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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동 독립만세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1441
한자 林隱洞獨立萬歲運動
영어의미역 Movement of Long Live Korean Independence in Imeun-dong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임은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인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만세운동
발생(시작)연도/일시 1919년 4월 8일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19년 4월 8일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경상북도 구미시 임은동
관련인물/단체 강용준|유시동

[정의]

1919년 4월 8일 경상북도 구미시 임은동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개설]

3·1운동은 일제하 최대의 항일 민족항쟁으로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났다. 한말 의병장 허위(許蔿)의 출신지인 구미시 임은동은 항일의 기풍이 강한 곳으로, 1919년 4월 8일 강용준(姜龍俊)·유시동(劉時東)을 중심으로 독립만세운동을 벌였다.

[역사적 배경]

경상북도 지역에서는 3월 8일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의거를 시발로 비안·김천·포항을 거쳐 안동·경주 등지로 만세운동이 확대되어 나갔다. 구미 지역에서는 3월 12, 14일 인동, 4월 3일 해평, 4월 8일 임은동, 4월 12일 선산장터 등지에서 연속하여 시위가 일어나 도내의 만세운동과 발맞추어 나갔다.

[목적]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호응하여 구미 임은동에서도 만세운동을 전개하기 위함이었다.

[발단]

임은동의 유지인 강용준·유시동이 중심이 되어 만세시위를 모의하고, 4월 8일 오후 10시경 300여 명의 동민들과 더불어 임은동에서 독립만세를 연호하면서 시위를 한 후 해산하였다.

[경과]

4월 9일 이 소식을 들은 순사부장 이하 4명, 일군 수비병 5명, 인동 주재 일군 헌병 2명이 임은동으로 왔다. 이때 동민들은 마을 뒷산으로 은신하여 의거에 참여하였던 군중을 검거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결과]

1919년 4월 15일 다시 일본의 군경이 임은동에 갑자기 들어와 만세 주모자들을 모두 검거해 갔다. 다만 이곳 만세 주모자들의 판결문이 전하지 않아 이후 전개된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다.

[의의와 평가]

영남 지역 만세사건에 있어서 첫 봉기를 촉발한 것은 학생층이었으나 3월 중·하순으로 가면서 차츰 군내의 면(面)으로 확대되어 나갔다. 해평의 만세시위에 이어 일어난 임은동 독립만세운동을 통해 지식인과 지역 동민을 중심으로 항일 저항의 저변이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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