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이극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1257
한자 李克均
영어음역 Yi Geukgyun
이칭/별칭 방형(邦衡)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용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서울특별시
성별
생년 1437년연표보기
몰년 1504년연표보기
본관 광주
대표관직 좌의정

[정의]

조선 전기 구미 지역에 유배된 문신.

[가계]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방형(邦衡). 이집(李集)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지직(李之直), 아버지는 우의정 이인손(李仁孫), 어머니는 노신(盧信)의 딸이다. 이극균의 형제 이극배(李克培), 이극감(李克堪), 이극증(李克增), 이극돈(李克墩)은 모두 세종세조 때 문과에 급제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극배이극균은 정승이 되었고 4형제가 공신에 올라 세칭 오극가(五克家)로 당대에 이름을 떨쳤으며, 이들이 살았던 옛 러시아 대사관 부근을 오극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활동사항]

이극균은 1456년(세조 1) 식년문과에 급제하였으나, 무술에도 뛰어나 세조의 총애를 받고 선전관이 되었다. 1460년 회령도사를 거쳐 이듬해 사헌부지평이 되고 이어 도체찰사의 종사관이 되었다. 다음 해 김구(金龜), 최항(崔恒), 정인지(鄭麟趾) 등과 함께 『교정손자주해(校正孫子註解)』를 편찬했다. 1472년(성종 3) 동지중추부사로 사은부사(謝恩副使)가 되어 명(明)에 다녀왔다.

1467년(세조 13) 부호군으로 만포절제사(滿浦節制使) 재직 중 건주위(建州衛) 여진을 정벌한 군공으로 3등 공신이 되어 노비 6구를 하사받았다. 1491년 이조판서로서 서북면도원수가 되어 야인 토벌에 공을 세웠다. 좌참찬을 거쳐 1497년(연산군 3) 판중추부사로 있을 때 경상우도의 지도를 만들어 바쳤으며 1499년 좌찬성과 평안도경변사를 지냈다. 1500년에는 우의정이 되었다.

1501년(연산군 7) 좌의정 성준(成俊)과 함께 『서북제번기(西北諸蕃記)』와 『서북지도(西北地圖)』를 편찬하였다. 1502년에는 영의정 및 좌의정과 함께 시폐(時弊) 10조를 상소하였다. 1503년에는 좌의정이 되었다. 누차 연산군의 방탕을 바로 잡으려고 애쓴 것이 화근이 되어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인동(仁同)으로 유배당하였다가 곧 사사되었으나 뒤에 신원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