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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1267
한자 李輔
영어음역 Yi Bo
이칭/별칭 경임(景任),남계(南溪)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용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인동현감
출신지 대구광역시 군위군
성별
생년 1545년연표보기
몰년 1608년연표보기
본관 연안
대표관직 거창현감

[정의]

조선 후기 인동현감을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경임(景任), 호는 남계(南溪). 오봉(五峯) 이호민(李好閔)이 당숙이며 형은 성리학자 이진(李軫)이다.

[활동사항]

이보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595년 친구인 영남좌도의병대장 김해(金垓)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의병 부대의 모의사로서 군위 지역의 정제장(整齊將)이 되었다. 1594년 경상도관찰사에 의해 임시로 인동현(仁同縣)의 둔전감겸가현감(屯田監兼假縣監)에 임명되어 모속관(募粟官)을 겸하였다. 이듬해 인동현의 둔전관겸현감에 정식으로 제수되어 군량미 조달에 공을 세웠다.

1596년(선조 29) 4월 체찰사 이원익(李元翼)의 지시로 허물어진 천생산성(天生山城)을 축성한 공으로 군자감판관에 승차하여 인동현감을 겸직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고을 백성을 인솔하여 천생산성으로 들어가 방어에 성공하였으며, 군량미를 조달하는 등 재임 중에 선정을 베풀었다. 1600년(선조 33) 과만(瓜滿, 임기가 꽉 차는 것)으로 물러나려고 했을 때 인동 현민, 인재(訒齋) 최현(崔晛), 경상도관찰사 등이 조정에 간청하여 유임되었다. 1602년(선조 35) 8년간 재직했던 인동현감을 마치고 거창현감에 임명되었으나 8월에 관직을 사퇴하고 귀향하였다.

[상훈과 추모]

1602년(선조 35) 왜란 중 고을을 방어하고 선정을 베풀었다 하여 특별히 군수의 품계인 종4품 조봉대부(朝奉大夫)에 승차하였다. 8년의 인동현감 임기를 마치고 떠난 3년 후인 1604년 인동현민들에 의해 경상북도 구미시 시미동 산28-1번지에 현감이공보거사비(縣監李公輔去事碑)가 세워졌다. 거사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상하고 청렴하며 공명정대하게 8년 동안 백성을 위해 수고하시고 이 고을을 보살펴주시어 그 은택의 스며듦이 깊어 마음속에서 잊지 못하겠습니다. 이에 돌을 깎아 명을 새기노니 ..... (慈祥廉靜 公直明剛 八載勤民 保此封疆 入人者深 懷允不忘 剔石留銘 烏山蒼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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