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인동남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1526
한자 仁同南氏
영어의미역 Indong Nam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집필자 김용만

[정의]

인동을 본관으로 하여 경상북도 구미에 살았던 성씨.

[개설]

인동은 신라시대에 사동화현(斯洞火縣)이라 하였고, 그 후에 수동현으로 개칭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 지금의 이름인 인동으로 고쳤다. 1018년(현종 9)에 경산부(京山府; 지금의 성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 경산에서 분리되면서 처음으로 지방 수령인 감무(監務)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 개편으로 감무를 혁파하고 현감(縣監)을 두었다.

1604년(선조 37) 4월 찰리사(察理使) 곽재우(郭再祐)에 의하여 천생산성의 외성이 축조된 후 관방(關防)의 요새로 부각됨에 따라 1605년(선조 38) 7월 도원수 한준겸(韓浚謙)의 계청에 의하여 도호부로 승격됨과 동시에 도호부사가 조방장(助防將)을 겸임하게 하였다.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칙명 제98호에 따라 지방제도가 개정되면서 인동은 군(郡; 4등 군)이 되었다가 1914년 3월 인동군 관할 9개 면이 칠곡군에 병합되었다. 1977년 3월 경상북도 구미출장소의 행정 관할로 되었다가 1978년 2월 구미시에 편입되었다.

[연원]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등 지리지에 인동현 토성으로 장(張)·유(兪)·유(劉)·심(沈)·고(高)가 기록되어 있다. 인동의 속현이었던 약목현(若木縣)의 토성으로는 이(李)·유(柳)·한(韓), 의흥현(義興縣)의 토성으로는 전(全)·박(朴)·이(李)·김(金)·백씨(白氏), 부계현(缶溪縣)의 토성으로는 예(芮)·홍(洪)·유(兪)·김(金)·전씨(錢氏)가 있었다. 인동남씨의 경우 각종 지리지 자료에 토성은 물론, 속성(續姓), 내성(來姓) 등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아 이 지역과의 연관을 규명하기 어렵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