보자, “시집올 때 세상이 지금 같았으면 이런 곳으로 시집 안 왔다.”며 다시금 강조하여 말하였다. 처음 충청도에 왔을 때 너무 조용하다고 생각했다. 전라도에 살 때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칼끝에 앉은 것 마냥 불안하고, 매일같이 순경들에게 붙들려가서 문초 당하고 두들겨 맞았다. 빨갱이 한 패가 지나가고 나면 가슴이 철렁 하고 내려앉았고, 순경들은 빨갱이들이 “누구 집에서 뭐했느냐 재웠느냐 밥 먹었느냐”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여서 대답을 안 하면 알면서 감춘다고 밤새 고문을 했다. 너무 고생스러워서 마을 사람들이 계속 마을을 떠나자 순경들이 또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라고 밤새 고문을 했다. 고문에 진저리가 날 정도였다. 그래서 부모님이 딸을 살리기 위해 이곳 충청도로 시집을 보냈다.
“거기서 듣기는 충청도는 통 그런 일이 없다고, 그래서 이리 왔지. 목숨이라도 하나 건진다고 친정아버지가 이리 보냈어. 여기는 조용하니깐. 나 막 오고 일주일 만엔가? 나 사는 동네서 우리 오빠까지 열일곱 명인데 청년들이. 오빠도 아버지가 삭 빼서 진주 당숙 있는데 그리 야반도주해서 보내버리고, 나 이리 보내고. 나오고 일주일 만에 열여섯을 나란히, 청년들 세워놓고 그냥 총 쐈댜. 엄마 아부지한테 총을 막 눈에다 갖다 들이대면서 아들 찾아내라고 막 야단이고. 엄마 아부지가 죽어도 어디로 갔는지 모른 게, 어디로 간 행방을 못 가르쳐 준다고. 그래가지고 세 번을 와서 총구를 눈에다 대는데, 아이고 죽겄더랴, 아주. 그래도 그 격란을 함쓰렁도 오빠 보낸 데를 안 갈켜줬어. 나중에 빨갱이 시절이 조용할 때 오빠가 나왔는데 동네사람들이 우리 오빠를 붙들고, 우리 아무개씨는 그렇게 죽었다고 우리 아무개씨는 그렇게 죽었다고. 목심 구녕(목숨 구멍)에 살았다고. 부모를 잘 만나서 목심 구녕에 살았다고. 열일곱 명 중에서 오빠 하나 살고 나 하나 살고.”
강정순 할머니의 오빠도 아버지가 진주 당숙 집으로 야반도주하여 도망을 보냈다. 두 남매가 마을을 떠나고 일주일 뒤에 빨갱이들이 마을에 들어와 마을 청년 17명을 학살했다. 빨갱이들이 다 가고 마을이 조용해져서 오빠가 다시 마을로 돌아갔는데, 마을 사람들이 “자기 자식들은 죽었는데, 부모 잘 만나서 살았다”며 오빠를 붙들고 우셨다.
아버지 덕분에 강정순 할머니 남매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당시 아버지께서는 세상을 훤히 내다보셨다.
“자식들 5남매를 앉혀놓고 ‘지금 2차가 일어나서 살기가 곤란한데, 앞으로 살라면 더 곤란할 거다. 강도가 심하고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고. 이집 저집 누군가 겪을 텐데 살라면 곤란하다.’ 지금이 그렇잖아. 사람이 사람 죽이는 게 잡아먹는 거지 뭐여. 강도는 얼마나 심해. ‘이렇게 살면은, 3차가 일어나면 정도사가 돌문을 열고 나와서 칼만 한 번 휘~저으면, 그때 가서는 완전한 시상이 될 테니깐 앞으로 살아봐라. 그때는 10리 가면 사람 하나씩 있다시피 한다’ 그렇게 말씀하셨어”
그렇게 목숨을 건지기 위해 온 충청도에서도 난리를 피할 수 없었다. 큰 딸이 막 돌 지났을 때 6·25가 났는데, 음성에서 청주 나가는 곳까지 눈밭을 걸어 피난을 나가라 고생을 많이 했다.
“저 건너 산하고 이 산하고 높아가지고 맞대향을 해 막 총이 쏘면, 마당에다 막 쐈어. 양쪽에서는 대향을 하고 가운데서 있으니깐 어떻햐. 아이구 죽일라면 죽여줍소서 급하니깐 이소리가 절로 나와. 아이고, 난리만 겪다가 늙었어. 두 난리만 겪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인민군들이 위로 올라가며 용대동을 지나쳐갔다. 외양간의 돼지도 마음대로 잡아먹고 닭도 잡아먹었는데 가족에게 해를 끼칠까 무서워서 아무 말 못하고 구석으로 가서 떨고만 있었다. 그렇게 인민군들이 4일 동안 지나갔는데, 그들이 방을 차지해서 가족들과 부엌과 헛간에서 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