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0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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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後泰 |
영어음역 | An Hutae |
이칭/별칭 | 내숙(內叔),월창(月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각회리 산 7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종대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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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북도 음성군 |
성별 | 남 |
생년 | 1636년 |
몰년 | 1689년 |
본관 | 광주 |
대표관직 | 동부승지 |
[정의]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내숙(內叔), 호는 월창(月窓). 광양군(光陽君) 안황(安滉)의 증손이고, 동몽교관 안시수(安時秀)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1666년(헌종 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가주서를 지냈다. 1670년 주서에 임명되었으며 1674년 이후 장령, 필선, 정언을 거쳤다. 1680년(숙종 6) 다시 장령, 정언이 되어 유명견·조성 등을 사판(仕版)에서 지우고 목내선·이하진을 파직시켰다. 장령, 사간, 정언을 옮겨 다니다가 12월에 집의가 되어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에 참여하였다.
1681년 집의로서 전라우도 암행어사로 포상도 하였으나, 어사로서 술 마시고 취하는 추태를 보여 행인들에게 비웃음을 샀다고 논핵을 받기도 하였다. 승정원동부승지에 올랐으나, 1689년 노론으로 기사환국(己巳換局)에 교명(敎命)을 받지 않아 파직되었다가 이 해에 54세로 죽었다. 가선대부 예조참판에 증직되었다.
[묘소]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각회리 산 72번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