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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 지역에서 전통시대에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을 실천한 신하. 충신은 나라에 도움이 되는 성신(聖臣), 양신(良臣), 충신(忠臣), 지신(智臣), 정신(貞臣), 직신(直臣)의 육정(六正) 가운데 하나이다. 음성 지역에도 충과 관련된 인물과 유적이 상당수 남아 있어 정치적·사회적 규범으로 자리잡았던 충 사상의 영향을 알 수 있다. 음성 지역의 충신에 관한 기록으로는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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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청주고씨 입향조. 본관은 청주. 자는 군명(君明), 호는 퇴암(退庵). 할아버지는 중랑장 고천련(高天連), 아버지는 고유렴(高有廉)이다. 부인은 순천박씨로 박장생의 손녀이다. 동생으로 고덕칭(高德稱), 고덕부(高德符)가 있다. 1419년(세종 1) 생원시에 합격하고 1432년(세종 14)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1439년(세종 21) 강음현감(江陰縣監)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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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청주. 자는 필경(弼卿). 선무공신 고응연(高應淵)의 증손이고, 아버지는 호조참의 고경후(高景厚)이다. 형제는 고상설(高相說)이 있다. 고몽설(高夢說)은 나면서부터 도(道)를 알았고, 지략이 있었으며, 배우지 않고도 능히 천문에 통하고 팔진도(八陣圖)까지 통하였다. 1671년(현종 12)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훈련원판관(訓練院判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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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 자는 효백(孝伯), 호는 삼소헌(三笑軒). 선무공신 고응연(高應淵)의 9세손이고, 아버지는 고우한(高羽漢)이며, 어머니는 순천박씨이다. 고봉래(高鳳來)는 품성이 온화하였으며, 12세에 학문에 몰두하여 몇 년 만에 문리(文理)에 통달하였다. 17세가 되면서는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글을 읽었다. 후학을 가르치니 문하에서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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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청주. 자는 태경(台卿), 호는 퇴암(退庵). 선무공신 고응연(高應淵)의 증손이고, 호조참의 고경후(高景厚)의 둘째 아들이다. 형제는 고몽설(高夢說)이 있다. 고상설(高相說)은 1680년(숙종 6)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벼슬은 첨정(僉正)을 거쳐 첨절제사(僉節制使)에 이르렀다. 일을 처리함에 있어 법도에 맞는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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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청주. 자는 응수(應壽), 호는 취병(翠屛) 또는 왕곡(枉谷). 고조부는 현감 고덕수(高德秀), 아버지는 고준(高遵)이다. 형으로 의병장 고응연(高應淵)이 있다. 1561년(명종 16) 식년시 무과에 급제하였다. 힘이 세고 기골이 장대하여 수문장(守門將)으로 있었다. 선조 초 용호영장(龍虎營將)에 이어 내금위장으로 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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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청주. 자는 원약(元躍). 고조부는 현감 고덕수(高德秀), 아버지는 판결사 고준(高遵)이다. 동생으로 고응섭(高應涉)이 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내금위장으로 있던 아우 고응섭과 함께 의병 수백 명을 모집하여 조령 전투에서 전공을 세워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에 녹훈되고 훈련원주부(訓練院主簿)를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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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 아버지는 사과(司果) 고준(高遵)이다. 고응잠(高應潛)은 임진왜란 때 선조의 피난길을 호종하였다. 인제현감(麟蹄縣監)으로 있다가 1604년(선조 37) 나이가 들어 백성을 다스리기 어렵다고 하여 체차(遞差)되었다. 학행(學行)이 있었으며,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으로 『음성읍지(陰城邑誌)』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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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청주. 연풍현감 고덕수(高德秀)의 7세손이다. 조부는 주부 고응연(高應淵)이다. 아버지는 통덕랑 고영(高暎)이다. 처부는 무인 조영렬(趙英烈)과 방어사 이직(李溭)이다. 1630년(인조 8)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에 추천되었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글을 잘하고 인품이 고결하여 선비들이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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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청주. 자는 순칠(舜七), 호는 설남(雪南). 선무공신 고응연(高應淵)의 11세손이고, 아버지는 충훈부도사 고익현(高益顯)이다. 고재선(高在璿)은 문학으로 이름이 났으며, 효도와 우애가 독실하여 일대의 추앙을 받았다. 부모상을 당해서는 비바람을 피하지 않고 3년간 시묘하였다. 한시 「가섭사(迦葉寺)」와 1890년(고종 27)에 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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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구만재는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문인으로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이후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일월리, 지금의 쌍봉리에 은거하였다. 구만재가 살던 곳을 명촌(明村)이라 하였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구계리에 있다. 부제학 이단상(李端相)이 행장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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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안동. 초명은 권진(權晉), 자는 가원(可遠), 호는 양촌(陽村). 증조부는 권부(權溥)이다. 1368년(공민왕 17) 성균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급제하여 춘추관검열·성균관직강·예문관응교 등을 역임하였다. 공민왕이 죽자 정몽주(鄭夢周)·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배원친명(排元親明)을 주장하였다. 1390년(공양왕 2) 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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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동. 자는 사중(思中). 아버지는 권돈(權墩)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에서 출생하였다. 1735년(영조 11) 무과에 급제하여 비변사랑(備邊司郞)이 되고, 선전관·훈련원부정(訓鍊院副正)을 지냈다. 1743년(영조 19)에 가산군수를 하였고 이어 삼척군수·영광군수를 역임하고 경흥도호부사(慶興都護府使)를 지냈다. 묘소는 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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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응선(應善). 문충공(文忠公) 권근(權近)의 6세손이다. 아버지는 사직 권익(權翊)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에 살았다. 음보로 기용되어 1590년(선조 23) 금산제원찰방, 군위현감(軍威縣監)을 역임하였으며 치적으로 비단을 하사받았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상주판관(尙州判官)으로 동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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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정경(正卿), 호는 소한당(所閑堂). 할아버지는 문충공(文忠公) 권근(權近)이며, 아버지는 우찬성 권제(權踶)이다. 권람(權擥)[1416~1465]은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여 학문이 넓었으며, 뜻이 크고 기이한 계책이 많았다. 불교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활을 잘 쏘고 문장에 뛰어났다. 35세까지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있다가, 1450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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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에서 태어나 자랐다. 1771년(영조 47)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1776년(정조 즉위년) 5월에 제주에 선전관으로 갔다 온 후 그 공으로 6품으로 승진되었다. 명천현감·위원군수를 거쳐 여산부사를 지냈다. 여산부사 재임시 선정을 베풀었다 하여 그 곳 사람들이 거사비(去思碑)를 세웠다. 충청북도 음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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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자룡(子龍), 시호는 안양(安襄). 할아버지는 양촌 권근(權近)이고 아버지는 지재(止齋) 권제(權踶)이다. 형으로 권람(權擥)이 있다. 여러 번 과거를 보았으나 급제하지 못하다가 음보(蔭補)로 현릉(顯陵)의 능지기가 되었고 후에 상서원승(尙瑞院丞)에 이르렀다. 형 권람과 함께 계유정난에 가담하여 1455년(세조 원년) 수충경절좌익공신(輸忠勁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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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창보(昌甫). 권연의 아버지는 권점(權點)이다. 권연은 1764년에 출생하였다. 성리학(性理學)을 전공하면서 향약의 범례(範例)와 장정(章程)을 모아 엮은 『향약장정(鄕約章程)』을 충실히 실천하였고 향토 문화의 발전과 후학을 양성에 평생을 보냈다. 이러한 치적을 인정받아 사후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증직되었다.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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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무신. 본관은 안동. 자는 명여(命汝). 아버지는 만오(晩悟) 권종석(權鍾奭)이다. 1868년(고종 5)에 출생하였다. 1885년(고종 22) 무과에 급제하여, 1890년 선전관, 1891년 훈련원주부, 1892년 사헌부감찰 등을 역임하였다. 1899년 31세로 별세하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사창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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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안동. 자는 백도(伯道), 호는 국우재(鞠又齋). 할아버지는 권징(權徵), 아버지는 현령 권경(權憬)이다. 1616년(광해군 8)에 출생하였다. 수직(壽職)으로 수의좌위부사위(修義佐衛副司尉)를 받았다. 우암 송시열의 문하에서 김운곡(金雲谷)·정포옹(鄭抱翁)과 교유가 두터웠다. 1655년 향년 40세로 별세하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본대리 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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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동. 자는 인지(仁之). 아버지는 대사헌 권휴(權休)이다. 권인은 1650년에 출생하였으며, 용양위어모장군(龍驤衛禦侮將軍)을 역임하고 호조참의에 증직되었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능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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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안동. 고조부는 경흥도호부사 권급(權伋)이다. 1824년(순조 24)에 출생하였다. 1850년(철종 1) 무과에 급제하여, 1853년 선전관, 1861년(철종 12) 호조좌랑, 1879년(고종 16) 언양현감, 1883년 응천(凝川)[경상남도 밀양(密陽)의 옛 이름] 군수를 역임하였다. 1885년(고종 22) 통정대부가 되었고, 1889년(고종 26)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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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중안(仲安), 호는 지재(止齋). 아버지는 권근(權近)이다. 부인은 판사 이휴(李携)의 딸이다. 음보로 경승부주부(敬承府主簿)에 기용되었고 후에 감찰이 되었다. 1414년(태종 14) 문과에 급제하고, 병조정랑·예문관응교를 역임하고, 1416년(태종 16) 성균관사예, 1418년 의정부사인·전사소윤·세자시강원문학을 지냈다. 1419년(세종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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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동. 자는 주백(周伯), 호는 만오(晩悟). 아버지는 권교삼(權敎三)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에서 1848년(헌종 14)에 출생하였으며 여덟 살 때 부모를 잃었다. 1863년(철종 14)에 무과에 급제하여 비변랑이 되었고, 1881년(고종 18) 의정부공사관이 되었으며 1883년 훈련원첨정에 이르렀다. 1884년 선전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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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무신. 본관은 안동. 자는 순좌(舜佐). 아버지는 권일규(權一圭)이다. 1879년(고종 16) 무과에 급제하였다. 1892년(고종 29) 의정부종사관(議政府從事官)을 역임하고 용양위부사과(龍驤衛副司果)로서 녹도(鹿島)의 난에 종군하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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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오미(五美). 아버지는 권근(權近)이다. 부인은 해주정씨로 찬성 정이(鄭易)의 딸이다. 1422년(세종 4) 문음(門蔭)으로 종묘부정에 제수되고 1430년(세종 12) 호조좌랑이 되었다. 1434년(세종 16) 종부시판관(宗簿寺判官)으로 강원도와 함길도에 가서 기민 구제 상황을 시찰하였다. 사헌부지평, 1438년(세종 20) 경기경력,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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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동. 호는 수졸재(守拙齋). 조부는 송암(松菴) 권징(權徵)이며, 아버지는 권경(權憬)이다. 용양위부사직(龍驤衛副司直)을 역임한 후 과거를 포기하고 우암 송시열·동춘 송준길·이유태과 더불어 학문하면서 영호계(永好契)를 맺어 교유하다가 회덕(懷德) 와촌(瓦村)으로 옮겨 은거하였다. 1680년(숙종 6)에 향년 68세로 졸하였다.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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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광산. 자는 중옥(仲玉). 증조부는 군자감주부 김덕항(金德恒), 아버지는 선교랑 김기제(金起悌)이다. 부인은 천안전씨로 전이종(全爾宗)의 딸과 전주이씨로 별검 이성장(李星長)의 딸이다. 김각은 1672년(현종 13)에 무과에 급제하여 삼화도호부사(三和都護府使)를 지내고, 1695년(숙종 21)에 정평도호부사(定平都護府使)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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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광산. 호는 희근(希芹). 증조부는 주부 김덕항(金德恒), 아버지는 통덕랑 김기효(金起孝)이다. 어머니는 초계정씨로 음성현감 정경례(鄭景禮)의 증손녀이며, 부인은 전의이씨로 진사 이수전(李壽全)의 딸이다. 12세에 사서에 통달하여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 통덕랑에 제수되었으나 평생 독서만 하였다.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 묘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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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경삼(慶三). 오은 김사렴(金士廉)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고종 때에 돈령부도정(敦寧府都正)을 지낸 김환유(金煥維)이다. 타고난 품성이 효성스럽고 우애 있으며 가훈을 준수하였다. 아우 김기화(金基華)가 수십 리 거리를 다니며 공부하는데, 비를 막아주고 눈을 쓸어주고 따라다니며 보살필 만큼 우애가 깊었다. 1908년(순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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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광산김씨 입향조.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사구(士久). 아버지는 군수(郡守) 김봉서(金鳳瑞)이다. 음보(蔭補)로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를 지냈다. 한성에 살다가 1593년(선조 26)에 임진왜란을 피하여 처가가 있는 지금의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초천리에 와서 머물렀다. 1599년(선조 32)에 한성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전쟁으로 집이 불타 없어졌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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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음성 지역에서 활동했다고 전하는 서예가. 자는 지단(知端), 별명은 구(玖). 『삼국사기』권 48 열전 김생조에 부모가 두드러지지 않아 가계를 알 수 없다고 적혀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원통산 아래에서 오로지 글씨에만 정진하였다는 전설과 함께 “낙엽에 먹물로 글씨를 썼는데 그 낙엽이 계곡으로 모여 계곡물이 검어졌다”는 얘기가 전한다.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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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세거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공석(公碩), 호는 십청헌(十淸軒)·지비옹(知非翁). 두문동충신 김자수(金自粹)의 고손이다. 할아버지는 원종공신 김영유(金永濡)이고 아버지는 충주목사 김훈(金薰)이다. 어머니는 진천송씨로 군수 송학(宋翯)의 딸이고, 부인은 고성이씨로 부사 이탁(李鐸)의 딸이다. 아들은 김숙(金䃤), 김구(金瞿), 김저(金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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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청일(淸一), 호는 성와(惺窩). 아버지는 의관(議官)을 지낸 김정훈(金正勳)이다. 김수홍(金壽洪)은 최익현(崔益鉉)에게서 학문을 익혀 문장이 탁월하고 의리가 뚜렷하여 춘추회(春秋會)에서 유생들에게 예(禮)를 강술하였다. 문묘와 태교사(泰喬祠)에 봉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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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백오(伯五). 정숙공(貞肅公) 김인경(金仁慶)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사예(司藝) 김예원(金禮源)이다. 김숭종은 일찍이 초시에 급제하여 생원으로 학문에 전념하면서 조광조·김정과 함께 경학을 토론하였다. 1519년(중종 14) 4월에 별시문과에 합격하였고 조광조가 신진사류를 기용할 때 기용되었다가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쫓기다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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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구안동(舊安東). 자는 선여(善餘), 호는 만은(晩隱). 아버지는 김두서(金斗瑞)이다. 김시경(金始慶)[1659~?]은 1682년(숙종 8) 진사가 되고, 이듬해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08년(숙종 34) 세자시강원필선(世子侍講院弼善), 1709년(숙종 35) 사헌장령겸지제교(司憲掌令兼知製敎), 1716년(숙종 42) 승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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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아들은 학문에 힘써 인종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른 김약온(金若溫)이다. 1070년(문종 24) 상서우승(尙書右丞)·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에 이어 서북로병마부사(西北路兵馬副使)가 되었다. 1074년에 태복시경(太僕寺卿)으로 사은사가 되어 송나라에 가서 고려 사신들이 이용하는 등주(登州)를 요(遼)의 이목을 피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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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음성현감을 지낸 문신. 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명보(明甫), 호는 오소재(吾巢齋). 아버지는 좌찬성에 증직된 김로(金簵)이며, 어머니는 배천조씨로 조헌(趙憲)의 딸이다. 김여량(金汝亮)[1603~1683]은 1633년(인조 11)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이듬해 권지승문원부정자(權知承文院副正字)으로 사환을 시작하여 봉상시주부겸승문원박사(奉常寺主簿兼承文院博士)·성균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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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열지(烈之), 호는 맹암(孟巖). 아버지는 상서(尙書) 김굉(金紘)이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음성의 인물로 등재되어 있다. 김영렬(金英烈)[?~1404]은 1394년(태조 3)에 전서(典書)로 있던 중 그해 경기우도수군첨절제사가 되었다. 그 때 연해를 노략질하는 왜구를 물리치는 계책을 올려, 13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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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시은(市隱). 조부는 김태희(金泰熙), 아버지는 김기명(金基明)이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음성의 인물로 등재되어 있다. 기개와 절의가 있었으며 사람을 사귀고 담론을 좋아하니 선비들이 다투어 서로 따랐으므로 큰 뜻을 세워 난정수계(蘭亭修稧)을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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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입지(立之). 할아버지는 소윤 김백은(金伯隱)이고, 아버지는 사직 김우전(金雨田)이다. 부인은 윤씨이며, 아들은 김숭종(金崇宗)이다. 1466년(세조 12) 급제하였고, 승문원주서(承文院注書)가 되어 『세조실록(世祖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1469년(예종 1) 예문관검열, 1471년(성종 2) 승정원주서·춘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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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의병장. 1905년 을사륵약이 체결되자 가산을 팔고 의병을 모집하여 1906년 3월경에 이교율(李敎律) 등 2인과 같이 경기도 광주군 남종면 귀흥리에 이르렀다. 이미 해가 졌는데 마침 일본 수비대 10여 명이 귀흥리 어느 집에 투숙한 것을 탐지하였다. 동행한 사람들과 밀의하고 심야에 적 보초병을 돌로 타살하고 무기를 탈취한 후 일본 병사 숙소에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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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음성현감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백후(伯厚), 호는 잠곡(潛谷). 아버지는 김흥우(金興宇)이다. 김육(金堉)은 9세 때 아버지 김흥우의 임지인 강동(江東)으로 따라가서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의 문하에서 배웠다. 그러나 잇달아 상(喪)을 당하여 상제로 7~8년간을 지내며 곤궁하게 떠돌아다니다가 25세 때 장가들고, 1605년(선조 38)에 진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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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여망(汝望), 호는 남곡(南谷). 상촌 김자수(金自粹)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십청헌(十淸軒) 김세필(金世弼), 아버지는 별제 김중경(金重慶)이다. 어머니는 전주이씨로 보성군 이만년(李萬年)의 딸이다. 부인은 창녕성씨로 부제학 성진선(成晋善)의 딸이다. 아들로 김진곤(金振坤)·김약곤(金躍坤)·김우곤(金遇坤)이 있다. 김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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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의 지천서원에 배향된 고려 후기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순중(純仲), 호는 상촌(桑村). 검교태자태사 김인관(金仁琯)의 8세손이다. 조부는 삼사부사 김영백(金英伯), 아버지는 통례문부사 김오(金珸)이다. 부인은 안동권씨로 낭장 권수(權隨)의 딸이다. 아들은 평양소윤 김근(金根)이고, 사위는 중랑장 권후(權厚)이다. 김영유(金永濡)가 손자이며 십청헌 김세필(金世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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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 김인관(金仁琯)의 9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삼사부사 김영백(金英伯), 아버지는 김영백의 둘째아들인 양주목사 김대(金玳)이다. 어머니는 하음최씨(河陰崔氏)로 부제학 최급(崔岌)의 딸이다. 상촌 김자수(金自粹)와는 사촌간이다. 1401년(태종 1) 문과 증광시에 급제하였다. 1410년(태종 10)에 사노비를 부당하게 획득하여 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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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학광(學光). 아버지는 이조참판 김세필(金世弼)이다. 김저(金儲)[1512~1547]는 1539년(중종 34)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검열(檢閱)을 거쳐 지평(持平)에 이르렀다. 1545년(인종 1) 을사사화로 심한 고문을 받고 삼수(三水)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사사(賜死)되었다. 선조 초에 관작(官爵)이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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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이며 지천서원 배향 인물.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길(重吉), 호는 추곡(秋谷), 자호는 송림(松林). 십청헌(十淸軒) 김세필(金世弼)의 고손이다. 할아버지는 원종공신 김선경(金善慶)이며 아버지는 생원 김순(金峋)이다. 어머니는 청주한씨로 한광윤(韓匡胤)의 딸이며, 부인은 나주정씨로 정언규(丁彦珪)의 딸이다. 아들은 김방(金滂), 김만(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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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의성(義城). 손자는 김문상(金文商)이다. 김종립(金宗立)[?~1636]은 1624년(인조 2) 무과에 급제하여 군자감봉사(軍資監奉事)에서 주부에 이르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진천현 초관(哨官)으로서 충청감사 정세규를 따라 광주(廣州) 험천(險川)에서 적과 싸우다가 대패하였다.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정세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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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음성현감을 역임한 문신. 김진강(金震綱)[1523~1581]은 초시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고, 1563년(명종 18)에 음성현감을 지내고, 사헌부감찰을 역임하였다. 관직에서 물러난 후 음성군 감곡면 상평리에 세거(世居)하여 안동김씨가 음성군에 옮겨 와서 살게 된 중시조(中始祖)가 되었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상평리 상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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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육영 사업가. 본관은 의성(義城). 훈신 김영렬(金英烈)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중삼(金重三)이다. 김창도(金昌道)는 성품이 인후하고 가족 간의 화목이 돈독하였다. 전답을 마련하여 학당(學堂)을 세워 육영 사업에 힘썼으며, 문사가 여기에서 많이 배출되어 사우 간에 추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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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성우(聖友), 호는 야춘(惹春). 참판 김낙회(金樂會)의 아들이다. 김태희가 완도군수로 있을 때 문덕(文德)으로 백성을 이끌어서 군민들이 강무정(降務亭)을 세워 자취를 기록하였다. 벼슬은 참판에 이르렀으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1894년 갑오변란 이후 임천(林泉)에 은거하며 지내다가, 1908년(순종 2) 7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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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출신의 조선 말기 문신. 김태희의 본관은 경주로, 김재(金在)의 5세손이고, 김성우(金聖雨) 아들이다. 김태희의 초명은 수인(秀仁)이고, 자는 성칠(性七)로, 법부주사(法部主事)를 지냈다. 『음성읍지』에 이름이 올라 있다. 음성군 생극면 도신리 신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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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충청북도 음성군 지천서원에 배향된 인물.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문숙(文叔), 호는 학주(鶴洲). 김자수(金自粹)의 8세손이고, 아버지는 김적(金積)이다. 김홍욱(金弘郁)[1602~1654]은 1635년(인조 13)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고,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세자시강원설서(世子侍講院說書)를 지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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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공범(公範), 호는 각회옹(覺悔翁). 고조부는 김자수(金自粹), 아버지는 참봉 김평(金萍)인데 중부(仲父) 경상우수사 김훤(金萱)에게 입계하다. 부인은 풍양조씨로 조승종(趙承宗)의 딸이다.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기발한 재질과 영매한 기상이 있었으며 학문에 뜻을 두어 세상 사람들이 경모하였다. 스무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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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 출신의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구안동(舊安東). 자는 용여(用汝). 오은(梧隱) 김사렴(金士廉)의 후손으로, 김사렴은 정몽주, 이색과 더불어 직간(直諫)으로 이름이 있어 당대의 세력가 신돈을 위험인물이라 하였다고 한다. 고려가 망하자 청주 도산(陶山)에 은거·두문불출하였다. 아버지는 김의택(金義宅)이다. 김환유(金煥維)는 고종 때 수직으로 돈령도정(敦寧都正)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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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남석린(南錫麟)[1852~1918]은 1876년(고종 13)에 무과에 급제하고, 1887년(고종 24) 영월군수, 1891년(고종 28) 나주영장·삼수군수를 역임하였다. 1900년(고종 37)에 고향으로 돌아와 음성읍에 광명학교(光明學校)를 개설하고 박제익(朴齊翼), 조충하(趙忠夏), 남궁모(南宮模) 등과 함께 협력하여 교육 사업을 하여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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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어렸을 때부터 강개한 기질이 있어 『한서(漢書)』를 읽었고, “대장부가 눈을 씹어 먹고 담비 털로 잠을 자는 괴로움이 있어도 어찌 불가능이 있으랴”하고 열심히 무술을 연마하였는데 그때 남연년이 무술하던 초록바위가 노래기 중말 동쪽 산에 있다. 1689년(숙종 15)에는 부친의 병환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드리는 효행이 있었으며, 아우 남극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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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의령(宜寧). 태종의 부마(駙馬) 남휘(南暉)와 정선공주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남빈(南份), 어머니는 현감 홍여공(洪汝恭)의 딸이다. 부인은 태종의 외손인 좌의정 권람(權擥)의 4녀이다. 1457년(세조 3) 17세의 나이로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세조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1467년에 이시애(李施愛)가 난을 일으키자 우상대장(右廂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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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여흥. 아버지는 효자 민동량(閔東亮)이다. 큰아버지 민동상(閔東尙)에게 출계(出系)하였다. 아버지가 했던 효의 덕업을 이어받아 어버이에게 대한 효도를 실천하여 온 집안사람들의 칭송을 받았고 집안의 자랑이 되었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상평리에 있다. 호조참판에 증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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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분충(奮忠). 증좌찬성(贈左贊成) 민수산(閔壽山)의 아들이고, 증문하시중(贈門下侍中) 여원군(驪源君) 민백훤(閔佰萱)의 손자이다. 친형은 민서(閔叙)이다. 민발은 어려서부터 기골이 크고 힘이 세어 13세 때 무술 연마를 위해 마을 앞 큰 바위를 움직여 등에 지고 사장(射場) 터로 옮겨놓았다고 한다. 음보(蔭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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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여흥(驢興). 아버지는 서운부정(書雲副正)을 지낸 민함계(閔咸啓)이고, 아들은 조선 초기 문신인 민수산(閔壽山), 손자는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공신에 오른 민발(閔發)이다. 민백훤은 어렸을 때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전평리 새눈이에서 살았으며 1374년(우왕 즉위) 11월에 전공판서(典工判書)로 사신이 되어 밀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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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고려시대 서운부정(書雲副正)을 지낸 민함계(閔咸啓)의 손자이고, 고려 후기 문신이었던 민백훤(閔伯萱)의 아들이다.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민발(閔發)이 아들이다. 민수산은 어려서부터 글을 잘하여 1382년에 어전 시회(詩會)에서 장원하였다. 1411년(태종 11)에 어머니가 죽자 형제인 민방보(閔邦寶)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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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여흥. 할아버지는 민동량(閔東亮)이고 아버지는 민경연(閔景淵)이다. 조상의 덕업을 받들어 모셔 어버이에게 효도하여 집안의 명성을 높였다. 정조조에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아들 민백원(閔百元)과 손자 민국현(閔國顯)은 경서에 능하였고 증손 민치경(閔致慶)은 문예에 숙달하여 사람들이 산동(山東) 문장이라 칭하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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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고려시대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 민의(閔懿)의 아들이다. 처는 배씨(裵氏)이며 아들로 민식(閔湜)·민공규(閔公珪)가 있다. 배씨의 동생은 유익겸(柳益謙)의 처가 되었다. 민영모는 인종·의종·명종 때 활동한 인물로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였다. 민영모가 처음 과거에 응시했을 때 부(賦)를 지었는데 격식에 맞지 않아서 동지공거(同知貢擧) 이지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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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민충길(閔忠吉)이다. 민침(閔忱)[1600~?]은 1627년(인조 5) 27살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651년(효종 2) 51살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지 정창주(鄭昌胄)가 “세무(世務)에 통달하고 강어(强禦)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천거하여 사헌부감찰을 지내고 이어서 문의현감(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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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 자는 우경(虞卿). 박순(朴淳)의 현손이다. 할아버지는 박윤진(朴胤陳), 아버지는 박유겸(朴惟謙)이며 부인은 함양여씨이다. 박계는 1568년(선조 원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고, 벼슬은 감역(監役)에 이르렀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상곡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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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陰城). 박서(朴犀) 장군의 21세손이며 아버지는 박시중(朴時中)이다. 박대현은 조선 후기의 선비로 전우(田愚)의 문인(門人)으로 학문을 좋아하고 덕이 많았으며, 학문과 덕을 실천하였다. 고종 때 장릉참봉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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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陰城). 자는 자복(子復). 박서(朴犀) 장군의 18세손이다. 아버지는 사정(司正) 박흥한(朴興漢)이다. 박래양은 1823년(순조 23)에 정시(庭試) 문과(文科) 병과(丙科)에 급제하여 벼슬이 정언(正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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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생원. 본관은 음성. 자는 득지(得之). 박서(朴犀) 장군의 18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첨지 박취도(朴就道)이고, 아버지는 박경세(朴慶世)이다. 박래태는 1786년(정조 10)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으나, 그 해 28세로 아깝게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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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字)는 창세(昌世), 호(號)는 눌재(訥齋). 아버지는 성균관진사 박지흥(朴智興)이고, 어머니는 생원 서종하(徐宗夏)의 딸이다. 박상은 성품이 강직·충정하였으며 문장이 뛰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강직하며 몸가짐이 정숙하여 언행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1496년(연산군 2)에 진사가 되었고, 1501년(연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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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죽산(竹山). 귀주대첩에서 공을 세워 음성백(陰城伯)에 봉해진 후 음성박씨(陰城朴氏)의 시조가 되었다. 아버지는 호부상서(戶部尙書) 박인석(朴仁碩)이다. 박서는 무과에 급제한 후 1202년(신종 5)에 아버지가 진주도 안찰부사(按察副使)로 도적을 평정한 공에 의해 내시(內侍)로 근무하게 되었다. 봉선고판관(奉先庫判官)에 임명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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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陰城). 자는 사장(士章), 호는 시각(柴閣). 조부는 지평 박정완(朴廷琓)이다. 아버지는 박장흠(朴長欽)이다. 박성한은 조선 정조 때에 성균관 유생으로 1801년 감제시(柑製試)에서 수석을 차지함으로써 바로 전시(殿試)를 보게 하였다. 이듬해 초시 문과(文科)의 병과(丙科)에 합격하여 벼슬이 헌납(獻納)에 이르렀다. 사랑과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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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밀양. 자는 연길(年吉), 호는 의당(毅堂). 묵재(黙齋) 박경상(朴景祥)의 8세손이다. 아버지는 박기숙(朴紀淑)이다. 함경남도 고원군 남흥리에서 태어났다. 1860년(철종 11) 어머니의 병환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소생시켰다. 1870년(고종 7) 향리 사람들이 그 효성에 감동하여 포상을 진정하려 하자 부끄럽다며 진정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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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음성박씨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 박서(朴犀) 장군의 7세손이다. 아버지는 증병조참판 박흔(朴昕)이고, 부인은 횡성윤씨로 윤의손의 딸이다. 박숙달은 1462년(세조 8) 추장문과에 정과로 급제하고 1465년 사관으로 경연에서 『논어(論語)』를 강하였다. 1476년(성종 7) 사헌부지평, 1478년 사헌부장령, 의정부사인을 거쳐 동년 10월 문례관이 되었고, 14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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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음성박씨 출신의 문신.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음성군 명묘조(名墓條)에 등재되어 있다. 본관은 음성(陰城). 충민공 박순(朴淳)의 손자이며, 증참판 박흔(朴昕)의 둘째아들이다. 형은 박숙진(朴叔蓁)이며, 아들은 박윤진(朴胤陳)이다. 박숙무(朴叔楙)는 1467년(세조 13) 12월 건주위(建州衛)를 정벌한 공로로 1469년 사헌부감찰이 되었고, 1471년(성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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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음성박씨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陰城). 자는 정지(挺之). 음성백 박서(朴犀)의 7세손이고, 함흥차사로 알려진 박순(朴淳)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박흔(朴昕)이며, 동생은 박숙무(朴叔楙)이다. 박숙진(朴叔蓁)[1424~1481]은 1447년(세종 29) 사마시에 급제하고, 1453년(단종 1)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455년 권지정자(權知正字)로 벼슬에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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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 음성백 박서의 7세손이다. 조부는 충민공 박순(朴淳), 아버지는 증참판 박흔(朴昕)이다. 부인은 해주오씨로 생원 오시준(吳時俊)의 딸이다. 1465년(세조 10) 춘시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였다. 1467년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가 되어 병장설(兵將說)을 강하였다. 이어 경상도 도사(都事)에 이르렀으나 일찍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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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이자 음성박씨의 선조. 본관은 음성(陰城). 고려 평장사(平章事) 박서(朴犀)의 후손이며 시랑(侍郞) 박문길(朴文吉)의 아들이다. 효자문이 남아 있는 박호원(朴浩遠)이 박순의 아들이며 대사헌까지 지낸 박숙채(朴菽蔡)가 손자이다. 조선 중기의 선비인 박유겸(朴惟謙)은 박순의 후손이다. 박순의 처 장흥임씨(長興任氏)는 고려시대 대사헌(大司憲) 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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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음성. 자는 계칠(季七). 박서(朴犀) 장군의 20세손이다. 아버지는 박기혁(朴基赫)이고, 형은 박시중(朴時中)이다. 박시재는 향리에서 인과 효, 의로 추앙을 받았으며, 1882년(고종 19) 성균관시에 51세로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 청룡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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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음성(陰城). 자(字)는 희천(希天), 호는 오촌(梧村). 박서(朴犀) 장군의 20세손이고, 박기혁(朴基赫) 아들로 태어났으나 큰아버지 박지혁(朴趾赫)에게 양자로 입양되었다. 자기가 사는 오류골의 이름을 따서 호를 정하였다. 박시중은 어질고 효행이 깊었으며, 온화하고 공손하며 겸손하였다. 누구라도 착하지 않으면 사귀지 않았고, 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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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음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 자는 겸지(謙之). 박순(朴淳)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박윤진이고, 부인은 문화유씨 사정 유세장(柳世長)의 딸이다. 박유겸은 생원으로서 선공감역(繕工監役)을 역임하였다. 묘소가 경기도 광주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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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본관은 음성. 자는 경지(敬之). 고조부는 충민공 박순(朴淳), 아버지는 박윤진(朴胤陳)이다. 부인은 해평윤씨로 사과 윤렬(尹洌)의 딸, 그리고 전주이씨로 군수 이회(李檜)의 딸이다. 박유경은 부친에게 공부하여 문장을 잘 짓고 학우가 많았으며, 효행이 지극하여 명정(命旌)되었다. 장사랑(將仕郞)으로 있던 1519년(중종 14)에 기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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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이자 순천박씨 음성 입향조.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여구(汝久). 아버지는 판서를 지낸 박원상(朴元象)이고, 아들은 단종 때 중부녹사(中部錄事)를 지낸 박추(朴樞)이다. 박팽년(朴彭年)은 그의 종손(從孫)이다. 박장생은 문과에 급제한 후 이조판서를 거쳐 대제학(大提學)에 이르렀으나 만년에는 개성윤(開城尹)에서 물러나 산수(山水)를 소요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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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음성. 자는 여구(汝久). 충민공 박순(朴淳)의 12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진사 박성구(朴聖龜), 아버지는 지평 박정완(朴廷琓)이다. 부인은 문화유씨 유철모의 딸로 정조 때 정려를 받았다. 박장흠은 1754년(영조 30) 소과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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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공하(公夏), 호는 삼평와(三平窩). 현감 박경진(朴敬鎭)의 아들이다. 박재순은 1774년(영조 50) 37세에 생원시에 합격한 이후 1783년(정조 7) 46세에 식년 병과 문과로 급제하여 수찬(修撰)·응교(應敎)·좌승지(左承旨) 등 여러 관직을 거쳤다. 그 후 1790년(정조 14)에 공조참판에 이르렀다. 박재순이 쓴 책으로 『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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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음성. 자는 기옥(其玉), 호는 인암(仁庵). 음성박씨 시조 박서의 22세손이고, 충민공(忠愍公) 박순(朴淳)의 18세손이다. 할아버지는 박시중(朴時中), 아버지는 장릉참봉 박대현(朴大鉉)이다. 부인은 전주이씨로 이인창(李寅昶)의 딸이다. 아들로 박충근(朴忠根)과 박형근(朴瀅根)이 있다. 1887년(고종 24) 출생하였다. 효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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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에 음성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고령. 자는 길보(吉甫), 호는 설초(雪樵). 아버지는 승지(承旨)를 지냈던 박준우(朴浚遇)이다. 35세인 1864년(고종 1)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교하현감과 횡성군수를 지냈다. 이때 여러 치적이 있어서 군민들에게 만인산(萬人傘)을 받았다. 79세 되던 해인 1908년(순종 2) 3월 12일 음성군수로 부임하였다가 8월 29일 그만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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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덕삼(德三), 호는 정산(貞山). 박화철(朴和喆)의 아들이다. 박준우는 1844년(헌종 10) 39세로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수찬(修撰)·교리(校理)를 거쳐 1850년(철종 1) 50세에 좌승지가 되었다. 이어 5년 뒤에 사간원대사간이 되었다. 박준우의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소여리(所餘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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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陰城). 자는 덕여(德汝), 호는 입암(立庵). 박서(朴犀) 장군의 16세손이고, 아버지는 아산현감 박정규(朴廷珪)이며, 어머니는 경주이씨 장령 이행민의 딸이다. 박준흠은 어려서부터 글을 좋아하여 한번 읽은 글은 반드시 기억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또한 성장하면서 경학을 연구하였고, 의문점은 도암 이재와 여호 박필주에게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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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음성(陰城). 자는 여진(汝進), 호는 죽남(竹南). 아버지는 부사용 박상채(朴尙彩)이다. 도암(陶菴) 이재(李縡)에게 배웠는데, 학문을 좋아하며 대의를 위한 절개가 있었다. 1721년(경종 원년) 태학생 윤지술(尹志述)의 피화 사건을 듣고는 더 이상 서울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고기를 잡고 나무를 하며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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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 자는 도기(道器). 아버지는 박근순(朴謹淳)이다. 26세 때인 1780년(정조 4)에 음보(蔭補)로 인릉참봉(仁陵參奉)이 되었고 1801년(순조 1) 화순현감으로 부임하여 초하루와 보름에 청소년을 모아 향약을 베풀고 경서를 강의하였다. 문장이 뛰어나고 글을 잘하여 명성이 높았고 효자로도 널리 알려졌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충도리 벳돈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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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음성(陰城). 자는 자앙(子昻). 박서(朴犀) 장군의 12세손이고, 아버지는 사과(司果) 박충준이다. 아들로는 박문욱·박문술·박문빈·박문형·박문성의 다섯 명이 있다. 1605년(선조 38)에 이질수(李質粹) 화변에 무고로 연루되었다가 광해군 때 교부(校簿)가 되었다. 1613년(광해군 5) 폐모 후에 “비록 미물이라도 충효를 능히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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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대경(大卿), 호는 두산(斗山). 아버지는 반진홍(潘鎭洪)이고, 형은 반필순(潘弼淳)이며, 아들로는 반시동(潘始東)·반혁동(潘爀東)이 있다. 반달순은 문장과 학문에 있어 사람들이 아버지 반진홍, 형인 반필순과 함께 삼소(三蘇)라고 칭하였다. 아들 반시동과 반혁동도 문장과 학문에 조예가 깊었다. 묘는 충청북도 음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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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복원(服元), 호는 난파(蘭坡). 주부 반운익(潘雲翼)의 8세손이고, 반경제(潘景濟)의 아들이다. 반면주는 음성문묘 중수 때 도유사로 책임을 완수했고, 향시시관(鄕試試官)을 네 번이나 역임했다. 가풍이 있는 집안에서 자라 탁월한 품행으로 이름을 떨쳤다고 전하는데, 당시 음성현감 정현석(鄭顯奭)은 ‘겸손한 마음은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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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 자는 붕거(鵬擧). 아버지는 반인경(潘仁慶)이고, 부인은 보성오씨로 진사 오행원의 딸이다. 아들은 반윤기(潘潤沂), 반윤국(潘潤國), 반윤수(潘潤洙)이다. 반명익은 향년 91세까지 장수하여 수직(壽職)으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제수되었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 해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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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에 정착한 광주반씨 입향조.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평보(平父). 아버지는 반서린(潘瑞麟)이다. 형은 판서 반석평(潘碩坪)이다. 1507년(중종 2) 진사에 합격하였으나, 여러 차례 대과에 응시하지 못한 채 1540년(중종 35) 율봉찰방에 제수되었다. 1545년(인종 1) 사온직장, 1547년(명종 2) 내자시주부로 승진하였다. 영춘현감(永春縣監)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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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공문(公文)이며, 호는 송애(松崖). 아버지는 반서린(潘瑞麟)이다. 원래 재상가의 종이었으나 재상이 반석평의 재주와 성품을 사랑하여 글을 가르치고 아들 없는 부잣집으로 보내 공부에 힘쓰게 하였다.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으로 김식(金湜) 등과 교유하였다. 1507년(중종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어 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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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 자는 희순(羲舜), 호는 죽재(竹齋). 판서 반석평(潘碩坪)의 후손이며, 반진두(潘鎭斗)의 아들이다. 반성순은 학식이 뛰어나 향리에서 신망이 두터웠고, 후학들로부터 추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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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백실(伯實), 호는 직재(直齋). 아버지는 현감 반윤기(潘潤沂)이다. 부인은 임천조씨(林川趙氏)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으로 문장이 뛰어나 세상에 알려졌다. 관계(官階)가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천리 능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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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 자는 찬교(讚敎) 또는 원춘(元春), 호는 홍암(弘菴). 시조 반충(潘忠)의 19세손이다. 조부는 설포 반진홍(潘鎭洪), 아버지는 두산 반달순(潘達淳)이다. 부인은 옥구장씨(沃溝張氏)로 장기화(張基華)의 딸과 단양장씨(丹陽張氏)로 장동관(張東觀)의 딸 그리고 순천박씨(順天朴氏)로 박두현(朴斗鉉)의 딸이다. 1903년에 법부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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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 자는 성칠(成七). 시조 반충(潘忠)의 18세손이고, 통덕랑 반세영(潘世榮)의 9세손이다. 아버지는 반진국(潘鎭國)이다. 어머니는 경주이씨(慶州李氏)로 이현도(李賢道)의 딸이다. 부인은 충주최씨(忠州崔氏)이다. 아들로 반필동(潘必東)·반한동(潘漢東)·반회동(潘淮東)이 있다.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가 돈독하여 향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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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도원(道源). 아버지는 반명익(潘溟翼)이다. 1617년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났다. 1646년(인조 24)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1648년(인조 26) 식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춘추관기주관(春秋館記註官), 호조정랑·형조정랑을 거쳐 흥양현감과 회덕현감을 지냈다. 1674년 향년 58세로 사망하였다.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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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응선(應先), 호는 국오(菊塢). 할아버지는 반석권(潘碩權)이며, 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郞) 반사렴(潘士濂)이다. 1555년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났다. 1591년(선조 24)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명경과(明經科)의 『대학(大學)』에서 떨어진 뒤 과거 공부를 그만두고 글에만 전념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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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 자는 제향(濟鄕). 조부는 반윤기(潘潤沂)이고, 아버지는 반계영(潘啓榮)이다. 반주석은 1720년(숙종 46)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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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 자는 치정(致楨), 호는 현포(玄圃).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반석평(潘碩坪)의 13세손이다. 아버지는 반우택(潘禹澤)이고, 형은 반진홍(潘鎭洪)이다. 반진간은 효도와 우애로 덕망이 있어 사우간에 공경을 받았다. 고종 때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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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 자는 치우(致于), 호는 설포(雪圃). 초명은 진정(鎭楨)·진홍(鎭鴻).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반석평(潘碩坪)의 13세손이다. 아버지는 반우택(潘禹澤)이고, 동생은 반진간(潘鎭幹)이다. 반진홍은 문학이 뛰어났으며 사람됨이 단정하고 말이 적었다. 고종 때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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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광주. 자는 계실(季實). 아버지는 현감 반윤기(潘潤沂)이다. 1690년(숙종 16) 반최영은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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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 자는 열경(說卿), 호는 사산(司山).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반석평(潘碩坪)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반진홍(潘鎭洪)이다. 반필순은 문장에 능하고 덕행이 있어 사우간에 추앙되었다. 성균관 과거에 합격하여 통덕랑(通德郞)이 되었으며, 1892년(고종 29) 음성향교 장의(掌議)로 있다가 1893년 금영 이시에 1등으로 뽑혔으나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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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창녕(昌寧). 창녕성씨 시조 성인보(成仁輔)의 22세손이고, 성일교(成一敎)의 6세손이다. 성덕주(成德周)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성덕후(成德厚)의 양자가 되었다. 부인은 순흥안씨(順興安氏) 안진하(安鎭夏)의 딸로 문성공 안유(安裕)의 후손이다. 성기동(成耆東), 성기형(成耆亨), 성기환(成耆煥) 세 아들을 두었다. 1834년 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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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창녕(昌寧). 창녕성씨 시조 성인보(成仁輔)의 13세손이고, 성담명(成聃命)의 5세손이며, 성축(成軸)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진천송씨(鎭川宋氏) 송근(宋瑾)의 딸이며, 부인은 순천박씨(順天朴氏) 박민(朴敏)의 딸이다. 성담(成紞), 성유(成維), 성적(成績), 성표(成縹) 네 아들을 두었다. 1572년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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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화(子華). 청성군(淸城君) 손필영(孫弼榮)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손희언(孫希彦)이며, 아버지는 손계선(孫繼先)이다. 소과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손필영 이후 후손들이 주로 음성군에 세거하여 청주손씨이지만 음성군에서 대대로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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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청주(淸州). 청성군(淸城君) 손필영(孫弼榮)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손지(孫漬)이다. 섬계(剡溪) 이잠(李潛)의 문인으로, 선조 때 사마시에 합격하여 벼슬이 중추부동지사에 이르렀다. 손희성(孫希聖), 손희철(孫希哲), 손희준(孫希濬) 형제 모두가 사마시에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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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음성현감을 역임한 문신. 송규복은 1864년(고종 1) 식년시에 합격하였다. 1870년 익릉참봉(翼陵參奉)이 되었으며,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공조좌랑을 거쳐 1876년 음성현감이 되었다. 1879년(고종 16) 김포군수로 옮겼다. 1881년 애민선정비(愛民善政碑)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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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인. 본관은 진천(鎭川). 상산백(常山伯) 송인(宋仁)의 9세손이며, 아버지는 송저(宋儲)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서 살았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 1440년(세종 22) 경원판관에 제수된 이후 경원(慶源)과 자성(慈城) 수령을 거쳐 1450년(문종 즉위년) 벽동군사(碧潼郡事)에 제수되었다. 1455년(세조 즉위년) 의정부사인에 올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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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천. 상산백(常山伯) 송인(宋仁)의 8세손이며, 송광도(宋匡度)의 아들이다. 송저는 단종 대 충신인 송석동(宋石仝)의 아버지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서 살았다. 문과에 급제하고 1417년(태종 17) 홍천현감(洪川縣監)이 되었다가 1422년(세종 4) 사헌부지평이 되었다. 1441년 평양소윤(平壤少尹)으로 있으면서 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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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평산. 자는 휴경(休卿).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신오성(申五星)이다.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으며, 경종 때 대사간(大司諫)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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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음성현감을 역임한 문신이자 화가. 본관은 평산(平山). 초명은 신명한(申命漢), 자는 정평(正平), 호는 소하(小霞). 아버지는 신위(申緯)이며, 동생은 신명연(申命衍)이다. 1831년(순조 31) 생원시에 합격하고 헌종(憲宗) 때 음성현감을 역임하였다. 그림에 뛰어났으며 시도 잘 지어 동생 신명연과 함께 이름이 알려졌으나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는 『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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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평산. 자는 취경(聚卿), 호는 휴정(休停). 어사 신윤평(申尹平)의 후손이며 신대방(申大防)의 아들이다. 벼슬이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1689년(숙종 15) 인현왕후(仁顯王后) 폐비에 반대하고 귀향한 뒤 대궐을 향하여 통곡하고 서궁(西宮)을 배례하는 절의를 지켰다. 대사헌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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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정서(廷瑞). 현감 신경진(申景進)의 증손이고, 용양위부호군 신상용(申尙容)의 아들이다. 신정은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관동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번거롭게 공부하지 않아도 학문이 일취하였다. 20세인 1671년(현종 12)에 과거에 올랐는데, 이 해에 모친상을 당하였다. 두 아우와 한방에서 거처하며 효우가 독실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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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평산. 자는 순첨(舜瞻). 증이조참판 신상철(申相哲)의 아들이다. 1645년(인조 23) 음보로 벼슬에 나아가 감역(監役)이 된 뒤 제천현감을 역임했다. 이후에 평산신씨가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에 세거하기 시작하여 자손이 음성군 각지에 분산되었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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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평산. 자는 천휴(天休), 호는 임하당(林下堂). 조부는 신상철(申尙哲)이고, 아버지는 신형구(申衡耈)이다. 신후명은 1666년(현종 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대사간을 거쳐 1685년(숙종 11) 충청도관찰사가 되었으며, 이어 병조참판이 되었다. 1700년 당상(堂上)으로서 죄인 김인지(金麟至)를 서민으로 호적에 올렸다는 이유로 정언 윤헌주(尹憲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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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으로 은거한 문신. 본관은 평산. 자는 덕부(德夫), 호는 규정(葵亭)·서암(恕庵). 아버지는 현감 신항구(申恒耈)이다. 신후재는 1660년(현종 1) 사마시를 거쳐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承文院)에 등용되었다가 지평·부교리 등을 역임했다. 1679년(숙종 5) 강원도관찰사가 되었고 이듬해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남인(南人)이 제거될 때 삭직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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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자화(子華). 가선대부 안응인(安應仁) 아들이다. 일찍이 벼슬길에 올라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지냈다. 54세로 죽자 승정원좌승지겸경연참찬에 증직되었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각회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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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내숙(內叔), 호는 월창(月窓). 광양군(光陽君) 안황(安滉)의 증손이고, 동몽교관 안시수(安時秀)의 아들이다. 1666년(헌종 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가주서를 지냈다. 1670년 주서에 임명되었으며 1674년 이후 장령, 필선, 정언을 거쳤다. 1680년(숙종 6) 다시 장령, 정언이 되어 유명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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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함종. 자는 성순(聖淳). 아버지는 어용인(魚用仁)이고, 형은 어재연(魚在淵)이다. 어재순은 형인 어재연을 따라 군직(軍職)에 있다가 1871년(고종 8) 신미양요가 일어나자 광성진(廣城鎭)에서 싸우다가 형과 함께 전사하였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에 있다.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증직되었다. 묘 아래에 쌍충재(雙忠齋)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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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함종. 자는 성우(性于). 아버지는 어용인(魚用仁)이고, 아우는 어재순(魚在淳)이다. 어재연은 1866년(고종 3) 충청도병마절도사, 회령부사를 지냈고, 이 해 병인양요(丙寅洋擾)가 일어나 우선봉장(右先鋒將)으로 적을 격퇴하였다. 1871년(고종 8) 2월 도총관을 제수받았으며, 같은 해 6월 신미양요가 일어나자 진무중군(鎭撫中軍)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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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음성현감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순창(淳昌). 자는 응용(應龍)·응기(應祈). 옹몽진은 순창옹씨 시조이다. 원래 옹몽진의 선조는 고려 때 교목세신(喬木世臣)의 거족이었으나 조선 개국에 반대하여 이성계의 미움을 받아 서인이 되었다. 옹몽진은 음성향교지기를 지내다가 1553년(명종 8)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556년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67년 판관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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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자형(自馨), 호는 연균(緣筠) 또는 어수(漁叟). 유사근(柳士根)의 손자이고, 교리 유승순(柳承順)의 아들이며, 사육신(死六臣) 유성원의 큰 조카이다. 아들로는 서경(瑞卿) 유인종(柳鱗鍾)이 있다. 유계분은 1441년(세종 23) 20세에 진사(進士)가 된 후 1453년(단종 1)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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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중현(仲賢), 호는 혜인(兮人). 서예가 유한지(兪漢芝)의 손자이며, 이조참의 유초환(兪初煥)의 아우이다. 1855년(철종 6) 사마시에 급제하여 창릉참봉, 제용봉사, 오위사과 등을 거쳐, 1871년(고종 8) 통례원인의, 한성부주부, 판관을 역임하고, 태조태종추상존호도감낭청을 담당하였다. 1872년 의령현감, 1874년 평강현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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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음성현감을 지낸 문신. 1638년(인조 16)에서 1640년(인조 18)까지 음성현감으로 재직하였으며, 재임하는 동안 청백리로 선정을 베풀었다. 그 후 간신의 모함을 받아 벼슬에서 물러나 안성 향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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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아버지는 한성부판윤을 지냈던 유호(柳滸)이며, 아들은 사육신의 한 사람인 유성원(柳誠源)이다. 유사근(柳士根)은 1401년(태종 1)에 문과에 급제하여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이 되었다가 1425년(세종 7)에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을 거쳤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에 있다. 아들 유성원이 1691년(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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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음성현감을 지낸 문신. 1695년(숙종 21) 음성현감으로 부임하여 1699년(숙종 25)까지 재임하였다. 부임하던 1695년과 이듬해까지 2년 동안 목민관으로서의 임무를 잘 수행하여 칭송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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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태초(太初), 호는 낭간(琅玕)이다. 사인(舍人) 유사근(柳士根)의 아들이며 조부는 한성부판윤 유호(柳滸)이다. 연균(緣筠) 유계분(柳桂芬)이 큰 조카이다. 유성원은 1444년 문과에 급제한 후 『의방유취(醫方類聚)』의 편찬에 참여하였고, 3년 후에는 문과 중시에 합격, 집현전 학사를 지내며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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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음죽현감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서경(瑞卿). 아버지는 괴산군수 유계분(柳桂芬)이다. 유인종(柳麟種)[1450~1513]은 1472년(성종 3) 진사가 되고 8년 뒤인 1480년(성종 11)에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1484년(성종 15)에 이조좌랑이 되었고 이듬해 음죽현감(陰竹縣監)이 되었다. 1487년(성종 18)에 헌납·사간을 지냈다. 정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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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백선(伯善), 호는 남강(南岡). 서예가 유한지(兪漢芝)의 손자이며, 사복시판관 유능환(兪能煥)의 형이다. 1849년(헌종 15) 진사가 되고 1863년(철종 14) 문과에 급제하였다. 학문이 깊고 문장에 능하며 선대 3대의 필법(筆法)을 이어받아 글씨가 정묘(精妙)하였다. 벼슬에 나아가 정언, 교리, 사성, 승지, 대사간을 거쳐 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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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덕휘(德輝), 호는 기원(綺園). 산청현감 유언수(兪彦繡)의 아들이다. 사마시에 급제하여 벼슬에 나아가 감역, 영춘현감을 역임하고, 선공감부정(繕工監副正)에 이르렀다. 아버지의 필법을 이어받아 필재(筆才)로 명성을 얻어 “동방 전예(篆隸)의 으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해동호보(海東號譜)』에 “유기원은 전예를 잘해서 그 명성이 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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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무신. 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군익(君翼), 호는 능호(凌湖). 아버지는 윤택진(尹宅鎭)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에서 출생하였는데, 날 때부터 기골이 장대하였다. 1861년(철종 12) 무과에 급제하여 선공감역이 되었다가, 1870년(고종 7) 승지 민병승(閔丙承)의 천거로 훈련원첨정이 되어 훈련원도정에 올랐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사직하고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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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파평. 자는 군서(君瑞), 호는 회당(晦堂). 좌의정 윤사흔(尹士昕)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윤교명(尹敎明)이다. 지금의 경기도 양근군 남시면 지탄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머니는 고령신씨로 신각모(申慤模)의 딸이다. 부인은 영월신씨로 신석하(辛錫河)의 딸이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아버지가 가족을 데리고 청풍의 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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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계수(季守), 호는 희암(希菴)·송국주인(松菊主人). 아버지는 현령 윤해(尹海)이다. 한성에서 출생하여 4세에 책을 읽고 글씨를 써서 세상 사람들이 신동이라 칭하였다. 1554년(명종 9) 정산(鼎山) 박형(朴泂)의 문인이 되어 장차 대유(大儒)가 될 인물이라 하였다. 1580년 이조판서 윤국형(尹國馨)의 천거로 희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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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 효령대군의 현손 이효언(李孝彦)의 아들이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본대리에 있다. 이곳 묘소 근처를 전능(前陵)이라 하는데, 영의정에 증직된 까닭에 ‘능(陵)’ 자를 붙였다 한다. 영의정에 증직되고 극풍부원군(克豊府院君)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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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성주. 문경공(文景公) 이직(李稷)의 6세손이고, 이군좌(李君佐)의 아들이다. 이구령은 일찍이 중봉(重峯) 조헌(趙憲)의 문하에서 수업하여 박학독행(博學篤行)하였다. 임진왜란 때 홍천현감(洪川縣監)으로 부임하여 조헌과 더불어 창의(唱義)를 모의하여 충청남도 금산군 수남(樹柟)에 진을 치고 전투하였다. 공격하던 중 말에서 떨어져 1592년(선조 25)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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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 초명은 기주(箕疇). 자는 여구(汝九), 호는 직재(直齋). 귀천군(龜川君) 이수(李晬)의 증손이고, 부사과 이숙(李塾)의 아들이다. 이기홍은 어려서부터 지혜가 뛰어나 수년 만에 사서삼경을 모두 읽었고, 약관의 나이에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뜻을 두어 이지렴(李之濂)에게 수학했다. 1665년 송준길(宋浚吉)에게 학문의 요결을 배우고, 송시열(宋時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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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유학자.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중호(仲浩), 호는 행남(杏南). 아버지는 이함(李涵)이다. 도암(陶庵) 이재(李縡)의 문인이 되어 학문으로 감역(監役)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서울에서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로 내려와 살았다. 세상 사람들이 처사(處士)라 불렀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에 있다. 문암(文菴) 이의철(李宜哲)이 묘갈을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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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사언(思彦), 호는 습재(習齋), 졸부(拙夫)이다. 동몽교관 이희선(李喜善)의 아들이다. 부인은 밀양박씨로 첨지중추부사 박주(朴冑)의 딸이고, 음애(陰崖) 이자(李耔)의 외손이다. 이상급은 문과에 급제하여 1603년(선조 36)에 성균관진사가 되었으며, 1606년 증광문과 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권지승문원정자(權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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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 효령대군 이보(李𥙷)의 6세손이며, 이경금(李景嶔)의 아들로 증영의정 이경두(李景㞳)에게 입양되었다. 이성은 진사, 참봉을 거쳐 문한림, 이조참판, 부제학을 역임하였다. 1624년 이괄의 난에 종군하였다가 전사하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에 있고, 이덕형(李德馨)이 묘비 글을 썼다. 완계군(完溪君)으로 훈봉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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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음성군 출신으로 음성현감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성진(聖珍), 호는 정헌(靜軒), 율리사옹(栗里蓑翁).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이지걸(李志傑)이다. 이세근은 윤증(尹拯)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으며, 1697년에 정시문과에 갑과 2등으로 급제하여 사헌부지평이 되었다. 1699년에 음성현감으로 부임하여 사직사우를 창건하였고, 고마청(雇馬廳)을 창설하였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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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명서(明瑞).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이지걸(李志傑)이고, 형은 이세근(李世瑾)이다. 이세진은 1725년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26년 지평으로 붕당의 폐해를 논하는 ‘파붕당(罷朋黨)’을 상소했다가 삼수부로 귀양을 갔다. 1727년 유배에서 풀려난 뒤 필선, 장령, 헌납, 사간을 역임하였다. 1729년 박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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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계순(季純), 호는 은암(隱巖). 조부는 진사 이자침(李自琛)이고, 아버지는 이란(李鸞)이다. 이자침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음성에 은둔하여 있을 때 아버지 이란을 낳았는데, 이란은 일찍 별세하였다. 부인은 장원감 이귀년(李貴年)의 딸이다. 아들 셋을 낳았는데, 이정(李淀), 이용(李溶), 이완(李浣)이다. 이수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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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전주. 자는 중여(重汝), 호는 신암(愼庵). 이시성(李蓍聖)의 6세손이고, 아버지는 이징현(李澂鉉)이다. 이승권은 금계(錦溪) 이근원(李根元)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이승권은 오갑산 아래 세운 옥산영당(玉山影堂)에 선조인 직재(直齋) 이기홍(李箕洪)을 배향하였다. 또한 춘추로 석전제(釋奠祭)를 지내면서 학생들과 더불어 학문을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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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전주. 자는 계통(季通), 호는 경묵당(景黙堂). 이시성은 귀천군 이수(李晬)의 고손이고, 아버지는 직재 이기홍(李箕洪)이다. 이시성은 유학자로 1723년(경종 3)에 변선정(卞先正)의 무간(誣奸)함을 항소하였고, 전관(銓官) 천거를 거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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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종친이자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대년(大年). 태종의 아들 익령군(益寧君)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수천군(秀泉君) 이정은(李貞恩)이고 아버지는 귀기군(貴杞君)이다. 부인 우씨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감찰 정류(鄭鎦)의 딸에게서 영의정 이원익(李元翼)과 현령 이원보(李元輔)를 두었다. 1516년(중종 11) 사마시에 급제하여 귀후서별제, 의금부도사, 내섬시주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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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 자는 징지(澄之), 호는 매죽헌(梅竹軒). 계림부원군 이수일(李守一)의 아들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 정자촌에서 출생하였다. 1924년(인조 2) 무과에 급제하고 1627년 영유현령, 1629년 상원군수, 1630년 숙천부사, 1631년 평안도병마절도사에 올랐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김자점 휘하의 별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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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전주. 자는 유응(幼應), 호는 노가당(老稼堂). 귀천군(龜川君) 이수(李晬)의 5세손으로, 직재 이기홍(李箕洪)의 손자이며, 경묵당 이시성(李蓍聖)의 아들이다. 어려서 가학(家學)을 계승하여, 중형 이능제(李能濟)와 같이 윤봉구(尹鳳九) 문하에서 배워 덕을 쌓았다. 1755년(영조 31) 안윤중(安允中)이 올리는 상소에 가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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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득여(得輿), 호는 관송(觀松)·쌍리(雙里). 좌찬성 이극돈(李克墩)의 후손이며, 이우선(李友善)의 아들이다. 이이첨은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양덕리에서 출생하였다. 천성이 효우하고 제행(制行)이 고결하여 어려서부터 부모를 섬김이 지극하였다. 1593년(선조 26) 광릉참봉에 제수되고 1594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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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야수(野叟), 호는 소옹(素翁). 아버지는 병조참의 이상급(李尙伋)이다. 아들은 이지술(李志述), 이지도(李志道), 이지규(李志逵)이다. 15세에 사서삼경을 통달하였고 장성하여 장유(張維)에게 수학하였다. 1635년(인조 13)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 진사에 올랐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으로 호종하여 원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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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으로 유배된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차야(次野), 호는 음애(陰崖)·몽옹(夢翁)·계옹(溪翁)·풍림거사(楓林居士). 이색(李穡)의 후손이며, 참판 이형증(李亨增)의 손자로, 대사간 이예견(李禮堅)의 아들이다. 부인은 인천채씨로 채수(蔡壽)의 딸이다. 1504년(연산군 10) 식년문과에 장원 급제하였다. 이후 사헌부감찰에 제수되어, 천추사(千秋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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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수부(秀夫), 호는 금호(琴湖)·만은당(晩隱堂). 병조참의 이상급(李尙伋)의 손자이고, 증좌승지 이련(李堜)의 아들이다. 부인은 안동권씨로 진사 권순열(權順悅)의 딸이다. 아들은 이세근(李世瑾), 이세진(李世璡)이다. 이지걸은 3세에 고아가 되어 작은아버지 이인(李寅)에 의탁하여 자랐다. 1654년(효종 5) 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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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종친이자 문신. 본관은 전주. 자는 군미(君美), 호는 애일당(愛日堂). 효령대군의 현손이며, 강성도정 이견손(李堅孫)의 넷째아들이다. 부인은 청주한씨로 대간 한승정(韓承貞)의 딸이다. 1510년(중종 5) 춘추관기사관, 1511년 예문관검열을 거쳐 홍문관수찬, 검토관, 직산현감이 되었다. 1512년 이조좌랑으로 소릉에 관한 상소를 하였다. 1518년 이조좌랑, 봉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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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음성현감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벽진. 자는 여무(汝懋), 호는 외재(畏齋). 이엄(李儼)의 아들이다 이후경은 정구(鄭逑)의 문인으로 영남에서 명유(名儒)로 추앙을 받았다. 광해군 때에 학행으로 천거를 받아 세자익위사세마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에 강화로 왕을 호종하고 돌아와, 이듬해 음성현감이 되었다. 1630년 72세로 죽자 병조참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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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이자 자선사업가.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성언(聖言), 호는 금범(錦帆). 선무공신(宣武功臣) 장충범(張忠範)의 후손이고, 동몽교관(童蒙敎官) 장석영(張錫永)의 아들이다. 장용묵은 어릴 때부터 성품이 효성스럽고 어버이를 섬김에 혼정신성(昏定晨省)을 다하였다. 어머니 최씨가 천어(川漁)를 좋아하여 춥거나 덥거나 날씨에 상관없이 매일 고기를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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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천장(天章). 선무공신(宣武功臣) 장충범(張忠範)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장도홍(張道弘)이다. 장위한은 어버이를 섬김이 극진하였으며, 형제 6명의 우애가 특히 돈독하여 본받을만한 일화가 많이 전해진다. 나이가 차 분거(分居)하여 거처를 정함에 노구솥 하나와 송아지 한 마리, 그리고 간소한 농기구 등을 가지고 몸소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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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정선(旌善), 자는 여견(汝見), 호는 석천(石泉). 정선전씨 안동파로, 아버지는 호조판서 전응조(全應祖)이며, 전용은 5명의 아들을 두었다. 성품이 헌칠하고 우뚝하여 일찍이 궁마(弓馬)와 기예(技藝)를 익혔다. 임진왜란을 만나 사복시(司僕寺)에 속하여 임금·세자 등이 탄 말을 끌던 종7품 잡직인 견마배(牽馬陪)로 선조를 호위하며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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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홍문관교리 정수곤(丁壽崑)의 아들이다. 1520년(중종 15)에 생원시에 급제하였으며, 1530년(중종 25)에는 충무위부사직(忠武衛副司直)을 지냈고, 나중에는 벼슬이 홍문관교리에 이르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 산봉우리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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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 할아버지는 사헌부감찰 정응상(鄭應祥)이며, 아버지는 한훤당(寒喧堂) 김굉필(金宏弼)의 외증손으로 부사맹(副司猛) 정사중(鄭思中)이다.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이환(李煥)의 딸이다. 1555년(명종 10) 13세에 덕계(德溪) 오건(吳健)을 스승으로 모셨고, 겸하여 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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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나주(羅州). 아버지는 교리(校理) 정수곤(丁壽崑)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 덕고개에 살았던 인물로, 1498년(연산군 4)에 22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었다. 1505년(연산군 11)에 사직(司直)이 되었으며, 3년 뒤인 1508년(중종 3)에는 현감을 지냈다. 그의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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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자인(子仁), 호는 우헌(遇軒). 아버지는 정경례(鄭景禮)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도청리에서 생활하였으며, 1573년(선조 6) 17세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어 3년 뒤인 20세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의금부도사, 병조정랑을 거쳤으며, 맹산군수를 지냈다. 1602년(선조 35) 46세에 별세하였다. 저서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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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사고(士皐). 할아버지는 좌의정을 지냈던 정석오(鄭錫五)이고, 아버지는 군수를 역임했던 정양순(鄭養淳)이다. 1768년(영조 44)에 음보(蔭補)로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가 된 이후 장흥고직장(長興庫直長), 의영고주부(義盈庫主簿)를 거쳐 1775년(영조 51)에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 그리고 2년 뒤에 사복시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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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본관은 초계. 자는 응수(應壽), 호는 소죽(小竹). 정창(鄭昌)의 후손이며, 판관 정시혁(鄭時赫)의 9세손이다. 조부는 정홍유(鄭洪猷), 아버지는 정학일(鄭學一)이다. 어머니는 하동정씨로 통덕랑 정해승(鄭海昇)의 딸이다. 부인은 경주이씨로 이다연(李多延)의 딸이다. 아들은 정보영(鄭輔永)·정민영(鄭玟永)·정택영(鄭澤永)이다. 천거로 문묘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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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현감을 지낸 문신. 정문한은 1669년(현종 10)에 음성현감으로 부임하여 1673년까지 재임하였다. 재임 중 1670년과 이듬해인 1671년 두 해에 걸쳐 흉년이 들었는데, 힘을 다해 음성현민을 구휼하여 이름이 크게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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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언술(彦述). 할아버지는 교리를 지낸 정수곤(丁壽崑)이고, 아버지는 현감을 지냈던 정담(丁聃)이다. 1504년(연산군 10)에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에서 태어나 생활하였으며, 26세인 1530년(중종 25)에 생원시에 급제하고 이어 벼슬이 별좌에 이르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 산봉오리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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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유호(攸好), 시호는 정간(貞簡). 정혁선(鄭赫先)의 아들이며 진주목사를 지낸 정동협(鄭東協)은 정석오의 손자이다. 정석오는 1715년(숙종 41)에 식년문과 병과로 급제한 후 검열·문학을 거치고 경종이 즉위하면서 부수찬·교리를 지냈다. 1721년 30세 때 지평으로 김일경(金一鏡)과 함께 노론 사대신(四大臣)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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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불붕(不崩), 호는 월헌(月軒). 소격서령(昭格署令) 정자급(丁子伋)의 아들이며, 교리(校理) 정수곤(丁壽崑)의 아우이다. 정수강은 1474년(성종 5) 20세에 진사가 되고 1477년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을 지냈다. 1482년에는 정조사(正朝使)의 서장관(書狀官)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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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불건(不騫). 소격서령(昭格署令)을 지낸 정자급(丁子伋)의 아들이며, 호조참판 정수강(丁壽崗)의 형이다. 정수곤의 아들은 현감을 지낸 정담(丁聃)이고, 처는 상주김씨(尙州金氏)다. 정수곤은 1472년(성종 3)에 식년(式年)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 교리(校理)를 지내고, 그 후 공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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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성공(聖功)이라 하다가 후에 회숙(晦淑)으로 고쳤다, 할아버지는 정혁선(鄭赫先)이며, 아버지는 좌의정을 지냈던 정석오(鄭錫五)이다. 1745년(영조 21)에 음보(蔭補)로 돈령부참봉(敦寧府參奉),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를 지내고 5년 뒤인 1750년(영조 26)에는 광흥창수(廣興倉守)가 되었다. 이듬해 개령현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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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경국(景國), 호는 유당(留堂). 정희조(鄭喜朝)의 아들이다. 정인학은 1870년(고종 7) 31세로 생원시에 합격하고 1880년 알성문과(謁聖文科) 병과에 급제하였다. 처음에 주서(注書)로 기용되어 다음해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와 응교(應敎)를 거쳐 병조정랑(兵曹正郞)이 되었다. 1884년에는 이조참판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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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백헌(佰憲), 호는 해관(海觀). 아버지는 동래부사를 지낸 정인학(鄭寅學)이다.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났으며, 1885년(고종 22) 22살에 증광문과 병과에 급제하였으며, 4년 뒤인 1889년(고종 26)에는 부교리, 사간을 지내고 이듬해에 응교(應敎), 장령(掌令)을 지냈다. 1891년(고종 28) 28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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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초계. 자는 향숙(饗叔). 아버지는 호조참의를 역임한 효자 정국노(鄭國櫓)이다. 조선 선조 때에 태릉참봉을 지내고, 봉사(奉事), 찰방(察訪), 부호군(副護軍)을 거쳐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랐다. 만년에 고향으로 내려와 김정현, 조옥 등과 함께 향산의 고사(중국 당나라의 향산거사 백낙천의 향산구로회)를 본받아 칠십회(七十會)를 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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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양. 자는 경관(景觀), 호는 설죽(雪竹). 아버지는 참봉 조유백(趙惟白)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금석리 바디실에서 출생하고 그곳에서 살았다. 1606년(선조 39) 진사시에 합격하고 바로 증광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608년(선조 41) 승정원가주서로 선조의 임종을 지켰으며, 광해군이 즉위하자 예문관검열에 임용되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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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자직(子直), 호는 동강(東岡). 예조판서 조형(趙珩)의 아들이며, 할아버지는 승지 조희보(趙希輔)이다. 조상우는 1657년(효종 8) 17세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천거되어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연천현감(連川縣監)을 지냈다. 1675년(숙종 1)에는 스승인 송준길(宋浚吉)이 삭직을 당하자 홍득우(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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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군계(君啓). 판도판서(判圖判書) 조돈(趙暾)의 아들이다. 조인옥은 1373년(공민왕 22)에 음보(蔭補)로 생원이 되고 1387년(우왕 13) 판전의시사(判典儀寺事)를 거쳐 이듬해 우군도통사(右軍都統使) 이성계의 휘하에 종군하여 최영(崔塋) 등 구세력 숙청에 가담하였다. 위화도에서 회군할 때 남은(南誾) 등과 더불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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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군헌(君獻), 호는 취병(翠屛). 승지(承旨) 조희보(趙希輔)의 아들이고,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를 지낸 조상우(趙相愚)는 그의 아들이다. 조형은 어려서 장난이 심하였으나 일찍부터 공부를 시작하여 9세에 경서(經書)를 해득하여 세상 사람들이 경탄하였다. 1630년(인조 8)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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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선비. 본관은 신안(新安). 자는 광여(光汝). 문공 주희(朱憙)의 26대손이다. 주응동은 청빈하게 살았으나 서원을 건립할 자격이 없었다. 이에 사림회의(士林會議)를 통하여 서류를 관아에 제출하여, 순영(巡營)으로부터 당우를 건축하라는 단자(單子)를 받았다. 1856년(철종 7)에 주응동은 안성에 사는 김문웅으로부터 문공 주희(朱憙)의 영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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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기지(耆之), 호는 나재(懶齋) 또는 청허자(淸虛子). 아버지는 부사를 지냈던 채신보(蔡申葆)이며 할아버지는 사예(司藝) 채윤(蔡倫)이다. 채수는 1468년(세조 14)에 생원시에 급제하고 1469년에 추장문과(秋場文科)에 장원하여 홍문관부수찬(弘文館副修撰)에 제수되었고,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이 되어 『세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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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자휴(子休), 호는 만계(灣溪). 아버지는 사예(司藝) 채륜(蔡倫)이고, 아들은 나재(懶齋) 채수(蔡壽)이다. 채신보는 1438년(세종 20) 18세에 진사(進士)가 되고 함창현감(咸昌縣監)을 거쳐 1458년(세조 4)부터 1465년(세조 11년)까지 7년간을 음성현감으로 재직했다. 그 후 경산현감(慶山縣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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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수겸(秀謙). 지헌(之軒) 채유희가 형이고, 아들로 우담(雩潭) 채득기(蔡得沂)가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삼용리 물언덕에서 태어났다.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한 후 1592년(선조 25) 31세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채유희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전공을 세웠으며, 그 뒤 봉상시직장(奉常寺直長)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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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 문신. 채정은 본래 음성의 이속(吏屬)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과거에 급제하였다. 고려 후기인 무인집권기 때 동도(東都)[지금의 경주]의 장서기(掌書記)가 되어 청렴하게 자기 직분을 다하고 백성들에게 많은 덕을 베풀었다. 임기를 마치고 국학학정(國學學正)이 되었는데 칠재(七齋: 고려 예종 때 국자감에 설치한 일곱 과목의 전문 강좌)의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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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활동한 의병. 최난수는 임진왜란때에 충청북도 음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공을 세우고서도 조정의 포상을 사양한 뒤 전사한 의인이다. 최난수(崔鸞壽)은 고려 좌참찬 최유경(崔有慶)의 5세손이고, 선략부호군 최우령(崔禹齡)의 아들이다. 최난수는 참봉을 제수하였으나 나가지 않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반인후(潘仁後)와 더불어 의병을 모집하여 전과를 올렸다.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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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에 활동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성중(成仲), 호는 사우당(四友堂). 관찰사 최상익(崔商翼)이 형이다. 1674년(현종 15)에 40세에 사마시에 합격한 후 군자감직장(軍資監直長)을 지냈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소의장씨(昭儀張氏)의 아들을 원자로 세우려는 숙종의 뜻을 서인 송시열(宋時烈) 등이 반대하였다. 이에 실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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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 자는 경렬(景烈), 호는 소성(小醒). 아버지는 효자 최재기(崔在沂)이다. 1852년(철종 3) 10월 16일에 창경궁 춘당대에서 열린 생원시에서 장원을 하여 철종의 찬사를 받았다. 입격한 시부(試賦)가 남아 있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 매봉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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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항(汝恒), 호는 설파(雪坡). 1819년(순조 19)에 충청북도 음성 지역에서 태어나 1851년(철종 2) 32살에 정시문과에 급제하였다. 사헌부집의까지 지냈으나,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시와 술을 벗 삼으며 여생을 보냈다. 저서로 『설파집(雪坡集)』을 남겼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 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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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진양(晋陽). 호는 지비당(知非堂). 5대조는 동지중추부사 하우명(河友明), 고조부는 옥과현감 하철행(河哲行), 증조부는 통덕랑 하영담(河永淡), 할아버지는 하승세(河承世), 아버지는 전라도수군절도사 하덕록(河德祿)이다. 어머니는 경주이씨로 이덕승(李德承)의 딸이다. 아들은 셋으로 첨지중추부사 하변(河汴), 하흡(河潝), 첨지중추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