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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1364
한자 張仁遠
영어음역 Jang Inwon
이칭/별칭 공무(公武),운초(雲樵)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인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809년연표보기
몰년 1871년연표보기
본관 인동
대표관직 이조참판

[정의]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인동. 자는 공무(公武), 호는 운초(雲樵).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후손으로 사이당(四而堂) 장지덕(張趾德)의 5세손이며 장윤문(張胤文)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증이조참의 장위(張瑋), 아버지는 증이조참판 장석이(張錫頤)이다.

[활동사항]

장인원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1839년(헌종 5) 별시에 급제한 후 1840년 승문원부정자를 시작으로 승정원주서·정언·지평 등을 역임하고 1846년 북평사(北評事)로 나갔다. 1850년(철종 1)에는 홍문관부교리로서 실록청기주관(實錄廳記注官)이 되어 『헌종실록(憲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천릉도감(遷陵都監)에 도청(都廳)으로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 1855년 사간원대사간이 되었으며 1857년 연로한 모친을 모시기 위해 외직을 자청하여 현풍현감이 되었다. 이듬해 모친상을 당하여 3년 상을 지냈다.

1862년 다시 관직에 돌아와 우부승지, 좌부승지, 춘천부사를 역임하였으며, 이듬해는 강계부사겸평북병마우방어사(江界府使兼平北兵馬右防禦使)로 나갔다. 고종 즉위 초 파직되었다가 다시 중용되어 1867년(고종 4) 군량미를 비축한 공으로 가의대부(嘉義大夫)에 가자되었으며, 이듬해 이조참판이 되었다. 도동서원(道東書院)의 원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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