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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안동. 할아버지는 권돈(權墩), 아버지는 함흥도호부사 권급(權伋)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에서 출생하였다. 할아버지에게 한학을 배우고 성리학을 연구하였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후배 양성에 힘썼다. 27세로 일찍 죽었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에 묘소가 있다. 좌승지겸경연참찬관(左承旨兼經筵參贊官)에 증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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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안동. 자는 성흥(聖興). 권휴(權休)의 아들이다. 권점은 선조의 유훈에 따라 도학(道學)에만 전념하였다. 향년 93세로 죽자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오위도총부부총관(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五衛都摠府副摠管)에 증직되었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능산리 산직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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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덕삼(德三), 호는 난계(蘭溪), 자호는 난곡(蘭谷). 음성의 시거조(始居祖) 김덕항(金德恒)의 증손이고, 김기제(金起悌)의 손자이며, 삼화부사 김각(金珏)의 둘째아들이다. 부인은 함양박씨로 조부는 현감 박내창(朴乃昌)이며, 아버지는 박상채(朴尙采)이다. 아들은 김중화(金重華)이다. 김일관(金一觀)[1684~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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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선비. 본관은 밀양. 자는 경견(敬絹), 호는 입재(立齋). 정조 대의 명신 매곡 박한규의 6세손이다. 아들로 박석원과 박두원이 있다. 경기도 용인에서 출생하였다. 일곱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삼봉리로 이주하였다. 15~16세 때 회당 윤응선에게 수학하여 학문에 탁월하였다. 일제의 학정에 세상의 뜻을 버리고 은거하여 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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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백거(伯擧). 증조는 현감 반석권(潘碩權), 아버지는 반인후(潘仁後)이다. 부인은 천안전씨로 전욱(全郁)의 딸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반인후(潘仁後)를 따라 의병을 일으켜 많은 전공을 세웠다. 왜적과 싸우다가 아버지가 말에서 떨어지자 아버지를 업고 적의 포위를 뚫고 나왔다. 충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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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성지(聖之), 호는 고산(孤山). 아버지는 반정익(潘廷翼)이다. 1626년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났다. 송시열의 문인이다. 아버지가 아프자 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세 번이나 손가락을 끊어 피를 내어 먹였다. 재주와 인품이 훌륭하고 문장이 뛰어나 향리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았다. 과거를 보지 않고 학문에 몰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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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인.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효선(孝先). 할아버지는 반석권(潘碩權)이며, 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郞) 반사렴(潘士濂)이다. 1557년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였고 효성이 깊었다. 1598년(선조 31) 효행으로 천거되어 국자감주부(國子監主簿)에 제수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정경세(鄭經世), 이준(李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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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인.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경빈(敬賓), 호는 정와(定窩). 득우재(得寓齋) 송상철(宋相哲)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송헌삼(宋憲三)이다. 인효(仁孝)에 밝고 예법에 어긋남이 없었다. 송달용이 임종 때 “인간 일생이 오랜 것이 아닌데 어찌 영화만을 바라겠느냐”라고 탄식했다는 말을 전해 들은 마을 사람들이 감동하여 “현인(賢人)이 이제는 가고 말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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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이자 한의사. 고려 말 명상 염제신(廉悌臣)의 17세손이다. 염두경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영민하고 슬기로워 문학에 전념하였으나 과거에는 뜻이 없고 질병에 허덕이는 만민을 구제할 인술에 뜻을 두어 정진하더니 신기한 의법에 정통하여 신의(神醫)로 이름을 날렸다. 각지에서 난치환자가 쇄도하였는데 누구나 구하기 쉬운 생약으로 고칠 수 없는 병에 특효를 보인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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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유학자.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이견(而見), 호는 석농(石農). 숙헌공(肅憲公) 오빈(吳䎙)의 8세손이다. 어려서부터 재예가 뛰어나고 학문이 깊어 간재(艮齋) 전우(田愚)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0세에 사서육경을 통달하고, 20세 이전에 여러 책을 두루 익혀 문장이 널리 알려졌다. 사학(史學)에 정통하여 역사의 대가인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도 경의를 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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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문화. 아버지는 유백종(柳伯宗)이다. 재종조(再從祖)인 장령 유정수가 경기도 고양군 수색에 살던 중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 이를 간하다가 연산군의 노여움을 받아 초산으로 유배되었고 유배에서 풀린 뒤에도 복직되지 못하였다. 어려서 이러한 상황을 본 유광총은 자신의 가문에서 과거길이 막힌 것을 근심하다가 십승지지(十勝之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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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무송윤씨 충청북도 음성군 입향조. 본관은 무송. 자는 자신(子新), 호는 낙옹(樂翁). 군자감정(軍資監正) 윤이관(尹李寬)의 아들이다. 1660년(현종 1) 경상북도 상주군에서 살다가 천연두가 크게 유행하자 이를 피하기 위해 선대의 고향인 경기도 여주군으로 가던 도중에 충청북도 음성군 당곡(唐谷)[지금의 하당리]에서 외숙부인 주부(主簿) 반운익(潘雲翼)을 만나 하노리 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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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회당 윤응선(尹膺善) 문하에서 배웠다. 약관의 나이에 사서육경을 통독하고 제자백가에도 통달하였다. 박세화·윤응선·신현국 세 사람의 문집 간행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또 효행이 지극하여 10년 동안이나 늙은 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세수를 시키며 망건을 씌워 드리는 등 봉양을 하루같이 실천하였고, 상을 당하여 6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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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나주. 아버지는 교리 정수곤(丁壽崑)이다. 형으로 정담(丁聃)이 있다. 1510년(중종 5)에 생원시에 급제했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 산봉(山峰)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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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인천. 자는 영이(詠而), 호는 우담(雩潭). 아버지는 채유종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에서 출생하였다. 경사백가에 통달하고, 특히 역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지리·의학·복서·음율 등에 밝았다. 1630년(인조 8) 천문을 관측해 보고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있을 것을 예측하고 고향인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 물언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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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충주. 강원도관찰사 최개국(崔蓋國)의 종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최인정(崔仁禎), 아버지는 최배(崔㠔)이다. 최개국이 을사사화를 입어 삭탈 관직되자 이에 연루된 조부 최인정, 부친 최배는 충주에서 쫓겨 청안으로 피신하여 살았다. 최기오가 나이 들어 1690년(숙종 16)에 다시 충주로 가던 도중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평곡리 토계울에 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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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이자 자선사업가. 피학용은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살았으며, 천석(千石)의 부자였다. 1805년(순조 5) 38세 때 충주 지방에 흉년이 들어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돈 백 냥과 수십 석의 쌀로 구휼하였다. 충주목사가 이 사실을 당시 충청도관찰사였던 박윤수(朴崙壽)에게 알렸으며, 이 사실로 표창을 받았다. 1819년(순조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