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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구미문화대전 > 구미의 마을 이야기 > 신동(새올) > 인동장씨 남산파의 세거지 > 소중한 마을경관

  • 집성마을 경관이 품은 뜻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세상의 온갖 사물을 이해하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여기서 전통적인 마을의 모듬살이를 이해하기 위해 채택한 방법 중 하나가 경관(景觀, Landscape)을 통한 이해이다. 마을 경관은 기록이 없는 마을의 역사와 주민의 삶의 양태를 보여준다. 집성마을은 일반적으로 다음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먼저 종가(宗家)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 다음으로 이름난 조상과 관련된 건축...

  • 모원당과 청천당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사천공이 살림 난 집은 5대를 이어오다가 임진왜란 때에 완전히 소실되었다. 그래서 여헌선생은 1592년 4월에 피란을 나가서 난리가 평정되어도 고향에 돌아올 수가 없어서 15년 동안이나 유랑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1606년에 만회당(晩悔堂)공이 주동이 되어 모원당(慕遠堂)이 준공되자 비로소 옛터에 안주하게 되었다. 이때 선생의 식구는 선생 내외분과 7세된 아들 응일(應一)뿐이었...

  • 남산파의 상징, 동락서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동락서원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1554~1637)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655년(효종 6)에 제자들이 건립한 건물이다. 애초에는 부지암정사(不知巖精舍)였는데, 1610년 만회당공이 중심이 되어 동문제생이 협력하여 부지암정사를 창건하고 선생의 강도지소로 삼은 것이다. 이곳은 여헌 연보에 의하면 서진사의 옛 터라 했고 만회당 연보에 의하면 만회당 외가의 정기라 했...

  • 조상을 추모하는 재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우리나라에는 재사(齋舍)가 많다. 이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풍경이다. 외국인이 볼 때는 일년내내 비워둘 집을 왜 짓느냐고 하면서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재사는 숭조목족(崇祖睦族)이라는 절대 가치의 상징이다. 이것은 우리의 자랑이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문화유산인 것이다. 조상을 위한 재사 한 채를 짓기 위해서 모든 종인(宗人)...

  • 홀로 남은 맞배집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야송댁(여, 94세) 할머니가 혼자 살고 계신 이 목조 기와집은 신동 마을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전통 가옥이다. 이 집은 일자형(一字形)의 사랑채와 안채, 아래채, 마구간채가 튼 구(口)자형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 기와집인데, 평면은 좌측에 부엌 1칸을 두고 우측으로는 사랑방 2칸과 사랑마루 1칸을 연접시켰으며 전면(前面)에는 쪽마루를 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