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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장터 독립만세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1440
한자 善山場-獨立萬歲運動
영어의미역 Movement of Long Live Korean Independence in Seonsan Market Site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인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만세운동
발생(시작)연도/일시 1919년 4월 12일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19년 4월 12일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선산 장터
관련인물/단체 권오환|이원길|박희목|전용신|김의경

[정의]

1919년 4월 12일 경상북도 구미 선산장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개설]

3·1운동은 일제하 최대의 항일 민족항쟁으로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선산에서는 선산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3월 13일 만세 계획이 있었으나 실패로 끝나고 4월 12일 권오환(權五煥)을 중심으로 선산장터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다.

[역사적 배경]

경상북도 지역에서는 3월 8일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의거를 시발로 비안·김천·포항을 거쳐 안동·경주 등지로 만세운동이 확대되어 나갔다. 구미 지역에서는 3월 12, 14일 인동, 4월 3일 해평, 4월 8일 임은동, 4월 12일 선산장터 등지에서 연속하여 시위가 일어나 도내의 만세운동과 발맞추어 나갔다.

[목적]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호응하여 구미 선산에서도 만세운동을 전개하기 위함이었다.

[발단]

선산공립보통학교 졸업생이었던 이유암(李有岩)은 서울과 대구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호응하여 선산에서도 거사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3월 9일 진용섭(陳瑢燮)·한팔암(韓八岩)·김광수(金光洙)와 만나 거의를 모의하고 12일 밤 선산공립보통학교 기숙사로 찾아가 학생들에게 만세시위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다음날 교장의 강압으로 학생들이 불참하면서 시위는 실패로 끝났다. 이 시위계획이 실패로 끝나자 주동자인 이유암과 학생 대표인 박완동(朴完同) 등은 일경에 검거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들은 재판을 받아 4월 30일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청으로부터 각각 징역 10개월을 언도받고 대구형무소에 투옥되었다.

[경과]

선산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1차 모의가 실패로 끝나자 선산군 도개면 도개리에 사는 권오환이원길(李元吉)·박희목(朴喜穆)·전용신(田容信)·김의경(金義景) 등과 상의하여 4월 12일 선산읍 장날 장터에서 다시 만세시위를 벌일 것을 결의하였다. 12일 이들은 선산장터에서 오후 5시경 권오환의 선창으로 장터에 있던 50여 명의 군중들과 함께 만세를 연호하였다.

[결과]

4월 12일 밤 일경은 가택을 수색하여 주모자격인 권오환·이원길·김의경·박희목·전용신 5명을 검거하였다. 이들은 재판을 받아 5월 2일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청으로부터 권오환은 징역 1년 6개월을, 그 외는 징역 10개월을 언도받아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의의와 평가]

영남 지역 만세사건에 있어서 첫 봉기를 촉발한 것은 학생층이었으나 3월 중·하순으로 가면서 차츰 군내의 면(面)으로 확대되어 나갔다. 선산장터 독립만세운동을 통해 지방의 지식인과 장터 상인을 중심으로 항일 저항의 저변이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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