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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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은 원래 동네 이름이 아니었다. 지금의 남산 동네 뒤에 있는 산이 관아(官衙)에서 보아 남쪽에 있는 산이라 해서 남산이라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그 산 아래에 있는 마을을 남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19세인 열을 판서공, 희를 승지공이라 부르는데 이 판서공과 승지공의 후손이 주로 새올(신곡)을 본거지로 삼고 있다. 판서공의 후손은 주로 안마와 거리마에 거주하였고, 승지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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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노상직이 경상북도 구미시의 금오산을 지날 때 길재를 추모하며 지은 한시. 노상직은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 금곡리에서 태어났다. 생부는 극재 노필연인데 후에 숙부인 우당 노호연의 양자가 되었다. 5세에 『효경』을 배우기 시작해 12세 때 사서삼경을 다 읽었다. 15세 때 향시에 응시했으며 17세 때 당시 김해부사인 박원석이 고을의 자제들을 모아 하과(夏課)를 실시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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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장복추가 구미 지역의 금오산에 올라 자연 경관을 사실적으로 읊은 한시. 장복추는 조선 후기의 예학자이자 당시 최고의 학단을 이끈 교육자이다. 자는 경하(景遐), 호는 사미헌(四未軒)이다. 장복추는 경상북도 예천 지역에서 출생하였지만 본관이 인동으로 경상북도 구미 지역과 관련이 깊은 인물이다. 「금오산」은 장복추의 『사미헌집(四未軒集)』 제1권에 수록되어 있다. 금오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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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2년(철종 3) 장복추가 구미 지역의 금오산을 유람한 후 지은 유람기. 장복추(張福樞, 1815~1900)는 조선 후기의 예학자이자 당시 최고의 학단을 이끈 교육자이다. 자는 경하(景遐), 호는 사미헌(四未軒)이다. 장복추는 경상북도 예천 지역에서 출생하였지만 본관이 인동으로 경상북도 구미 지역과 관련이 깊은 인물이다. 「금오산유록」은 장복추가 1852년 8월 탑동(塔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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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고종 3) 송병선이 구미 지역의 금오산을 비롯해 천마산·추풍령 일대를 유람하고 쓴 기행문. 송병선(宋秉璿, 1836~1905)은 조선 고종(高宗, 1852~1919) 때의 문신으로 자는 화옥(華玉), 호는 연재(淵齋)이다. 벼슬이 좨주를 거쳐 대사헌에 이르렀으며,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일본을 경계할 것을 상소하고 고향에 가서 자살하였다. 「유금오산기」(송병선)는 송병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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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1년(인조 19) 김응조가 구미 지역의 찰미당 설립 취지를 밝힌 누정기. 김응조(金應祖, 1587~1667)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효징(孝徵), 호는 학사(鶴沙)·아헌(啞軒)이다. 「찰미당기」는 1641년 인동부사 김응조가 인동 관아를 이건하고 남은 재목으로 관아 남쪽 고을의 가장 높은 곳에 지은 찰미당(察眉堂)의 설립 취지를 밝힌 누정기(樓亭記)이다. 55세인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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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편찬된 인동의 옛 읍지. 『옥산지』는 1699년(숙종 25) 조정에서 각 고을에 영을 내려 지지(地誌)를 수정하여 올리도록 하자 인동부사 최문징(崔文澂)이 권유하고 지역의 인사들이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699년(숙종 25) 조정에서 지지(地誌)를 수정하여 올리도록 하였으므로 인동부사 최문징이 권유하고, 향교 도유사였던 안재(安齋) 장유(張瑠)가 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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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편찬된 인동부의 옛 읍지. 도지에 수록된 인동부의 옛 읍지로 지역에서 편성되어 상송되었으며,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1760년(영조 36) 이후 전국적 상송령에 따라 수집 편성된 『여지도서』인동편에 이어 지역의 현실을 담은 읍지가 계속 편찬되어 상송되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경상도읍지』에 수록된 『인동부읍지』가 있다. 『경상도읍지』의 『인동부읍지』는 과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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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편찬된 경상도 인동부의 옛 읍지. 인동에 대한 지리 정보를 보여주는 ‘인동읍지’는 숙종조의 『옥산지』를 비롯하여 『경상도읍지』 내의 『인동부읍지』 등이 있다. 특히 상송령이나 필요에 따라 지역에서 작성된 단독의 『인동읍지』는 여러 종이 있으며, 19세기 후반기에 집중적으로 편찬되었다. 도지(道誌)에 수록되지 않으면서 단독으로 나오는 『인동읍지』는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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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개국 직후 선산은 길재(吉再)의 고향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길재의 관료 생활은 길지 않았고 정계에서 주목받은 것도 아니었다. 34세가 되던 1386년(우왕 12) 문과에 합격한 이후 1387년(우왕 13) 성균관 학정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낙향하는 1390년(창왕 3)까지 4년 동안, 길재는 성균관의 박사(博士), 교수(敎授)와 같은 교육 관련 하위직에서 근무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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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운동 시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구미 지역의 3·1운동은 3월 12일 진평동에서 시작되어 약 한 달 동안 전개되었다. 진평동 독립만세운동은 3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 동안 4차례에 걸쳐 적게는 20~30명에서부터 많게는 200여 명이 참여했으며, 체포되어 6개월 이상 감옥 생활을 한 인사만도 25명이나 되었다. 또 4월 3일 해평면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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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한 강호의 선정비. 강호(姜鎬)는 문과로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1656년(효종 7)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657년(효종 8) 필선(弼善)으로 승배되어 떠났다. 그의 재임기간 동안의 선정을 기려 주민들이 비를 세웠다.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 인동향교 입구에 인동 각지에 산재해 있던 역대 현감과 부사의 선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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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국가시대부터 통일신라 말까지 구미 지역의 역사. 선산 지역에서는 초기 국가의 흔적은 찾을 수 없지만, 삼국시대에 들어서는 백제와 신라의 영토 확장으로 인한 각축장이 되었다가 점차 신라의 영역에 편입되어 일선군(一善郡)이 설치되었다. 눌지왕 때에는 일선군의 모례(毛禮)의 집에 묵호자(墨胡子)가, 소지왕 때에는 아도(阿道)가 와서 불교를 전하기도 하였다. 일선군은 614년(진평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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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고등보통교육과 실업전문교육을 실시하는 기관. 1963년 면에서 읍으로 승격되었지만 여전히 한적한 시골에 지나지 않았던 구미는 1969년 구미공업단지가 조성되어 국내 최대 내륙공업기지로 발전하면서 실업계 고교들의 설치가 이루어지자 고등학교 교육이 본격적으로 확대되었다. 1978년 구미읍과 인동면이 통합되어 구미시로 승격하고, 1995년 1월 1일 구미시와 선산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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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룡(子龍). 할아버지는 고몽담(高夢聃)이고, 아버지는 풍기군수 두곡(杜谷) 고응척(高應陟)이며, 어머니는 남극문(南克文)의 딸이다. 고한운(高翰雲)은 1573년(선조 6)에 진사가 되었고, 1585년(선조 18) 식년문과에 갑과 1위 장원으로 급제하여 부안현감이 되었다. 부안현감으로 있을 당시 왜병이 침략했다는 소식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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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출신의 열녀. 본관은 인동(仁同). 아버지는 장이상(張利相)이며, 남편은 현풍곽씨(玄風郭氏) 곽종화(郭鍾化)이다. 곽종화의 처 인동장씨는 품행이 단아하며 시부모를 봉양하는 데 정성을 다하였으며, 남편이 중풍에 걸리자 정성을 다하여 간병하였다. 지역의 유림이 곽종화의 처 인동장씨의 열행을 추천하였고, 조정에서 정려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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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열녀. 본관은 양성(陽城). 아버지는 이석배(李碩培)이며, 남편은 현풍곽씨(玄風郭氏) 곽태호(郭泰鎬)이다. 곽태호의 처 양성이씨는 16세에 시집온 후 시부모와 남편을 잘 모시고 부도(婦道)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남편이 중병으로 5년 동안 앓게 되자 그 병을 자기가 대신 앓기를 매일 같이 기도했지만, 남편은 끝내 1918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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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풍속·풍광·사적 등을 유람하는 일. 관광이라는 말은 관광 행위를 가리키는 경우와 사회 현상으로서의 관광 현상을 가리키는 경우가 있다. 관광 행위는 좁은 뜻으로는 다른 나라나 낯선 지역의 풍경·풍습·문물(文物) 등을 보거나 체험하는 일이고, 넓은 뜻으로는 즐거움을 목적으로 하는 여행을 가리킨다. 관광에 해당되는 영어 단어는 tourism인데, 이것은 포괄적인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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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 있는 조선시대의 교지. 교지는 조선시대에 임금이 문무관 4품 이상의 관리에게 주던 사령(辭令)을 일컫는 것으로, 개국 초에는 왕지(王旨)라고 하다가 1425년(세종 7)에 교지로 개칭하였고 한말에는 칙명(勅命)이라고도 하였다. 구미 지역의 교지로는 154점 정도가 전해진다. 이들 교지를 시호가 내려진 시호교지, 후대에 추증되어 관직에 제수되는 추증교지, 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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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를 연결하는 교통망과 교통 현황. 구미시는 동남쪽으로는 칠곡군, 서쪽으로는 김천시, 북쪽으로는 상주시, 동북쪽으로는 군위군과 의성군에 접하고 있는 경상북도 서남부 지역의 중심 도시이다. 역사적으로 구미시는 경상북도 서남부 지역의 경제 중심지이고, 경부선 철도 및 경부고속국도가 통과하여 경상북도의 북부 지방과 연결해주는 교통의 결절지이다. 대구와 대전을 연결하는 경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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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상북도 구미시가 관할하는 지역은 과거의 선산·해평·인동 지역이다. 따라서 구미시 지역을 관향으로 둔 성씨는 선산(일명 일선)·해평·인동으로 나뉜다. 선산 지역을 관향으로 둔 성씨 중에는 김종직을 배출한 일선김씨가 유명하고, 해평 지역을 관향으로 둔 성씨 중에는 길재를 배출한 해평길씨가 유명하고, 인동 지역을 관향으로 둔 성씨는 장현광을 배출한 인동장씨가 유명하다. 특히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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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은 최근 많은 등산객이 찾는 탓에 잘 알려진 산이 되었다. 외지에 나가서 구미에서 왔다고 하면 으레 ‘금오산을 올랐노라’는 말을 듣게 된다. 구미 사람들은 외지 방문에서 돌아올 때면 멀리서 나타나는 금오산을 보고서 ‘구미에 다 왔구나’ 하는 표지로 삼고 있다. 한반도의 진산(鎭山)은 백두산이다. 백두산에서 태백산이 이루어졌고, 다시 소백산이 되고, 소백산은 죽령과 새재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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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황상동에 있는 우편, 체신, 금융 기관. 우체국은 국장의 지위에 따라서 4급(서기관국), 5급(사무관국), 6급(주사국), 7급(주사보국)으로 분류되거나 기능에 따라서 체신청, 우편집중국, 집배국, 무집배국으로도 분류된다. 또한 설립 주체에 따라 일반우체국, 별정우체국, 우편취급소 등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4급과 5급우체국은 총괄국으로서 기초자치 단체 단위로 1국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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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구평동에 속하는 자연마을. 임진왜란 당시 진을 아홉 번 옮겨 가며 싸운 곳이라고 해서 구진벌(九陣伐)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거북의 등처럼 딱딱하고 거친 땅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또 밭으로 돌아간다는 귀전부리(歸田夫里)에서 나온 이름이라고도 한다. 구준벌, 귀전벌이라고도 한다. 구진벌은 천생산에서 남쪽으로 약 2㎞쯤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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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 있었다고 추정되는 삼한시대 소국. 우리나라 역사에서 1~3세기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북쪽에는 낙랑군이 위치하고, 남쪽에는 삼한이 형성되는 시기로, 철기가 보편적으로 수용되고 청동으로 이기를 만드는 전통은 소멸하는 단계이다. 따라서 큰 틀에서 보면 중국 한(漢) 계통의 자료를 부장하면서 목관 또는 목곽을 매장의 주체로 사용하는 철기시대 초기 단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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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영화 상영 시설. 구미는 1995년 선산군과 구미시가 통합되어 그 명칭이 구미시가 되었다. 1970년대 이후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의 길로 나아간 대표적 도시인 구미시는 산업과 경제를 떠올리기는 쉽지만 문화를 생각하기는 어렵다. 1990년대부터 조금씩 문화적 여유를 찾게 됨으로써 구미 지역에 극장이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대부분 활성화되지 못하고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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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이후부터 현대까지 경상북도 구미시의 역사. 구미 지역은 1895년 지방제도의 개편 때 선산군·인동군으로 설립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선산군은 선산면과 고아면으로 분리되고, 인동군은 폐지되어 칠곡군에 병합되었다. 해방 후 1963년 선산군의 구미면이 구미읍으로 승격되었고, 1978년에는 구미읍과 인동면이 통합하여 구미시로 승격하면서 선산면에서 분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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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에 위치한 산. 금오산은 구미의 대표적인 산으로, 칠곡군과 김천시의 경계에 걸쳐 자리하고 있다. 금오산을 고려시대에는 남숭산(南崇山)이라고 했으니, 이러한 지명의 유래는 중국에서 기인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고려 문종은 왕자를 출가시켜 이 산에서 수도하게 하였고, 훗날 대각국사로 봉하여 불교의 포교 및 국정의 자문에 임하도록 했다. 이는 금오산의 품격과 위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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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경상북도 구미 지역 금오산에 축조한 이중의 석축 산성. 금오산성을 처음 쌓은 연대가 문헌상에 있지 않아 확실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고려 후기 왜구들이 내륙 깊숙이까지 빈번히 쳐들어와 인명을 살상하고 노략질을 일삼자, 인근 선산·인동·개령·성주 백성들이 금오산(金烏山)에 피난하여 왜구들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성을 쌓고 군병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이곳에 군량과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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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6월에 날이 가물면 비를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 기우제는 가뭄이 계속되어 농작물의 파종이나 성장에 해가 있을 때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며 지내는 제의(祭儀)이다. 가뭄이 심하면 농사짓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기우제를 지내 비가 오기를 비는 것은 전국적인 현상이다. 구미 지역에도 마을 단위로 지역의 지방 수령이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들이 보인다. 현지 조사에 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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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구미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길재는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이색, 정몽주, 권근 등에게 성리학을 배웠다. 조선 건국 후에는 친교가 있던 태종 이방원에 의하여 태상박사로 임명되었으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거절하고 고향인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으로 돌아가 후학을 가르쳤다. 특히 김숙자에게 성리학을 가르쳤으며, 그 학통은 김종직, 김굉필, 조광조 등에게로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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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열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왜적이 인동 고을에 진을 치고 갖은 만행을 자행하였다. 왜적들이 김성기의 처 임씨를 붙잡아 욕을 보이려 하자 끝내 항거하며 바위 밑으로 떨어져 죽었다. 임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조정에서 정려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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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순천. 자는 용재(龍在), 호는 서강(西岡). 좌의정을 지낸 김승주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김순정(金順挺)이다. 김수담은 1684년(숙종 10)에 진사가 되었고, 1687년(숙종 13)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좌랑을 거쳐 고령현감을 지냈다. 1694년(숙종 20)에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인동 땅에 은거하였으며, 경서(經書)와 사서(史書)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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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김응해의 선정비. 김응해(金應海)는 무과로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1630년(인조 8)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632년(인조 10) 정주목사로 승배되어 떠났다. 그가 재임 기간 동안 선정을 베풀었기에 백성들이 이를 기려 선정비를 세웠다. 높이 133㎝, 너비 64㎝, 두께 19.5㎝의 비신을 세우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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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장씨 세계(世系)에 따르면, 시조를 장금용으로 하고 있으며 그 이후 15세에 해당하는 장우(張俁)가 인동에 처음 들어 온 입향조이며, 19세에 해당하는 장열과 장희의 후손들이 신동 마을의 주류를 이루었다. 다음의 세계표는 인동장씨 세계를 간추려, 인동 입향조와 신동 입향조를 표시한 것이다. 〈표〉인동장씨 세계표 중 인동 입향조와 신동 입향조 19세인 열을 판서공,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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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다카키 쇼오지[高木昌治]의 칭송비. 다카키 쇼우지는 일본인으로서 인동우체국 근처에서 살았다. 인동 지방에서 최초로 자전거를 탄 사람으로 잘 알려진 그는 곡물상을 운영하였는데, 특히 함경도까지 왕래하면서 조를 많이 취급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26년부터 흉년이 계속 들어 기근이 심했을 때, 곳간을 열어 빈민들을 구제해 주었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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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금오산에 위치한 자연 동굴. 신라 말 풍수의 대가인 도선이 참선하여 득도한 곳이라 하여 도선굴이라고 하며, 암벽에 뚫려 있는 천연 동굴로 큰 구멍이라는 뜻으로 대혈(大穴)이라 하기도 한다. 최인재의 『일선지(一善誌)』에 근거하면 도선굴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시기는 조선 전기이고, 또 다른 이름인 대혈이라고 불렸던 것은 고려시대로 추측된다. 굴 아래 대혈사지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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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던 자연마을. 서울로 가는 길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도서(道西)라고 하였다는 설, 옛 한양으로 가는 길목인 이 곳에 주막이 있었는데, 주인의 이름이 박도서였기 때문에 도서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다. 도세는 도서를 방언으로 불러서 변형되었다고 한다. 북쪽 천생산이 동서로 계속 연속하여 발달되어 있다. 서쪽으로는 공업단지를 지나 낙동강이 남북으로 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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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신동에 속하는 자연마을. 경신년 산사태 이후 이주하여 생긴 마을인데 주위에 돌이 많은데서 유래하였다. 남쪽으로 유학산 능선에 닿아 있으며, 북쪽으로 학서지, 천생산과 마주보고 있다. 도토골에서 길 건너편 학서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신동 학서2길에 있는 마을로서 행정구역상 인동동에 편제되어 있다. 인동에서 칠곡 방향으로 국도 67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오른쪽에 인동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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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과 진평동, 칠곡군 석적읍 중리 일원에 있는 도시공원. 구미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낙동강을 따라 구미대교 아래 구미시 임수동에서 칠곡군 석적읍 중리까지 조성된 동락공원은 세계 최초의 전자신종이 설치되어 있다. 동락(東洛)은 동방의 이락(伊洛)에서 유래한 것으로 인동 지역에서 출생하여 대학자가 된 여헌 장현광(張顯光, 1544~1637)을 기리는 동락서원에서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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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구미 공단에서 인동으로 연결되는 구미대교 끝 부분 좌측 아래의 낙동강 기슭 야산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동락서원은 인조(仁祖) 때 산림(山林)으로 이름이 높았던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1554~1637)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655년(효종 6) 제자들이 건립한 서원이다. 1601년(선조 34)에 장현광이 지은 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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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 동락서원에 있는 조선 후기 강당 건물. 구미 공단에서 인동으로 연결되는 구미대교 끝 부분 좌측 아래의 낙동강 기슭 야산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동락서원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1554~1637)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655년(효종 6) 제자들이 부지암정사(不知巖精舍) 자리에 건립한 서원이다. 이 서원은 1676년(숙종 2) 동락서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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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구미 청소년 야영장이 위치한 뒷개들의 맨 위쪽에는 고려시대에 조성하여 수해의 근심을 막았다고 하는 소나무 숲 ‘해평장림’이 있다. 마을주민들은 ‘뒷개솔숲’이라고도 부르는데, 뒷개들에 있는 소나무 숲이라는 뜻이다. 『선산부읍지(善山府邑誌)』 임수조(林藪條)에는 ‘해평수(海平藪)’라고 소개되어 있으며, 고려시대 정승 윤석(尹碩)이 솔씨를 뿌려 숲을 만들어서 수해의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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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생산은 해발 406m의 낮은 산이지만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다. 마주보는 금오산(976m)과 함께 지역 일대에서 예로부터 중요한 산으로 여겨왔다. 낙동강 쪽에서 산을 바라보면 산 정상이 일(一)자로 보여 ‘방티산’이라 불렸다고 한다. 비교적 작은 산이지만 구미시 인동, 장천면, 칠곡군 가산면에 걸쳐 있으며, 단애와 절벽이 둘러친 곳이 많아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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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종교인. 박태희는 옥계교회를 설립한 박용하의 12남매 자녀 중 여덟째(아들로는 셋째)로 태어났다. 처는 박태희보다 7살 아래로 옥계교회에서 분가해 나간 성전교회의 신자였으며 장모가 그 동네에서 처음으로 교회를 다녔을 만큼 신앙이 깊은 집안에서 자랐다. 형제 중 맏아들과 차남이 옥계교회의 장립집사이고 셋째 아들이 서리집사이며, 맏사위가 상모교회 장로이고, 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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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도량동의 봉화대를 관리하던 곳. 구미시 도량동에 위치한 도량근린공원에는 조선시대부터 봉화대를 관리하던 봉화재가 있었다 하는데, 현재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지리적 특성과 관련하여 구미 지역에는 다수의 봉수대가 위치하였다. 그 중 하나로서 구미시 선산읍 원리 남산(藍山)에 위치한 남산 봉수대는 사방이 확 트인 산정에 위치하며, 낙동강과 감천이 합류하는 남산의 북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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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8월 6·25전쟁 시 국군이 북한군의 낙동강 도하(渡河)를 저지하기 위해 비산진에서 벌인 전투.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6월 28일 수도 서울을 점령하고, 7월 20일 대전(大田)을 장악한 뒤, 8월 15일까지는 낙동강 선을 넘으려는 작전을 계획하였다. 따라서 7월 말 북한군 제15사단(총병력 약 5,000명)은 낙동강으로 진출하기 위해 상주(尙州) 정면에서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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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지형. 산은 구체적으로 가파른 사면과 단일한 봉우리가 포함되어 있는 높이 솟아오른 지형(landform)을 의미한다. 해수면을 기준으로 특정한 높이 이상의 지형을 산이라고 지칭하지는 않지만 영국의 경우 일반적으로 600m(2000ft) 이상의 지형을 가리킨다. 우리나라의 경우 산지(山地, mountains)는 기복량이 100~200m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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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은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주로 ‘새올(월)’로 불린다. 신곡(新谷)은 신동 마을 전체를 이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새로운 골을 이루었다는 뜻이다. 마을 안에는 못둑마, 웃마와 아랫마, 가리마, 새마 등의 작은 마을들이 자리하고 있다. 동쪽으로 칠곡군(漆谷郡) 가산면(架山面)과 경계한 구미시의 최동단 마을이다. 서쪽으로 구평동(九坪洞)과 접하고 있으며 행정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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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상품 판매를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제 활동. 넓은 뜻의 상업은 생산에서부터 소비자에게 상품의 사회적 배급 활동, 생산 및 소비의 지도, 가격의 조정, 배급 활동을 효율화하기 위한 촉진적 보조 활동 등을 포함한다. 좁은 뜻의 상업은 개개 상인의 영리 목적에 의해서 행해지는 경제 활동을 말한다. 구미 지역의 상업은 조선 후기에 민간 수공업이 늘고 화폐 경제가 발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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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600년전(1424년경) 강릉유씨(江陵劉氏[劉仁悌, 字 而恭, 號 松齋, 大提學]가 인동(仁同) 고을에 처음 들어와 정착하였다. 뒤이어 함안조씨(咸安趙氏)[趙淵, 字 靜鄕, 號 耐軒, 贈 戶曹參議]가 이거(移居)해 왔다. 1580년경 인동장씨(仁同張氏)[張顯道, 字 德優, 號 月浦 贈 吏曹參判]가 이거해 와서 ‘새로운 마을’을 형성하게 되면서,‘새월(새올)’즉 신곡(新谷)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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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지역에 정착한 유생. 서석년은 창원서씨(昌原徐氏)로서 그에 행적에 관해서는 『옥산지(玉山志)』에 다음의 기록이 전한다. "창원 사람인 진사가 과거 길에 인동(仁同) 부지암(不知岩)의 경승(景勝)을 보고 돌아가는 것을 잊고 가속을 데려와 이곳에서 살다가 별세하였다. 지금 묘우 뒤에 오래된 무덤이 있으니 그를 장사한 것이다. 서씨가 죽고 후손이 없다(昌原人 進士 赴擧 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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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조선시대 이후 선현제향(先賢祭享)과 교육을 위해 설립된 기관. 우리나라에서 서원의 시작은 1543년(중종 38)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고려 말 학자 안향(安珦)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하여 경상도 순흥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건립하면서부터이다. 서원의 건립은 본래 향촌 유림들에 의하여 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국가가 관여할 필요가 없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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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의 인물 서현주의 선정비. 서현주는 인동 출신으로서 가뭄이 극심한 해에 양곡을 풀어 가난한 주민을 구제하였는데, 이때 혜택을 입은 주민들이 이를 기려 비석을 세웠다. 비석은 팔작지붕의 덮개돌에 귀부를 갖춘 형태이다. 비신은 높이 126㎝, 너비 38㎝, 두께 18.5㎝이며, 덮개돌은 높이 43㎝, 너비 76㎝, 두께 56㎝이다. 귀부는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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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12일 경상북도 구미 선산장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3·1운동은 일제하 최대의 항일 민족항쟁으로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선산에서는 선산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3월 13일 만세 계획이 있었으나 실패로 끝나고 4월 12일 권오환(權五煥)을 중심으로 선산장터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다. 경상북도 지역에서는 3월 8일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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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 거주한 토착 성씨. 구미 지역에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등에 나오는 토성(土姓)·내성(來姓)·사성(賜姓)·속성(續姓) 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 성씨와 후대 어느 시점에서 수학(修學)·혼인 등으로 이주해온 성씨들이 있다. 어느 정도 족세를 유지하면서 세거해온 성씨로는 선산김씨·일선김씨·안강노씨·벽진이씨·인동장씨·해평길씨·해평윤씨·전주최씨·밀양박씨·진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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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지공[휘 熙]은 중종 8년(1513) 서울 남문 밖에서 나서 20세경에 부친[휘 繼曾]을 따라 성주로 귀향하였다. 부친은 다시 형 열(烈)을 데리고 인동으로 환향하였으므로 암포에 남아 옛집을 지키게 되었다. 여기서 아들 현도(顯道)가 나고 손자 5형제가 났다. 승지공은 경사(經史)를 두루 익히고 박학다식하여 널리 회자되었다. 자가 언여(彦汝)이고, 호는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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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당리는 서울나들, 원당(院堂), 반월리(半月里), 뒷골, 우항(牛項), 감말(甘末)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신당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감미동, 우항동, 관동, 복래동, 원당동, 신동, 헌덕동, 구미동 각 일부를 병합하고 신동과 원당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서울나들은 영남 선비들이 서울로 과거 보러 갈 때 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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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 속하는 법정동. 신동은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주로 ‘새올(월)’로 불린다. 신곡(新谷)은 신동 마을 전체를 이르는 또 다른 이름으로, 새로운 골을 이루었다는 뜻이다. 마을 안에는 못둑마, 웃마와 아랫마, 가리마, 새마 등의 작은 마을들이 자리하고 있다. 동쪽으로 칠곡군(漆谷郡) 가산면(架山面)과 경계한 구미시의 최동단 마을이다. 서쪽으로 구평동(九坪洞)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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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장석규의 일대기를 엮은 『연미정실기(戀美亭實記)』가 있다. 연미정 실기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인동 사람 장석규의 호가 연미정이다. 자(字)는 사운(師雲)이며,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후손으로 장시고(張時白皐)의 차자(次子)로 옥중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시고는 성격이 곧고 정의로워 옳은 일이 아니면 상종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당시 인동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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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 설치되었던 교통 통신 기관. 양원역(楊原驛)은 현 구미시 진평동에 설치되었다. 양원역 이외에 구미 지역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으로는 구며역(仇㫆驛, 현 구미시 선산읍 화조리), 상림역(上林驛, 현 구미시 장천면 상림리), 연향역(延香驛, 현 구미시 해평면 산양리), 안곡역(安谷驛, 현 구미시 무을면 안곡리) 등이 있었다. 왕래하는 관료나 사신들을 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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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어느 지역을 가거나지역 나름대로 공인된 양반가문들이 있었다. 지역마다 그 지역의 대표적 양반가문과 그들 가문의 서열을 말하여 주는 성씨 명단이 일종의 민간설화의 형태로 전해오고 있었다. 어떤 지역을 단위로 하여 그 지역 내의 양반가문을 품정하는 관습이 보편화되어 있었다. 무엇이 가문 품정의 기준이었던가. 대표적 양반가문을 선정할 때 그 선정기준이 되는 것 중에 가장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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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현대까지 경상북도 구미시의 역사. 구미 지역은 전근대 사회에서는 선산과 인동이 중요한 행정구역이었다. 선산은 삼국시대부터 일선, 숭선, 선주로 불리다가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 개편 때 선산군으로 개명되었고 2년 뒤 선산도호부로 개칭되었다. 인동은 삼국시대에 사동화로 불렸고, 1604년(선조 37)에 인동도호부로 승격되었다. 그 뒤 1978년 인동면이 구미읍과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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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 교통·통신기관으로 설치된 역(驛)과 원(院). 역은 전통시대 공공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설치된 교통·통신기관이다. 국가의 명령과 공문서의 전달, 변방의 긴급한 군사 정보 및 외국 사신 왕래에 따른 영송(迎送)과 접대, 그리고 공공 물자의 운송 등을 위하여 설치된 교통·통신기관이다. 흔히 우역(郵驛)·역관(驛館)이라고도 하였다. 원나라 참적(站赤) 제도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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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지역을 중심으로 성리학통을 전개한 유학자들. 해평길씨 길재가 정몽주의 학통을 이어 받아 고향 선산으로 돌아와 후학을 가르쳤고 선산김씨 김종직 부자가 그의 학통을 계승하면서 선산은 15세기 영남사림파 형성의 중심지가 되었다. 또한 고려 말에 성주·선산 등지 토성들의 상경종사(上京從仕)가 활발해지자 재경 관인이나 혹은 타읍 출신의 사족들이 대거 선산 지방으로 모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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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 있는 조선 전기 남산 봉수의 터. 원리 남산 봉수는 조선 세종 때 정한 5간선(幹線)의 하나로, 제2선인 동래선에 속하며, 약목의 박집산, 인동의 건대산, 해평의 석현 봉수 신호를 개령의 감문산, 김천의 소산, 상주의 회룡산으로 전달하는 직봉(直烽)이다. 원리 남산 봉수는 산정에 띠를 두른 모양을 하고 있으며, 가운데 봉돈 1거(炬)가 남아 있다.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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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원세정의 선정비. 원세정은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 1855년(철종 6)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859년(철종 10) 이임하였다. 그는 4년 동안 인동부사로 있으면서 도목정(都目政)에 따라 승진하였으며, 백성들이 인동부사로서 베푼 선정을 기려 비를 세웠다. 원세정 거사비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공직자 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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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원세정의 불망비. 원세정은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 1855년(철종 6)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859년(철종 10) 이임하였다. 그는 4년 동안 인동부사로 있으면서 도목정(都目政)에 따라 승진하였으며, 백성들이 인동부사로 베푼 선정을 기려 비를 세웠다. 높이 116㎝, 너비 54㎝, 두께 27㎝의 비신을 세우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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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문신이자 인동유씨 시조. 인동유씨(仁同兪氏)는 인동백(仁同伯)에 봉해진 유승단의 후손들이 인동에 세거함에 따라 후대에 유승단을 시조로 하고 세거지 인동을 관향으로 삼으면서 생겨났다. 본관은 인동(仁同). 초명은 유원순(兪元淳). 인동유씨는 유승단 이후 세계가 끊어졌으며, 고려조에서 예부시랑을 지낸 1세손 유승석을 중시조로 대를 잇고 있다. 유승석의 동생인 유성렬의 증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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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시대 인물 유운용의 선정비. 유운용의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자는 응견(應見), 호는 겸암(謙菴)이다. 임진왜란 때 영의정으로 국난 극복에 공을 세운 유성룡(柳成龍)의 형으로 퇴계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모든 경사(經史)를 통독함으로써 사문의 촉망을 받았다. 1572년(선조 5) 친명(親命)으로 음사(蔭仕)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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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유호원의 선정비. 유호원은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 1826년(순조 26)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830년(순조 30) 암행어사의 서계(書啓)에 의하여 파직되었다. 그는 4년 동안 인동부사로 있었으며, 재직 중에 백성들이 선정을 베푼 것을 기려 비를 세웠다. 윗부분이 둥글게 생긴 원수(圓首) 형태의 비신만이 남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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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국가와 향토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일어나 싸운 민병. 1592년 4월 13일 일본군이 부산진을 침략하면서 북상하자 구미 선산에서는 노경임(盧景任)을 대장으로 하는 선산향병(善山鄕兵)이 조직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군이 들이닥치면서 곧 무너졌다. 그리고 해평 출신 부안현감 고한운(高澣雲)이 군졸과 흩어진 의사들을 모아 금오산성에서 진을 치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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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말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이교준의 선정비. 이교준은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 1871년(고종 8)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875년(고종 12)에 이임하였다. 그는 4년 동안 인동부사로 있으면서 도목정(都目政)에 따라 이배되었으며, 백성들이 인동부사로서 베푼 선정을 기려 2기의 영세불망비를 세웠다. 비석의 윗부분이 평평하고 모서리에 각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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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지역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방형(邦衡). 이집(李集)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지직(李之直), 아버지는 우의정 이인손(李仁孫), 어머니는 노신(盧信)의 딸이다. 이극균의 형제 이극배(李克培), 이극감(李克堪), 이극증(李克增), 이극돈(李克墩)은 모두 세종 및 세조 때 문과에 급제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극배와 이극균은 정승이 되었고 4형제가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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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내성은 경주이씨(慶州李氏)로서 이만우(李晩雨)로도 불렸다. 1892년 4월 l일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 543번지에서 이성률(李成律)의 5남으로 태어났다. 이만우는 17세 때 계성학교를 중퇴하고 동향 동지인 장진홍(張鎭弘)과 함께 조선보병대(朝鮮步兵隊)에 입대하여 훈련을 받았고 제대 후 광복회(光復會)에 가입하여 독립 투쟁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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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인동현감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대재(大才). 이유강(李惟康)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인손(李麟孫), 아버지는 이운(李運), 장인은 성윤(成允)과 최호(崔湖)이다. 아들로 이언영(李彦英)이 있다. 이등림은 1564년(명종 19) 생원시에 합격하고 1573년(선조 6) 식년 문과에서 병과 16위로 급제하였다. 1584년에 인동현감(仁同縣監)으로 부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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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말의 암행어사 이만식 송덕비. 암행어사는 조선시대 왕명을 받고 비밀리에 지방을 순행하면서 악정(惡政)을 규명하고 민정을 살핀 임시 관직으로서, 이만식은 1879년(고종 16)에 경상좌도암행어사가 되어 인동부에 와서 민폐를 시정하고, 조세를 감면하는 등 백성들의 애로 사항을 덜어주는 선정을 베풀었기에 백성들이 이를 기려 비석을 세웠다. 윗부분이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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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인동현감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경임(景任), 호는 남계(南溪). 오봉(五峯) 이호민(李好閔)이 당숙이며 형은 성리학자 이진(李軫)이다. 이보는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595년 친구인 영남좌도의병대장 김해(金垓)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의병 부대의 모의사로서 군위 지역의 정제장(整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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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조선 중기 인동현감 이보의 송덕비. 이보(李輔)의 자는 경임(景任), 호는 남계(南溪)이며,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군위 소보 출신으로 유성룡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90년(선조 23)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김해(金垓)의 종사관(從事官)으로 활약하면서, 1594년 인동현에서 둔전관겸가수(屯田官兼假守)로 근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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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이의배의 선정비. 이의배는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한 무신으로서, 인조반정에 참가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에 녹훈되었고, 1626년(인조 4)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627년(인조 5) 1월에 신병으로 체임(遞任)하였다. 그는 인동부사로 있으면서 많은 선정을 베풀었으며, 백성들이 이를 기려 선정비를 세웠다.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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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말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했던 이탄의 선정비. 이탄은 1892년(고종 29)에 경상도관찰사에 임명되어 도정에 진력하였는데, 1894년(고종 31)에 순력 중 인동부에 와서 선정을 베풀었기에 백성들이 이를 기려 비석을 세웠다. 윗부분이 평평하고 모서리가 각이 있는 직수(直首) 형태의 비신만이 남아 있으며, 비신은 높이 146㎝, 너비 53㎝, 두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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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이희원의 선정비. 이희원(李熙遠)은 무과로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1834년(순조 34)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837년(헌종 3) 도목정(都目政)에 따라 승진하여 이임하였다. 그가 재임 기간 동안 선정을 베풀었기에 백성들이 이를 기려 선정비를 세웠다. 높이 98㎝, 너비 42㎝, 두께 12㎝의 비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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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 지역에서 일어난 전투.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의 군위현조에 이보의 약전에 의하면 “임진왜란 이후 인동현감으로 재임하면서 당시 인동은 왜구의 중요 통로가 되어 왜구의 피해가 특별히 심하여 전야(田野)가 비었고 사는 사람이 없는지라 관찰사가 논계하여 읍을 혁신하고 공으로써 임시 현감을 차임하고 또 과곡관을 겸임하니 추절을 당하여 득곡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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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을 시조로 하는 경상북도 구미지역의 세거 성씨. 인동은 신라시대에 사동화현(斯洞火縣)이라 하였고, 그 후에 수동현으로 개칭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 지금의 이름인 인동으로 고쳤다. 1018년(현종 9)에 경산부(京山府; 지금의 성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 경산에서 분리되면서 처음으로 지방 수령인 감무(監務)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 개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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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을 본관으로 하여 경상북도 구미에 살았던 성씨. 인동은 신라시대에 사동화현(斯洞火縣)이라 하였고, 그 후에 수동현으로 개칭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 지금의 이름인 인동으로 고쳤다. 1018년(현종 9)에 경산부(京山府; 지금의 성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 경산에서 분리되면서 처음으로 지방 수령인 감무(監務)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 개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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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에 있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 성당. 1905년경 인동 지역의 가실방씨 중 한 사람인 방우영(다두)이 서병조의 권유로 대구 계산성당에서 영세를 받게 되었으며, 영세를 받은 후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 방세종(아가비도)과 할아버지 방사권(베드로) 등 가족들을 권면하여 방씨 일가 10여 가구가 당시 왜관의 가실성당에서 영세를 받게 되었다. 그 후 할아버지 방사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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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단을 시조로 하고 유승석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구미시 세거 성씨. 인동은 신라시대에 사동화현(斯洞火縣)이라 하였고, 그 후에 수동현으로 개칭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 지금의 이름인 인동으로 고쳤다. 1018년(현종 9)에 경산부(京山府; 지금의 성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 경산에서 분리되면서 처음으로 지방 수령인 감무(監務)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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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을 본관으로 하여 경상북도 구미지역에 살았던 토성의 하나. 인동은 신라시대에 사동화현(斯洞火縣)이라 하였고, 그 후에 수동현으로 개칭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 지금의 이름인 인동으로 고쳤다. 1018년(현종 9)에 경산부(京山府; 지금의 성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 경산에서 분리되면서 처음으로 지방 수령인 감무(監務)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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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세워져 있는 2기의 입석. 입석은 바위를 길게 다듬어 세워 두는 것으로 선돌이라고 하는데, 고인돌과 같은 큰돌 문화의 일종이다. 선사시대에는 고인돌 주변에 세워 묘의 영역을 나타내었으며, 역사시대에 와서는 마을 입구에 세워 귀신을 막거나 경계를 표시하도록 하였고, 토착신앙과 합쳐져 장수를 비는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인동입석은 원래 3기가 있었다고 하나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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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계와 장금용을 시조이자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구미시 세거 성씨. 인동장씨(仁同張氏) 직제학계는 고려의 개국원훈(開國元勳)인 태사공(太師公) 장정필(張貞弼)을 도시조(都始祖)로 하며, 장계(張桂)를 시조로 한다. 인동장씨 상장군계는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한다. 인동장씨는 이 두 갈래로 나뉜다. 직제학계의 시조 장계는 장정필의 14세손이며, 1305년(충렬왕 31)에 국학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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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시대 공자와 선현을 향사하고 후학들에게 교육을 실시한 향교. 인동향교는 정확하게 어느 시기에 건립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전기의 어느 시점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인동의 북쪽 2리 지점인 황상동의 어운산 자락에 향교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1592년(선조 25) 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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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인동 지역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지명. 인동은 외부의 문물을 손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낙동강 연안에 위치한 교통 요지에 있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문명이 발전하였으며, 풍부한 물산과 군사적 요충지로 인해 조선 후기까지 도호부 관할 하에 있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와 철도가 약목을 통과하게 되고 운하 교역이 감소하면서 칠곡과 선산에 편입되었다. 이 지역을 지칭하는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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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의 지표와 연계되어 나타나는 인문적 사상(事象)들. 구미시는 경상북도의 중앙부로부터 서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이다. 극동은 장천면 명곡리 산 54번지이며 극남은 오태동 산 59번지이며 극서는 무을면 안곡리 산 57번지이며 극북은 옥성면 구봉리 산 13번지이다. 동서 간의 연장 거리는 38.8㎞이고 남서 간의 연장 거리는 33.4㎞이다. 구미시는 동남쪽으로는 칠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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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8일 경상북도 구미시 임은동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3·1운동은 일제하 최대의 항일 민족항쟁으로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났다. 한말 의병장 허위(許蔿)의 출신지인 구미시 임은동은 항일의 기풍이 강한 곳으로, 1919년 4월 8일 강용준(姜龍俊)·유시동(劉時東)을 중심으로 독립만세운동을 벌였다. 경상북도 지역에서는 3월 8일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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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천개(天開), 호는 옥란헌(玉蘭軒). 할아버지는 장현광(張顯光), 아버지는 부제학 장응일(張應一), 장인은 송석윤(宋錫胤)이다. 장건은 효종 3년(1652) 증광문과에 병과 20위로 급제하여 사헌부지평, 장령, 전라도사를 거쳐 진주목사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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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태래(泰來), 호는 만회당(晩悔堂). 덕령부군 장안세(張安世)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극명당(克明堂) 장내범(張乃範), 어머니는 진위장군 이운배(李雲培)의 딸로 한산이씨(韓山李氏)이다. 장경우는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21년(광해군 13) 인목대비의 폐모론이 일어나자 영남 유생들과 상소하여 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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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지역 출신의 효자. 본관 인동(仁同). 죽정(竹亭) 장잠(張潛)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증장악원정 장내적(張乃迪)이다. 장경욱은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고기잡이와 사냥을 하여 부모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봉양하여 주변 사람들이 남다른 효성에 감동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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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인동장씨 직제학계의 시조. 본관은 인동(仁同). 인동장씨의 시조 장정필(張貞弼)의 14세손이다. 옥산군(玉山君, 옥산은 인동의 별호)에 봉해져 현재의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면 중리와 송곡리 일대의 발영전(拔英田)에 터를 잡은 이래로 후손들이 세거하게 되어 장계를 시조로 하는 인동장씨 장계계가 형성되었다. 장계는 1305년(충렬왕 31) 문과에 급제한 후 집현전직제학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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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지역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경오(敬五), 호는 긍재(兢齋). 심곡(深谷) 장제원(張悌元)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성균진사 장원표(張源杓)이다. 장교찬은 부친의 병환에 11년 동안 곁을 떠나지 않았다. 부친의 시탕(侍湯)에 정성을 다하고 부친이 변비로 몹시 고통을 겪자 대나무 통을 항문에 꽂고 입으로 빨아서 대변을 나오게 하여 괴로움을 덜어 주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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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교위공 장진(張震)이다. 장국신은 고려 전기에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내사문하성내사령(內史門下省內使令)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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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미 지역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태로(台老), 호는 검계(儉溪). 기산(岐山) 장용한(張龍翰)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장탄(張坦)이다. 장국주는 일찍이 부모를 잃어서 예를 다하지 못한 것을 애통해 하다가 작고한 부친의 환갑이 되는 해 가묘에 고하고 재사(齋舍)에서 여묘하는 의절을 본받아 3년을 지냈다. 또 집의 처마에 흰 비둘기가 날아와 서식하는 이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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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아버지는 장순(張純)이다. 고려 후기 문과에 등제하여 경주영장(慶州營將)을 역임했으며 3품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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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구평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인물 장극상의 송덕비. 학서지는 구미시 구평동에 소재하는 못으로서 1931년경에 축조되었다. 본관이 인동인 장극상이 못을 축조할 때에 많은 토지를 희사하였는데, 해방 후인 1948년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비가 세워졌다. 구미시 구평동의 학서지 제방에 장돈상 송덕비와 함께 세워져 있다. 비석은 높이 108㎝, 너비 48.5㎝이고, 팔작지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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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인동장씨 상장군계의 시조. 본관은 인동(仁同). 인동장씨 장금용계의 시조이다. 장금용이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인의동 일대에 터를 잡기 시작한 이래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옥산장씨(玉山張氏, 옥산은 인동의 옛 지명)가 형성되고 후에 옥산이 인동으로 개명됨에 따라 인동장씨로 불리게 되었다. 장금용은 고려 전기에 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三重大匡神虎衛上將軍)을 역임하였다. 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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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정보(正甫), 호는 극명당(克明堂). 아버지는 판결사 장사영(張士瑛)이다. 장내범은 타고난 성품이 중후하여 어릴 때부터 행실이 남달랐으니, 9세 때 모친상을 당하여 비애하고 곡읍함이 어른과 같았다고 한다.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한강(寒岡) 정구(鄭逑)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의병을 일으켰다. 장내범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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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화심(華深), 호는 신천(信天).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의 6세손이다. 아버지는 증호조참판 장광표(張光表)이다. 장동원은 영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경주영장(慶州營將)을 역임하고 수직으로 동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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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호고(好古), 호는 낙서(洛西). 증이조판서 장철견(張哲堅)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사인(舍人) 장계문(張季文), 아버지는 군수 장기정(張麒禎), 어머니는 조광침(趙光琛)의 딸로 백천조씨(白川趙氏)이다. 장만은 1591년(선조 24)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에 있다가 예문관검열, 전생주부, 형조좌랑, 예조좌랑, 지평 등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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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숙겸(叔謙),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소매당(訴梅堂) 장영(張𨥭)의 아들이다. 장만익은 1676년(숙종 2) 무과에 등제하여 훈련도감부사용, 주부, 도사, 훈련원정, 영장 등을 거쳐 장흥부사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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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유지(攸之).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부제학 장응일(張應一), 아버지는 진주목사 장건(張鍵)이다. 장만춘은 무과에 급제하여 영덕현령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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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경윤(景胤), 호는 송설헌(松雪軒). 직제학 장계(張桂)의 후손으로 장순효(張純孝)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장경원(張敬源), 아버지는 홍산현감 장안량(張安良), 어머니는 고승안(高承顔)의 딸이다. 장말손은 1459년(세조 4)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박사를 거쳐 사헌부감찰, 사간원정언 등을 지냈다. 1463년 함길도병마도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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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아버지는 풍저창승(豊儲倉丞)을 지낸 장보(張俌)이다. 장맹저는 성종 때 통례문통찬(通禮門通贊)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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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구미 출신의 효부. 본관은 전의(全義). 인동(仁同) 사람 장병구(張炳九)의 아내이다. 장병구의 처 전의이씨는 20세에 남편이 죽은 후에 시부모를 극진히 모셔 효도를 하였으므로 관에서 포창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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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지역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상장군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김해부사 장중양(張仲陽), 아버지는 사헌부장령 장수(張脩)이다. 장보는 풍저창승(豊儲倉丞)을 지냈으며 1460년(세조 6) 5월 원종공신(原從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묘소는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 진목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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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우문(遇文), 호는 성와(省窩). 심곡 장제원(張悌元)의 후손이며 장점(張點)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장재옥(張在玉), 아버지는 장진구(張鎭九)이다. 재종숙 장진오(張鎭五)에게 입양되었다. 1810년(순조 10)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간원정언, 이조좌랑, 김천도찰방, 사헌부지평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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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구미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인동(仁同).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죽정(竹亭) 장잠(張潛), 아버지는 장윤(張崙)이다. 장사진은 당시의 인동현에서 태어났으며, 현재의 경상북도 군위군 효령면 오천리로 이사했다. 어려서부터 의협심이 있어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였으므로 이웃사람들은 의협인(義俠人)이라고 불렀다. 군위향교 교생으로 면학하던 중 임진왜란을 맞아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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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사운(師雲), 호는 연미정(戀美亭). 소매당(訴梅堂) 장영(張𨥭)의 후손이다. 아버지 장시호(張時皥), 어머니는 김해배씨(金海裵氏)이다. 장석규는 1800년(정조 24) 양친이 인동도호부사(仁同都護府使) 이갑회(李甲會)의 무고(誣告)로 죄인이 되어 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옥중에서 태어났다. 그 후 어머니, 누이와 함께 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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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초명은 장용규(張龍逵), 자는 진백(震伯), 호는 유헌(遊軒)·운전(雲田).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산음현감 장옥(張鈺)의 7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장호(張濠), 아버지는 사호옹(四好翁) 장학추(張學樞), 어머니는 김구운(金龜雲)의 딸로 선산김씨(善山金氏), 처는 허참(許傪)의 딸로 김해허씨(金海許氏)이다. 장학덕(張學㯖)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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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견가(見可), 호는 춘고(春皐).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으로 동암(東巖) 장대방(張大方)의 5세손, 만인당(晩忍堂) 장지학(張趾學)의 현손, 장수형(張壽衡)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장윤구(張胤矩), 아버지는 장호추(張好樞), 어머니는 이동혐(李東馦)의 딸로 광주이씨(廣州李氏)이다. 장석준은 1852년(철종 3) 문과에 급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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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동언(東彦). 아버지는 통덕랑 장돈(張暾)이다. 장석진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영조 때 아버지 장돈이 원통한 옥사에 걸려 감옥에 갇히게 되자 서울에 가서 길거리에서 밤낮으로 통곡하였는데, 때마침 당시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계속되었다. 당시 형조판서 윤동도(尹東度)가 불러서 그 까닭을 듣고는 영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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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仁同). 아버지는 상장군 장금용(張金用)이다. 장선은 고려 전기에 금오위상장군에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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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이며, 자는 자진(子陳)이다.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으로 학거(鶴渠) 장순(張峋)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심곡(深谷) 장제원(張悌元), 아버지는 지암(止庵) 장내겸(張乃謙)이다. 장세기는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했으며 벼슬이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사후에 호조참판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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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장신원(張信元)이다. 장신원은 고려 전기에 봉어(奉御, 정6품)와 직장(直長, 정7품)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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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장안세(張安世), 아버지는 김해부사 장중양(張仲陽)이다. 유일(遺逸)로 천거되었다. 태종 때에 칠원감무(漆原監務)를 역임하였으며, 사헌부지평과 집의를 거쳐 1430년(세종 12) 장령에 이르렀다. 간쟁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인동으로 물러나 세상을 마쳤다. 『옥산지(玉山志)』에 인동부 동헌 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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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중용(仲庸). 송와(松窩) 장영(張塋)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장몽규(張夢奎), 아버지는 장흥옥(張興玉)이다. 장수용은 1756년(영조 32)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성균관전적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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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상장군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판통례문사(判通禮門事) 장인숙(張仁淑)이다. 장순은 고려 후기에 밀직사부사(密直司副使)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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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유생이자 학자.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경앙(景仰), 호는 학거(鶴渠). 장금용(張金用)계로서 통찬(通贊) 장맹저(張孟儲)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인동장씨 진평파 파조 장신손(張信孫), 아버지는 장사랑 장항(張沆), 어머니는 이조참판 박추(朴鰌)의 딸로 울산박씨(蔚山朴氏)이다. 장순은 할아버지 장신손에게 글을 배우기 시작하여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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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사호(士浩)·자활(子活), 호는 오재(悟齋)·송암(松庵). 장순효(張純孝)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장경원(張敬源), 아버지는 군수 장중지(張重智), 어머니는 고승안(高承顔)의 딸이다. 장순손은 현재의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태어났다. 1480년(성종 11) 생원시에 합격하고, 1485년(성종 16) 문과에 급제한 뒤 사간원정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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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공유(公裕), 호는 운정(雲庭). 장금용(張金用)계로서 산음현감 장옥(張鈺)의 8대손이다. 할아버지는 사호옹(四好翁) 장학추(張學樞), 아버지는 장석구(張錫龜)이다. 14세 때 중부인 장석용(張錫龍)에게 입양되었다. 백부는 장석봉(張錫鳳)이다. 장승원은 1885년(고종 22) 증광 문과에 급제한 후 승정원주서를 시작으로 홍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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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출신의 효자.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사립(斯立), 호는 죽창(竹窓). 할아버지는 풍저창승(豊儲倉丞) 장보(張俌), 아버지는 통례문통찬(通禮門通贊) 장맹저(張孟儲)이다. 형은 장적손(張嫡孫)이다. 장신손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1507년(중종 2)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평소 효성이 남달라 형 장적손(張嫡孫)과 함께 3년 동안 정성을 다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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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교위 장진(張震), 아버지는 내사문하성내사령 장국신(張國伸)이다. 장신원은 당시의 인동현(仁同縣)에서 태어났다.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관직은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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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호는 송은(松隱).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밀직사부사 장순(張純), 아버지는 장균(張均)이다. 장안세는 고려 후기 함주(현 함경남도 함흥시)에 있는 갈한천(乫罕川)이 해마다 범람하여 재해가 연속되자 함주부사에 임명되었다. 10여 년 동안 재임하면서 치수에 공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70칸이 되는 만세교(萬歲橋)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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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화중(和仲). 아버지는 통선랑(通善郞) 장보한(張輔漢)이다. 장여간은 당시의 선산도호부(善山都護府)에서 태어났다. 1633년(인조 11)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635년(인조 13) 증광 문과에 합격하였으며 판관과 현감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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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명세(鳴世), 호는 소매당(訴梅堂).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아버지는 청천당(聽天堂) 장응일(張應一), 어머니는 목사 송광정(宋光廷)의 딸로서 야로송씨(冶爐宋氏)이다. 장영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으며 할아버지 여헌 장현광에게서 학문을 이어받았다. 1662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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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이상(而相).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아버지는 청천당(聽天堂) 장응일(張應一), 어머니는 목사 송광정(宋光廷)의 딸로 야로송씨(冶爐宋氏)이다. 형이 소매당(訴梅堂) 장영(張𨥭)이다. 장옥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음직(蔭職)으로 산음현감을 지냈다. 묘소는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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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백응(伯應), 호는 남와(南窩). 장금용(張金用)계로서 남파 장학의 후손이자 장한시(張漢蓍)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온재(穩齋) 장수모(張守模), 아버지는 통덕랑 장인섭(張仁燮)이다. 백부인 통덕랑 장운섭(張運燮)에게 입양되었다. 장용팔은 1803(순조 3) 문과에 급제하였다. 1806년 사헌부지평을 제수받았으나 이어지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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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인동장씨 남산파의 파조. 본관은 인동(仁同).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김해부사 장중양(張仲陽), 아버지는 사헌부장령 장수(張脩)이다. 훗날 인동장씨 남산파(南山派)의 파조가 되었다. 장우는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사천진병마첨절제사겸현감으로 재임 중 해변에 성채를 쌓고 군량미를 비축하여 방비를 튼튼하게 하였다. 묘소는 경상북도 구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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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공지(拱之).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극명당(克明堂) 장내범(張乃範)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 아버지는 삼우당(三優堂) 장해(張𣴴)이다. 장우극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한 후 수안군수, 삼수부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벼슬이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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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仁同). 초명은 장우환(張羽寰), 자는 보경(輔卿), 호는 침류정(枕流亭)이다.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극명당(克明堂) 장내범(張乃範)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 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郞) 장원(張厡)이다. 장우상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1672년(현종 13) 무과에 급제한 뒤 오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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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봉거(鳳擧).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극명당(克明堂) 장내범(張乃範)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 아버지는 남파 장학(張澩)이다. 장우영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현종조 무과에 급제한 뒤 여러 벼슬을 거쳐 승정원동부승지를 역임하였으며 벼슬이 경상좌도수군절제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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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仁同). 초휘는 장우천(張羽天), 자는 제천(梯天).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극명당(克明堂) 장내범(張乃範)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 아버지는 삼우당(三優堂) 장해(張𣴴)이다. 장우원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학식과 재덕을 두루 갖추고 있었으며 글씨에 재능이 있었으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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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경중(經仲), 호는 귀로정(歸老亭).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증이조참판 장계증(張繼曾)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장희(張熙), 아버지는 월포(月浦) 장현도(張顯道), 어머니는 도시인(都是仁)의 딸이다. 장우일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으며 종숙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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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두경(斗卿), 호는 임졸재(任拙齋).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극명당(克明堂) 장내범(張乃範)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 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郞) 장원(張厡)이다. 형으로 장우주(張宇柱), 장우상(張宇相)이 있다. 장우추는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1679년(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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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 자는 학부(學夫), 호는 동릉(東陵). 여헌 장현광의 후손으로, 사이당(四而堂) 장지덕(張趾德)의 6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증이조참의 장위(張瑋)이며, 할아버지는 증이조참판 장석이(張錫頤)이며, 아버지는 이조참판 장인원(張仁遠)이다. 1864년(고종 1) 증광시에 급제하였다. 승정원가주서를 거쳐 승정원주서, 성균관전적, 사간원정언,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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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贇’은 속음이 빈이기 때문에 ‘장빈’으로도 불린다. 장윤(張贇)은 당시 일선주(一善州)의 속현인 해평현(海平縣)에 살았다. 고려 후기에 과거에 합격하였으며 안산군수를 역임하였다. 정인지(鄭麟趾)가 쓴 「해평향교기(海平鄕校記)」에 따르면 해평은 선산에 딸린 현이므로 향교를 설치하지 않았으나 부까지는 너무 멀어 당시 향선생(鄕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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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경숙(經叔), 호는 청천당(聽天堂).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증이조참판 장계증(張繼曾)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장열(張烈), 아버지는 월포(月浦) 장현도(張顯道), 어머니는 이부춘(李富春)의 딸이다. 종숙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에게 입양되었다. 장응일은 7세 때 장현광에게 입양되어 가학을 이었다. 1629년(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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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자유(子裕), 호는 지분헌(知分軒).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으로 죽정(竹亭) 장잠(張潛)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증호조참의 장곤(張崑), 아버지는 의병장 개옹(㝏翁) 장봉한(張鳳翰)이다. 장이유는 어릴 때 아버지에게서 『효경(孝經)』과 『소학(小學)』을 익혔으며, 한강(寒岡) 정구(鄭逑)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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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상장군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 장위(張偉)이다. 장인숙은 고려 후기에 판통례문사(判通禮門事)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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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 자는 공무(公武), 호는 운초(雲樵).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후손으로 사이당(四而堂) 장지덕(張趾德)의 5세손이며 장윤문(張胤文)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증이조참의 장위(張瑋), 아버지는 증이조참판 장석이(張錫頤)이다. 장인원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1839년(헌종 5) 별시에 급제한 후 1840년 승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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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호원(浩原), 호는 죽정(竹亭).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통례문통찬(通禮門通贊) 장맹저(張孟儲), 아버지는 충순위 장적손(張嫡孫), 어머니는 전호군(典護軍) 최한충(崔漢忠)의 딸로 화순최씨(和順崔氏)이다. 후손들이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황상동 일대에 세거함에 따라 훗날 인동장씨 황상파(凰顙派)의 파조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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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재상은 본관이 인동(仁同)이고 호는 원봉(園峰)이며 아버지는 장병희(張炳熙)이다. 장재성은 엄격한 가정 환경에서 성장하였으며 선산보통학교(현 선산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배재학당을 거쳐 청운의 뜻을 품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일본 고수중학을 졸업하고 동경의 일본대학(日本大學) 법과에서 공부하던 중 민족 해방과 독립 운동에 헌신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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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자장(子長). 할아버지는 풍저창승(豊儲倉丞) 장보(張俌), 아버지는 통례문통찬(通禮門通贊) 장맹저(張孟儲)이다. 동생이 죽창(竹窓) 장신손(張信孫)이며, 아들이 죽정(竹亭) 장잠(張潛)이다. 장적손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평소 효성이 남달라 동생 장신손(張信孫) 함께 3년 동안 정성을 다해 시묘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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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구미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인동. 자는 중순(仲順), 호는 심곡(深谷). 상장군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증조부는 진평파 파조인 진사 장신손(張信孫)이고, 아버지는 생원 장순(張峋)이다. 어머니는 성산이씨로 진사 이태연(李泰然)의 딸이다. 아버지로부터 소학을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1591년(선조 24) 생원시에 합격한 이후에는 과거 공부를 폐하고 한강 정구(鄭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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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 인동 남산에서 출생하였으며, 아버지는 장안세(張安世)이다. 고려 말에 김해부사에 이르렀으며 조선조에 들어와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유명(遺命)으로 비석에 고려 때의 직함만 쓰라 하여 후손들이 유명을 받들어 그대로 하였다 한다. 묘소는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에 있다. 매년 음력 10월 5일에 묘제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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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 상장군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상장군 장선(張善)이다. 고려 초 교위(校尉)에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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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진홍(張鎭弘)은 자는 준극(俊極), 호는 창여(滄旅)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1894년(고종 31년) 6월 6일 인동의 옥계동 문림리 352번지에서 태어나 조국 광복을 위해 투쟁을 벌이다가 1930년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장진홍은 1907년 4월 1일 현 인동초등학교의 전신인 인명학교(仁明學校)를 졸업하였다. 특히 인명학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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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행정구역.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를 개편하면서 마을 앞을 흐르는 내[川]의 길이가 길다하여 장천(長川)이라 하였다. 옛날에는 남웅곡방(南熊谷坊)과 북웅곡방(北熊谷坊) 지역으로 군위군 효령현에 속하였고, 조선 초기에 북웅곡방으로 통합되어 선산군에 속하였다. 1895년 지방 관제 개편에 따라 장천면이 되어 신점, 신방, 석적, 홍계, 불동, 아동,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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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 자는 능운(凌雲). 장령(掌令) 장수(張脩)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 행충무위부사용(行忠武衛副司勇) 장찬(張燦)이다. 부사과(副司果)로 있다가 1678년(숙종 4) 증광시 무과에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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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 장령(掌令) 장수(張脩)의 후손이다. 장추(張湫)는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관직이 토포사(討捕使)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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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 죽정 장잠(張潛)의 후손이다. 장필흥(張必興)은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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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학자. 본관은 인동. 자는 성원(聖源), 호는 남파(南坡). 상장군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증공조참판 극명당 장내범(張乃範)이며, 아버지는 증승정원좌승지 만회당 장경우(張慶遇)이다. 형제로는 형 장해(張𣴴))와 동생 장원(張厡)이 있다. 장학(張澩)은 11세의 나이로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장현광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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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학자이자 의병장. 본관은 인동. 자는 거원(巨源), 호는 삼우당(三優堂). 상장군 장금용(張金用)의 22대 주손(冑孫; 제사를 잇는 맏손자)이다. 할아버지는 증공조참판 극명당 장내범(張乃範)이며, 아버지는 증승정원좌승지 만회당 장경우(張慶遇)이다. 형제로는 장학(張澩)과 장원(張厡)이 있다. 장해(張𣴴)는 1642년(인조 20)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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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장현광(張顯光)은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이기설에서 일본설(一本說)에 입각하면서도, 이이의 ‘기발이승’을 수용하는 등 독자적인 학문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일생을 학문과 교육에 힘을 기울였으며, 산림의 한 사람으로서 도덕정치의 구현을 강조하였다. 장현광의 강학 시설로 구미시 임수동에 부지암정사(不知巖精舍)가 있다. 본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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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 자는 순거(順擧). 고려 금오위상장군(金吾衛上將軍)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죽정 장잠(張潛)이며, 아버지는 증호조참의(贈戶曹參議) 장곤(張崑)이다. 어머니는 양성이씨로 내금위(內禁衛)를 지낸 이훈(李薰)의 딸이다. 장홍한은 임진왜란 당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김산·개령·선산·지례 등지에서 왜적을 토벌하였다. 상주판관(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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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 상장군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봉어 장세림(張世林)이다. 선의랑(宣議郞) 위위시주부동정(衛尉寺注簿同正)을 역임하였다. 위위시는 의장(儀仗)에 쓰이는 예기(禮器)와 병기(兵器) 등을 관장하였으며, 위위시주부는 종7품에 해당한다. 동정(同正)은 산직(散職)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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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전력 에너지를 생산하여 공급하는 산업. 전력산업은 전원 개발을 촉진하고 전기사업의 합리적인 운영을 통해 전력 수급의 안정을 도모하여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산업이다. 여기에는 전력 자원의 개발, 개발된 전력 자원의 송전·변전·배전, 전력산업에 대한 연구 및 기술 개발까지 포함한다. 한국의 전력산업은 1961년 36만 7,000㎞에 불과하였던 발전 설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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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정소의 선정비. 정소(鄭熽)는 무과로 벼슬길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1843년(헌종 9)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845년(헌종 11) 도목정(都目政)에 따라 승진하여 이임하였다. 그가 재임 기간 동안 선정을 베풀었기에 백성들이 이를 기려 선정비를 세웠다. 높이 111㎝, 너비 42㎝, 두께 16㎝의 비신을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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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말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정옥의 선정비. 정옥은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하였으며, 인동부사의 도임 및 이임의 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그는 인동부사로 재임하면서 백성들이 제때 내지 못하여 누적된 조세를 면제, 또는 감면해서 민생고를 덜어주는 등 선정을 베풀었으며, 백성들이 이를 기려 선정비를 세웠다. 윗부분이 평평하고 모서리에 각이 있는 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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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정운기의 선정비. 정운기는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하였으며, 1851년(철종 2)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855년(철종 6)에 도목정(都目政)에 따라 승진하여 이임하였다. 그는 인동부사로 재임하면서 특히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선정을 베풀었기에 백성들이 이를 기려 선정비를 세웠다. 비석은 덮개돌과 비좌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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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조선 말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정홍채의 선정비. 정홍채는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하였으며, 1878년(고종 15)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882년(고종 19)에 임기가 만료되어 이임하였다. 그는 인동부사로 재임하면서 특히 백성들을 애정으로서 보살피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선정을 베풀었기에 백성들이 이를 기려 선정비를 세웠다. 비석은 덮개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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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정홍채의 선정비. 정홍채는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하였으며, 1878년(고종 15)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882년(고종 19)에 임기가 만료되어 이임하였다. 그는 인동부사로 재임하면서 특히 백성들을 애정으로서 보살피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선정을 베풀었기에 백성들이 이를 기려 선정비를 세웠다. 비석은 덮개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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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10월 18일 장진홍이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발물을 배달시켜 폭발토록 만든 사건. 3·1운동에 나타난 만세시위 위주의 평화적·수세적 방식으로는 독립이 요원해지자, 1920년대에는 독립운동이 행동적·공세적인 방식으로 변해갔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 많은 비밀결사체가 조직되고, 독립운동의 전선도 사상이나 이념에 따라 커다란 변화를 보이게 되었다.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발사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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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 구미 지역은 고대부터 불교가 번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금오산 일대에는 현존하는 수 개의 사찰과 함께 그 정상과 산록에 남아 있는 폐사지(廢寺址)만도 20여 개에 이른다. 신라에 불교를 전했다는 아도화상의 연기설화가 전해지고 있는 도리사, 신라 탑의 웅대함을 보여주는 죽장사 오층석탑, 선산 낙산동 삼층석탑 등 찬란했던 불교 유산들이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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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서 건축되는 집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가족들의 생활. 주생활은 어떤 집을 짓고 사는가와 집안에서 어떻게 생활하는가의 두 부문을 포함한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전통 주택을 짓고 살았으며, 근대화되면서 전통 주택은 물론 이른바 양옥과 공동 주택을 짓고 살게 되었다. 전통 주택은 집의 형태와 공간 구성이 가족 구조를 포함하는 사회 구조와 종교, 세계관, 생업 방식,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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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황상동에 있는 조선시대 사설 학교 건물. 1520년(중종 15) 인동의 유학자인 진사 장잠(張潛)이 건립하여 1537년(중종 32)에 1차 중수를 하고, 그 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중종 때에 현감으로 재직하던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이 자주 방문하여 장잠과 학문을 강론하던 곳으로 이용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형조판서 장석룡(張錫龍)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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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2일과 14일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 진평동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3·1운동은 일제하 최대의 항일 민족항쟁으로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인동 진평동에서는 3월 12일과 14일 두 번에 걸쳐 학생과 지역 유지들이 결합하여 독립만세 시위를 벌였다. 경상북도 지역에서는 3월 8일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의거를 시발로 비안·김천·포항을 거쳐 안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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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온갖 사물을 이해하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여기서 전통적인 마을의 모듬살이를 이해하기 위해 채택한 방법 중 하나가 경관(景觀, Landscape)을 통한 이해이다. 마을 경관은 기록이 없는 마을의 역사와 주민의 삶의 양태를 보여준다. 집성마을은 일반적으로 다음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먼저 종가(宗家)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 다음으로 이름난 조상과 관련된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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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이 모여 사는 촌락. 조선왕조는 성리학을 지배 이데올로기로 강조하면서 숭유억불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였다. 그러나 고려왕조의 불교적 색채는 조선 전기까지 끈질기게 남아 있었으며, 조선왕조가 추진하는 성리학적 지배이데올로기는 중종 연간을 지나면서 서서히 지방 양반과 일반 백성에게 영향을 미쳤다. 특히 남귀여가(男歸女家)의 혼인, 재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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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마을 사람들은 타성들과 위세 경쟁을 하지만 같은 성씨 내에서도 파문중 그리고 마을 간에 위세 경쟁을 한다. 신동 사람들은 인동 일대에 자리 잡은 인동장씨 집성마을의 위세 순위에 다음과 같이 자랑한다. ‘일 신동, 이 남산, 삼 오태, 사 각산, 오 대실’이라고 한다. 인근의 인동장씨 집성마을 가운데 신동이 가장 명성이 높다고 자랑하는 것이다. 그 연유를 물어보면 ‘신동에서 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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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송정동에 있는 한국전력공사 지점. 1920년대에 대흥전기(주) 김천영업소의 구미출장소가 개설되면서 처음으로 구미 지역에 전기가 공급되기 시작하였다. 1947년 10월 남선전기(주) 대구지점에 소속되었다가 1961년 7월 한국전력(주) 구미출장소로 변경된 후 1976년 3월에 한국전력공사 경북지사 구미영업소로 승격되었고 다시 1982년 4월 한국전력공사 경북지사 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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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말 인동부사를 역임했던 한홍열의 선정비. 한홍열은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진출하였으며, 1867년(고종 4) 인동부사로 부임하여 1870년(고종 7)에 도목정(都目政)에 따라 승진하여 이임하였다. 그는 인동부사로 재임하면서 특히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선정을 베풀었기에 백성들이 이를 기려 선정비를 세웠다. 비석은 덮개돌과 비좌 없이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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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사찰. 해운사(海雲寺)는 대혈사(大穴寺)라는 이름으로 조선시대에 있었으나 폐사되었다가 1925년 승려 철화에 의해 복구되면서 사명을 해운사라 하였다. 해운사는 1925년 승려 철화에 의해 금오산성 안의 도선굴과 대혈사지 사이에 건립한 사찰이다. 이보다 아래쪽에 대혈사가 있었는데, 고려 후기 길재(吉再)가 이곳에 은거하여 손수 대나무를 심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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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를 형성하고 있는 전체 면적과 행정 체계. 구미는 지리적으로 경상북도의 서남부에 위치하여 예로부터 이 지역의 행정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현재 구미시의 경계는 동남쪽으로는 칠곡군, 서쪽으로는 김천시, 북쪽으로는 상주시, 동북쪽으로는 군위군 및 의성군과 접하고 있다. 낙동강이 북에서 남으로 관류하여 농업의 중심지였으나, 1970년대 초부터 구미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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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황상동에 있는 조선시대 서원. 조선 중종 때 유학자인 죽정(竹亭) 장잠(張潛)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장잠은 자(字)는 호원(浩源), 호는 죽정(竹亭)으로 조선 중종 및 명종 때의 유학자이다. 정암 조광조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고, 1531년(중종 26)에 진사가 되었으며 도덕과 학문이 뛰어나 존경받았다. 현암서원은 1692년(숙종 18) 9월에 현암사우(賢巖祠宇)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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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조선 기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했던 홍훈의 선정비. 홍훈은 음사로 벼슬길에 진출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고, 1875년(고종 12) 경상도관찰사로 도임하였다. 관찰사로서의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1875년에는 부민(富民)과 지방 사족(士族)에 대한 수탈과 침학이 극심하여 죄를 씌워 재물을 빼앗고, 수많은 세납물을 갖가지 방법으로 횡령, 남징(濫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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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에 속하는 법정동. 인동 8경 가운데 2경과 3경인 봉두조하(鳳頭朝霞), 황상숙무(凰桑宿霧)에서 따서 봉상동(鳳桑洞)이라 하였다. 행정상 명칭은 황상동(黃桑洞)으로 황상산(黃桑山) 밑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2013년 1월 16일 구미시 고시 제2013-11호에 의해 한자 지명을 황상동(凰顙洞)으로 변경하여, 일제 강점기 왜곡되었던 명칭을 원래 지명으로 복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