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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구미문화대전 > 구미의 마을 이야기 > 신동(새올) > 인동장씨 남산파의 세거지 > 인동장씨 남산파의 세상

  • 새올은 인동장씨의 텃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약 600년전(1424년경) 강릉유씨(江陵劉氏[劉仁悌, 字 而恭, 號 松齋, 大提學]가 인동(仁同) 고을에 처음 들어와 정착하였다. 뒤이어 함안조씨(咸安趙氏)[趙淵, 字 靜鄕, 號 耐軒, 贈 戶曹參議]가 이거(移居)해 왔다. 1580년경 인동장씨(仁同張氏)[張顯道, 字 德優, 號 月浦 贈 吏曹參判]가 이거해 와서 ‘새로운 마을’을 형성하게 되면서,‘새월(새올)’즉 신곡(新谷)이라...

  • 남산파의 세계(世系)와 입향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인동장씨 세계(世系)에 따르면, 시조를 장금용으로 하고 있으며 그 이후 15세에 해당하는 장우(張俁)가 인동에 처음 들어 온 입향조이며, 19세에 해당하는 장열과 장희의 후손들이 신동 마을의 주류를 이루었다. 다음의 세계표는 인동장씨 세계를 간추려, 인동 입향조와 신동 입향조를 표시한 것이다. 〈표〉인동장씨 세계표 중 인동 입향조와 신동 입향조 19세인 열을 판서공, 희를 승지공...

  • ‘남산파’와 남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남산은 원래 동네 이름이 아니었다. 지금의 남산 동네 뒤에 있는 산이 관아(官衙)에서 보아 남쪽에 있는 산이라 해서 남산이라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그 산 아래에 있는 마을을 남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19세인 열을 판서공, 희를 승지공이라 부르는데 이 판서공과 승지공의 후손이 주로 새올(신곡)을 본거지로 삼고 있다. 판서공의 후손은 주로 안마와 거리마에 거주하였고, 승지공의 후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