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D020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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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병암1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서영숙, 정연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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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생활 및 제대 후
군대 생활을 서울에서 해서 훈련소 때 외에는 늘 김금자 할머니와 함께 있었다. 오덕욱 할아버지 동생 분들이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김금자 할머니가 밥을 해주기 위해 서울에 올라와 있었다. 훈련소 때는 어쩔 수 없이 군사우편으로 소식을 주고받았지만, 자대배치를 받고 나서는 주말이면 항상 함께 있었다.
“군대 생활은 잘했지, 좋은 데 가서 편안하게. 서울 위로는 올라가보질 않았으니까. 항상 서울에 있었으니까, 나는. 서울 저기 나 있던 데가 서울 한남동인데 그리고 공병대에 있었걸랑. 그리고 공병대에서 행정병으로 있었으니까 사뭇 편했지. 그때 우리 할 적에가 32개월하고 그래서 인저 나 제대하고 나와서 5·16혁명이 났지. 군대에서 제대하고 나와서 근데 4·19 혁명을 겪었어요. 우리 제대 말년에 4·19 때 그 뭐야 데모대도 하도 서울에 들끓고 그땐 아주 무법천지 때걸랑. 저 그때 뭐 대통령 하야하고 이규봉이 아들한테 총에 맞아 죽고 할 때 그때니까. 그래서 그 4·19 일어나는 바람에 두 달 있다가 군대생활 더했지 그 바람에”
제대를 하고 병암1리에 돌아오고 얼마 안 있어 이장을 맡았다. 당시 정부 정책으로 군대를 다녀온 젊은 청년들을 이장으로 시켰다고 한다. 제대를 하고 5·16이 일어났고, 그 다음 달에 이장이 되어서 14년간 이장을 맡아왔다. 이장을 맡을 당시 할아버지의 나이는 29살밖에 안 되었다고 한다.
군대를 가기 전에는 동네 친구들하고 맨날 노래나 부르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오덕욱 할아버지는 그 시절의 본인을 ‘건달’이었다고 표현하였다. 노래 부르는 것을 워낙 좋아하고 잘 부르는데, 이장직을 맡으면서 술 먹는 일이 많아졌는데 술만 마시면 노래를 불러서 김금자 할머니가 곤란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술김에도 들어오면 노래를 그렇게 불러요. 부모님들 민망하잖아. 아버님 계신데 입을 막 틀어막고 그러면 그래도 노래를 막 부르는 거예요. 옛날 막 흘러간 노래들. 노래는 잘해요”
노래는 주로 유행가를 불렀다. 오덕욱 할아버지가 원래 노래를 잘 부르기 때문에 술만 마시면 노래를 불렀다. 따로 즐겨 부르는 노래는 없어도 ‘두만강, 백설의 홍콩아가씨’등을 흉내를 곧잘 냈다고 하였다.
“그럼 아버님은 또 화가 나셔서 문을 막 열어 제치면서 이놈의 자식은 위아래도 모른다고 걱정하시네 또. 몸이 달아 죽겄는데 입을 막 틀어막고, 아버님 이담에 돌아가시면 그때 실컷 하라고 못 하게 했지. 그래서 그랬지 뭐. 싫은 소리 안하고 신랑하고 그래 보지도 않았어요. 싸우거나 그런 거 안 했어요. 골이 났다가도 내가 먼저 풀어줘야지. 내가 밤에라도 이불 이렇게 쓰고서 확 돌아 누워요. 조금만 싫은 소리를 하면. 그러면 내가, 아이고 왜 이렇게 돌아 잡아 댕기면 마지못해 오지 그렇지 않으면 안와요. 내가 꼭 풀어줬어. 자기도 그건 생각할껴”
오덕욱 할아버지는 김금자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쑥스러운 듯 고개를 못 들었다. 그러다 “원래 멋이 없었어”라며 작게나마 변명을 하였다.
시아버지께서 완고하셔서 김금자 할머니와 시어머니는 장에도 안 나갔다고 하였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시아버지께서 장에 가서 직접 사다주셔서, 시어머니는 혼인하고 3년 동안은 밖에 안 나갔을 정도였다.
시아버지도 술 잘 드셔서 집에서 술을 직접 담갔다. 당시에는 ‘밀주’라고 하여 집에서 술을 담그면 세무서에서 벌금을 내게 했는데, 그 벌금을 많이 냈다.
“우리 아버님은 밤에 술을 아주 이렇게 집에서 해가지고 밤에 술을 짜가지고서는 집에서 해 놓은 것을 짜서는 주전자에다 담아서 상에다 이렇게 갖다 놔요. 그러면 그걸 밤에 한 주전자를 다 잡숴요. 약주를 그렇게 좋아하셨어요. 인저 낮에도 이렇게 술 생각이 나시면 안방으로 들어오시는 겨. 화롯불 있고 우리가 바느질하고 그러면은, 인제 거기다가 술 한 잔 데워서 이래 드리면, 잡수고 나가시고, 술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그냥 집에서 해놓고 드렸어요. 술을 옛날에는 왜 술 해 놓으면 왜 걸리기도 잘하잖아. 또 거기서 군에서도 나와 가지고 세무서에서 나와서, 그렇게 술 그거 들키기도 많이 들키고 어머니 이름이 아주 거기가 올라가 있잖아. 한번은 바느질을 하려고 맏동서하고 이렇게 앉았는데 저기 문을 덮어놓고 여는 겨 저기 세무서에서 나와서 그러니까 우리 맏동서하고 이렇게 앉았다가 벌떡 일어나서 술 항아리를 가리고 서있으니까 절로 좀 가보랴. 아휴 그래서 한번 들켰는데 어떻게 미안한지 죽을 뻔 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