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D020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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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병암1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서영숙, 정연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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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오덕욱 할아버지는 따로 직장을 다녀본 적이 없고 계속 농사만 지었다. 어릴 때부터 집안이 부유하였는데 오덕욱 할아버지가 군대를 가서 잠시 집안이 기울었다가 제대 후 다시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집안이 일어났다.
“옛날에 우리 조부님이 때는 생극면 부자 노릇 했었어요. 몇 년도인지 몰라? 8·15 해방 전이지. 4학년 때인가? 장마 져서 70마지기를 떠내려 보낸 겨 홍수에다가. 지금은 복구라도 하지 그때는 복구를. 그래도 논 열 댓마지기 남았더랴. 그거 가지고 살면서. 밭도 많고. 근데 세상이 기우는 게 아니라 아버지 왕년에 쓰시던 그런 게 있으니깐. 그래서 밭전 하나씩 팔아먹으시는 겨. 논은 그래도 안 팔고. 밭은 많이 팔아먹었지. 길옆으로 다 우리 밭이었으니깐. 죄 팔아먹고”
당시에 홍수로 70마지기가 떠내려가자 인근 사람들이 ‘이진말 광 떠내려 갔다’고 했을 정도로 오덕욱 할아버지 댁의 논밭이 많았었고 그만큼 수해가 컸다고 한다.
“나 군대 가니깐 농사 질 사람이 없어서. 아버님이 농사지으시는데. 생전 농사 안 지어보셨어요. 생전 손에 풀물 한번 안 들여 본 분인데. 우리 아버님이. 그래서 농사 안 짓고 일꾼 둘씩 두고 지었던 건데. 그래서 농사지면 맨날 죽이는겨. 비료만 퍼줘가지고서. 맨날 죽이고. 죽이니깐 전부 싸래기 하고서. 쌀 있어? 맨날 빚 읃어 먹고. 보리농사 지어서 일년 내 보리밥 먹고. 내가 제대하고 나와서 내가 살림하고서부터 괜찮았어요”
73년부터 참외, 고추 농사를 시작하면서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자녀들 공부 뒷바라지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