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09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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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天生山城 |
영어의미역 | Cheonsaeng Mountain Fortress |
이칭/별칭 | 방티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 산 42-2 외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박승규 |
성격 | 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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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석성(내성) 및 토석 혼축성(외성)|산정식 산성 |
관련인물 | 곽재우 |
높이 | 해발 407m |
둘레 | 내성 1,298m|외성 1,322m |
면적 | 내성 47,409㎡|외성 55,100㎡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 산 42-2 외 11필지![]()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북도 기념물 제12호 |
문화재 지정일 | 1974년 12월 10일![]() |
[정의]
신라시대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에 위치한 산성.
[개설]
천생산성은 금오산성과 더불어 낙동강을 끼고 동서로 마주하면서 가산산성과 연결되는 국방의 요충지이다. 천생산은 정상이 일자봉(一字峯)으로 생김새가 특이하여 하늘이 내셨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속칭 함지박을 엎어놓은 듯하다 해서 방티산이라고도 부른다.
[건립경위]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쌓았다는 기록이 『인동읍지(仁同邑誌)』, 『여지도서(輿地圖書)』, 『만기요람(萬機要覽)』,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등에 실려 있지만 확실하지 않으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천생산성의 위치와 규모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그 이전에 축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천생산성의 성내와 외성의 북쪽 능선에 삼국시대(신라) 고분군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실제는 이 시기부터 산성이 축성되었거나 사용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 후 산성은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志)』의 기록으로 보아 폐성되었다가 임진왜란 이후 수축된 것으로 파악된다.
[위치]
천생산성은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에 소재하는 해발 407m의 천생산 8~9부 능선을 따라 거의 수평이 되도록 축조된 산성이다. 내성과 외성으로 구분되며, 북쪽에 위치하는 산성이 외성이다.
[형태]
천생산성은 산정식(山頂式) 산성으로 석성(石城)인 내성과 토석 혼축의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황]
천생산성은 내성의 총 둘레가 약 1,298m이며, 면적은 47,409㎡이다. 북쪽의 외성은 총 둘레가 약 1,322m이며, 면적은 55,100㎡이다. 성내에는 4개의 못이 있으며, 남문지·북문지·동문지가 남아 있고, 1개소의 암문지(暗門址)와 수구문지(水口門址)도 남아 있다. 천생산성 내에는 장대(將臺)·산성창(山城倉)·군기고(軍器庫)와 만지암(萬持庵)이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의의와 평가]
천생산성은 토석 혼축성인 외성과 석성인 내성으로 이루어져 있는 특이한 이중구조를 하고 있으며, 험준한 자연 암반을 이용한 요새이다. 처음 축성한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외성과 그 주변에 분포하는 삼국시대(신라) 고분군으로 보아 대략 5~6세기경부터 축성 또는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폐성되었다가 임진왜란 이후에 수축하여 일정기간 활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천생산성은 특이한 전경과 역사적 가치 및 주변 산하를 조망할 수 있는 관광 자원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으므로 발굴조사에 의한 기초 자료 확보를 통해 유적의 보존·정비 사업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