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E020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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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사정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기범 |
벼농사는 예나 지금이나 강당말과 용대동 마을 사람들의 생업이다. 벼농사도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주로 기계화에 따른 변화로 트랙터, 이앙기, 콤바인 등을 이용하여 벼농사를 짓는 것이다.
예전의 벼농사와 오늘날의 벼농사에 대하여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강당말 김두일 새마을지도자(52년생, 56세)는 벼농사 전체 과정에 대하여 “우선 벼농사를 지으려면 논을 갈고 논을 간 다음 못자리를 만들고 모를 잘 키워 모를 쪄서 잘 삶은 논에 모를 심어 그리고 논을 매 논을 맨다는 것은 풀을 뽑는다는 것이거든. 그리고 나서 피도 뽑고 피라는 풀이 있는데 벼하고 비슷해. 그리고 가을이 되면 벼를 비고 타작을 해서 퉁가리나 방에 쌓아놓으면 한해 벼농사가 끝나는 것이지 뭐”라고 이야기 하였다.
다음은 마을 사람이 이야기 한 벼농사 과정이다.
1) 볍씨 담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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볍씨담그기
못자리를 만들기 전에 제일 먼저 하는 작업이다. 김장일 할아버지(37년생, 71세)는 볍씨 담그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였다.
“예전에는 큰 통에 소금을 물에 푸는데 계란이 3분지1 정도 물 위로 떠오르게 그만큼 소금을 풀어. 농도를 맞추는 거지. 그 소금물에 볍씨를 부어. 그러면 쭉정이는 전수 위로 뜨고 알맹이는 가라 앉어. 그러면 쭉정이를 싹 걷어 내구 잘 여문 볍씨를 소금물에서 건져 놓고 그 다음에는 소독약을 물에 풀어서 소금물에서 건져낸 볍씨를 하룻밤을 소독물에 담궈 놓는겨. 24시간이 지난 다음 아무것도 안탄 그러니까 맹물로 갈아주는겨. 또 하루 동안 담가놨다가 물을 적당하게 갈아주고 며칠을 하지. 그러면 소독약이 싹 씻어져. 볍씨도 물에 불고어서 못자리에 나가면 싹이 잘 트는 거여”
그런데 오늘날은 기계를 이용하기 때문에 볍씨 담글 때부터 기계에 맞게 작업을 한다. 볍씨를 담그고 나서는, 이앙기에 들어갈 모판 상자에 직접 모를 키우기 위한 모판상자를 만든다. 모판 상자 만드는 것에 대하여 강당말 김두일 새마을지도자는 “먼저 모판 상자에 들어가는 황토 흙을 얼기미 같은 채로 쳐. 곱게 흙을 만들어. 그 흙을 모판 상자에 담고는 이렇게 생긴 판자 같은 것이 있어. 그걸 가지고 모판 위를 싹 긁어내면 흙이 판판해져. 그 판판해진 그 흙에다 소독약을 뿌려 줘. 물에다 약을 타가지고 물주는 조로로 뿌려 줘. 그리고 나서 볍씨를 골고루 뿌리고 그 위에다가 흙을 체로 쳐서 덮어 주면 모판이 끝난다구”라고 하였다.
2) 못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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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자리
볍씨를 담가 놓고 못자리판을 만드는데 못자리를 만드는 순서는 판골 타기→번지치기→볍씨뿌리기→피사리→허리거름주기로 한다.
못자리 만드는 것에 대하여 강당말 김두일 새마을지도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였다.
“논의 한쪽 물대기 좋고 관리하기 좋은 곳에 못자리를 할 만큼 논을 갈고 물을 흥건히 대 놓고. 그 다음에 써레질을 하구 나서 물을 빼. 그런 다음 못줄을 대고 모판 골을 타. 바로 판골 타기, 판골뜨기라 해”
판골타기를 한 후 번지치기를 한다.
“판을 뜬 모판에 재를 골고루 뿌리고 발로 삶아. 그런 후에 번지로 모판을 평평하게 골라. 이게 번질이야. 한 이틀 정도 지나면 물이 골을 타고 쑥 빠진다. 모판이 완전히 마르지는 않고 꾸들꾸들해져”
번지치기가 끝나면 볍씨를 뿌리게 되는데 “꾸들꾸들해진 모판에 다 잠기도록 물을 가득 대. 그리고 나서 담궈 뒀던 볍씨를 모판에 뿌려. 뿌릴 때에는 볍씨를 골고루 뿌려야 하기 때문에 바람 불지 않는 날이나 식전에 뿌리지. 볍씨에서 싹을 틔고 뿌리를 내려 모가 클 때까지 물을 계속 대 주면 되는 겨”
그 이후 못자리 관리는 피사리, 허리거름주기 등을 하는데 “모가 요만큼 손가락만큼 크면 못자리 물을 빼내. 그러면 뿌리가 튼튼해져 그리고 모가 꼿꼿하게 서지. 모가 이만큼 크게 되면 풀도 많이 자라. 풀을 뽑아주어야 는데 이를 피사리한다고 해. 피사리한 다음 모에 거름 주지. 그것을 허리거름이라고 해. 모내기 때까지 계속 피사리를 해줘.
오늘날의 모판상자 못자리에 대하여도 강당말 김두일 새마을지도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였다.
“요새는 이앙기로 모를 심기 때문에 못자리부터 이앙기에 맞춰서 모판을 만들어. 먼저 모판상자를 모판에 가지런히 놓고 못자리에 대나무나 프라스틱 활대를 꽂고 비닐을 덮어서 못자리를 만들지. 모가 클 때까지 물을 대 주는데 못자리판 위로 올라오지 않도록 한다구.
모판에 싹이 새파랗게 올라오면 물을 모판 위까지 올라오도록 댔다가 한 이틀 후에 쭉 빼여. 이것을 모가 크도록 하는 거거든. 그리고 내내 낮에는 날이 따뜻해지기 때문에 모가 타지 않도록 비닐을 걷어올려서 환기를 시켜주고, 밤이 되어 쌀쌀해지니까 비닐을 덮어 보온을 시켜. 모내기하기 이삼일 전에 비닐을 완전히 벗겨 놔”
3) 논갈이
못자리를 해 놓으면 논을 가는데 가을에 갈아놓았던 논에 물을 대고 쟁기로 간다. 이렇게 처음 가는 것을 ‘초갈이’, ‘아이갈이’라 한다. 초갈이를 한 후 일주일에서 열흘쯤 그대로 두었다가 두 번째 논을 가는데 이를 ‘이듬갈이’라 한다. 또 두었다가 쟁기로 드문드문 간다. 이와 같이 모내기하기 전에 세 번 정도 논을 갈았다. 그러나 소가 없는 집에서는 두 번 정도 갈고 모를 내는 것이 보통이고 소가 있는 집에서만 세 번 정도 갈았다.
써레질은 갈아 놓은 논을 평평하게 고르는 일로, 모내기하기 하루 전날이나 모를 내는 날에 하는데 ‘논을 삶는다’고 한다..
경운기가 나오면서 위의 논갈기는 모두 경운기로 했고, 지금은 거의 트랙터로 하고 있다. 기계로 하면서는 두 번 세 번 갈던 논을 한 번만 갈 뿐만 아니라, 써레질을 하는 대신 로타리를 친다.
4) 모내기
모내기를 하려면 제일 먼저 모를 찌는데 이를 ‘모찌기’라 한다. 강당말 김두일 새마을지도자는 모내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였다. “모찌기는 주로 아침 먹고 오전 새이(새참) 먹기 전까지 못자리에서 모를 찌는데 모를 뽑아 짚으로 모의 중간허리를 묵어 그러면 그게 모 한 첨이야. 그리고 나서 찐 모를 지게에 지고 옮겨. 모를 심는데 논에는 못줄을 띄우는데 간격을 일정하게 하려고 못줄을 띄우지. 장줄의 빨간 눈에 맞추어 못줄을 띄워. 사람이 많으면 두 사람이 양쪽 논두렁에서 못줄을 잡고 나머지 사람들은 못줄의 빨간 눈에 맞춰 모를 심어. 사람이 적으면 못줄 잡는 사람을 따로 두지 않고 ‘두줄빼기’를 하는데 한 사람이 두 줄씩 심어나가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여. ‘두줄빼기’는 빨리 많이 심으려고 못줄을 한 번 띄우고 두 줄을 심는 것이거든. 모를 찌고 심기까지 잘하는 사람은 두 명이 하루에 한 마지기 정도 심어. 모내기는 대개 품앗이로 많이 했어.”
기계화가 되면서 이제는 이앙기를 이용해서 모내기를 한다. 따라서 예전만큼 많은 사람이 필요가 없다. 모판을 나르는 사람과 이앙기를 운전하는 사람 두 명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손으로 모내기를 하는 것보다 같은 시간에 몇 배는 더 많이 심는다.
5) 김매기
모내기를 하고 보름쯤 지나면 논을 매는데 김을 맨다고 한다. 김매는 날 아침 일찍 비료를 준다. 김매기는 처음에는 호미로 논고랑을 푹푹 파 엎는데 이를 ‘아이매기’라 하고, 일주일쯤 후에는 손으로 저으면서 풀을 뽑아서 논 속에 파묻기도 하는데, 이를 ‘이듬매기’라 한다. 호미와 손으로 하던 김매기는 70년대에는 초기가 나와서 빨라지더니 오늘날은 약으로 된 제초제가 나와 김매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6) 벼베기
벼베기는 예전에는 낫을 이용하였지만 지금은 콤바인을 이용하고 있다. 강당말 김두일 새마을지도자는 벼베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였다.
“벼를 빌 때 낫으로 벼서 단을 묶어서 세워 말려. 벼나락이 잘 마르라고. 한 보름쯤 세워서 말리다가 밑둥이 마르도록 논에 눕혀 놔. 밑둥이 다 마르면 지게로 져 날러. 예전에는 다 져 날랐지. 어깨가 얼얼해져. 그래도 소가 있는 집은 소에 질마 씌우고 그 위에 실어서 옮기기도 하고, 또 구루마, 마차로 옮겼어. 마당질 할 마당에다 볏가리를 쌓는 거여.”
7) 타작
타작은 자리개질, 홀치기, 발틀탈곡기, 전동탈곡기, 콤바인 등으로 변하였다.
타작에 대하여 강당말 김장일 할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였다. “옛날에는 벼, 보리 다 자리개질을 해서 타작했지. 짚으로 새끼로 꼬아서 손잡이는 굵게 꼬았지. 그리고 개상 그러니까 나무로 깎은 절구통을 눕혀 놓고 움직이지 않게 양쪽에 받침을 놓아. 그리고 자리개로 보리나 벼를 단을 감아 잡아서 어깨 위로 올렸다가 개상에다 보리나 벼 이삭 그러니까 모가지를 내려치면 곡식이 털려서 떨어지지. 다 떨어지면 쭉 펴놓고 일꾼들이 빙 둘러서서 도리깨를 가지고 도리깨질을 하지. 그러면 이삭에서 곡식알이 다 빠져 나오는 거지. 그런 다음 풍구질이나 바람에 부쳐. 그렇게 하면 쭉정이나 까래기 같은 거는 다 날아가고 알맹이만 남어. 그 다음이 훌치기야. 자리개질로 하다가 빗처럼 생긴 훌치기, 홀치기가 나왔어. 홀치기를 발로 받치고 벼를 한 움큼씩 잡고 빗살같이 생긴 살에 끼우고 쭈욱 잡아댕겨 훑으면 알곡이 떨어지지. 그러고 발로 밟아 통을 굴려 고식을 터는 탈곡기가 나온거여. 발로 구르면 와랑 와랑 돌아가면서 곡식을 떨어서 와랑이라고 했어. 와랑을 볏가리 옆에다 놓고, 볏가리하고 탈고기를 송판이나 넓은 판으로 걸쳐 놔. 그리고 여러 사람이 쭉 서서 벼를 떠는 거여. 한 사람이 볏가리에서 볏단을 내려주면, 판자 위에서 볏단을 풀어서 한 움큼 씩 떼내서 첫 번째 사람한테 주어. 발틀에는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서서 이렇게 좌우로 돌려가면서 반쯤 털고 넘겨주고, 그러면 다음 사람이 털고 남은 것을 넘겨주면 끝에 사람이 마지막으로 털고 볏짚을 바깥으로 던져. 그 옆에서 짚을 단으로 묶는 사람이 있어. 짚을 토매를 쳐서 묶어. 짚토매를 쳐서뒀다가 잘 마르면 동을 묶어. 묶어서는 볏가리처럼 짚가리를 쌓아 놔. 그다음에 나오는 것이 발동기나 경운기를 이용한 탈곡기여. 이것은 와랑보다 한 10배 이상은 빨랐을 거여. 이제 요새는 벼를 베면서 탈곡까지 되는 콤바인으로 벼를 베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