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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증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1144
한자 朴增輝
영어음역 Bak Jeunghwi
이칭/별칭 회중(晦中),낙정(洛汀)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봉곡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용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봉곡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626년연표보기
몰년 1673년연표보기
본관 밀양
대표관직 사간원사간

[정의]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개설]

박증휘는 유배를 감수하면서 용기 있게 많은 상소를 올려 국정 쇄신에 힘을 보탠 인물로, 현종조에 유명한 칠간신(七諫臣) 중의 하나이다.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회중(晦中), 호는 낙정(洛汀). 할아버지는 경주부윤 박수홍(朴守弘), 아버지는 효자 남강(南江) 박진환(朴震煥), 어머니는 김선(金璇)이다.

[활동사항]

박증휘는 1648년(인조 26)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54년(효종 5) 사헌부지평이 되고, 다음 해 전라도암행어사가 되어 관리들의 비리와 민폐를 시정하기 위해 진력하였다. 1660년(현종 1) 사간원정언이 되어 이도(吏道)의 문란에 대해 소를 올렸다. 특히 황주판관인 조세환(趙世煥)의 비리를 지적하고 국가 기강의 해이를 일일이 거론하였다.

이후 사헌부장령·사간원헌납·사헌부집의를 거쳐 1668년(현종 9) 사간원사간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대사헌 박장원(朴長遠)과 함께 구례현감 이상직(李尙稷)과 군수를 지낸 이극화(李克和)의 두 가문이 혼인을 맺었다가 파기한 것이 예속을 혼란시키는 큰 죄가 되므로 마땅히 벌을 가해야 한다고 상소하여 그대로 실행되게 하였다.

1672년(현종 13)에는 사직의 소를 올릴 때, 흉년으로 굶주리고 있는 백성들에게 마땅히 관곡을 대여해 주어야 하는데 전혀 실행되지 않고 있다며 영남 지방의 폐정을 지적하였으며 아울러 전세와 공물의 부담이 너무 지나치므로 시정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상훈과 추모]

사후에 손자 박봉령(朴鳳齡)이 높은 벼슬에 오르자 홍문관부제학에 증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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