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E0206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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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사정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서영숙, 조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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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애기로 낳은 4남매
남편이 5남 1녀 중 장남으로, 시댁에 오자 시부모님 2명, 시누이 1명, 시동생 4명과 남편까지 8명의 대식구가 살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평택임씨로 당시 47세였다. 시집을 오고 그 다음날부터는 시어머니의 혹독한 시집살이가 시작되었다. 첫날밤만 신랑하고 단 둘이 한 방을 쓰고 그 다음날부터 29년간을 시어머니와 한 방을 썼다.
“첫날밤만 신랑하고 이렇게 둘이 앉아서 방 썼지. 그 이튿날 저녁부터는 신랑은 저 앞에 요하나 깔고 이불 하나 덮고 당구만 집어넣고, 방은 요만한테 시어머니하고, 이불도 참 요만하다 크도 않고. 그거 아랫목에 피고 발이나 요코 옆으로, 이렇게 꾸부리고, 시상 32년을 시어머니하고 한 방에서.”
신랑은 윗목에 이불 깔고 시어머니가 눕고, 어르신은 이불도 제대로 덮지 못한 채 발만 겨우 넣고 잠을 잤다. 시어머니 노릇을 하느라 사랑방에서 할아버지가 혼자 주무셔도 절대 가지 않고 꼭 강정순 할머니 부부와 한방에서 잤다. 마을에서 유명할 정도로 시집살이를 심하게 시키셨다. 그래서 시집을 와서 매일같이 저녁때마다 밖에 나가서 기둥나무를 붙들고 산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앞산이 가슴에 닿은 것 마냥 너무 갑갑하고.” 그렇게 울고는 또 혼날까봐 안 운 척 눈물을 닦고 방으로 들어갔다.
“애들을 하나둘 낳다보니, 애들을 4남매를 낳았는데, 그것들 주 누켜놓고 할머니 드러눕고, 내 자리 요거밖에 안돼. 고거의 열배 꼬불고, 이불은 요고만한데 발도 지대로 못 녀. 그렇게 시상을 보냈어.”
시어머니와 한방을 썼는데 어떻게 아이를 가졌냐고 여쭤보자, “이렇게, 이렇게~” 하며 말을 잇지 못한 채 부끄러운듯 웃음을 보였다. 그러자 옆에서 같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박순자 할머니(43년생, 25세)가 “도둑애기, 할머니 새벽에 나가셨을 때.”라고 웃으면서 대신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우리도 웃음이 났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강정순 할머니가 마저 이야기를 해주었다.
“할머니가 초저녁에 내가 부엌에서 설거지 하고 들어오면 그때 벌써 아랫목에 둔너. 코올 그러고 막 자. 초저녁잠이 많아가지고. 그럼 나 바깥에 일 다 보고 들어오면 벌써 우리 할머니 그때 다 잤어. 열두시가 넘으니깐. 다 자고 있어나서. 신발도 안 신어, 버선발 맨발로. 엎치럭 동당 묻고 댕기고. 댕김시롱, 마룻장을 뭘 갖다 비락을 침시롱. 그렇게 잠이 많아가지고 이년아 살림을 하느니 못하느니, 니 새끼들은 키우느니 못 키우느니 막 그러고 돌아댕기는겨 밤에, 왜 그렇게 궁시렁거리고 돌아댕기는지. 아이코. 그럼 마음 놓고 잠이나 한숨 푹 자? 낮에도 걍 애 이렇게 들고 앉아 있으면 노다지도 꾸벅꾸벅 졸지 잠을 못 자니. 호맹이 들고 들에 밭에 감수롱도. 길을 감수롱도 졸고. 잠을 실컷 못자서.”
나중에 동서들을 얻었을 때, 할머니가 “나는 평생을 못 잤으니깐, 자기들은 실컷 자라”며 동서들을 재웠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