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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1960
한자 積林里石佛立像
영어의미역 The Stone Sitting Buddha Statue in Jeongnim-ri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불상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적림리 원터마을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이희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석불
제작시기/일시 고려시대
재질 석재
높이 188.5㎝
소장처 주소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적림리 원터마을지도보기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적림리 원터마을에 있는 고려시대 석불.

[개설]

적림리 석불입상은 원래 산동지서(山東支署) 오른쪽 논 가운데에 하단부가 매몰된 채 서 있었는데, 적원사의 주지인 박영호에 의하면 1972년에 미신타파운동이 일어나자 마을사람들이 이 불상을 깨부수려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박영호가 불상을 자신의 집으로 모시게 되었고, 불상을 모신 뒤 참배객들이 자꾸 모여들자 적원사(積元寺)라 불렀다고 한다.

[형태]

불상을 고정시키기 위하여 높이 20㎝ 정도의 시멘트 단을 마련하여 일부 모습밖에 확인할 수 없다. 두상 위에는 8각의 개석이 놓여 있는데, 이 개석은 반파되었으나 각 합각이 뚜렷하며, 전각의 반전도 경쾌한 편이고, 합각머리의 삼산형 귀꽃도 주목된다. 소발의 두정인 육계 부분은 파손되었고, 양쪽 귀는 어깨 위까지 길게 늘어졌으며 상호는 원만하나 상호의 각부는 입만 약간 남아 있을 뿐이고, 미간의 백호공(白毫孔)과 두 눈에는 공혈(孔穴)을 만들었으며, 코의 파손이 심하다.

다른 불상들에 비하여 목이 짧기 때문에 앞면에만 원호로 삼도를 표시하였으며, 법의는 우견편단(右肩偏袒)하였는데, 마멸이 심하여 왼쪽 팔에 약간의 의문(衣文)이 있을 뿐 하부에서는 의문을 볼 수 없다.

수인은 왼손을 가슴에 들어 반내장하였고, 오른손은 오른쪽 다리에 부착하여 외장하였는데, 팔찌의 장식이 뚜렷하며 다섯 손가락의 조각은 왼손과 같이 사실적이고 온유한 수법을 보이고 있다. 묻혀 있던 무릎 이하에는 의문 등의 별다른 조식이 없다. 전체 높이 188.5㎝, 상(像) 높이 150㎝이며, 두상 위는 8각 개석이 놓여 있으나 반파되었다.

[특징]

적림리 석불입상은 안면이 마멸되었지만 자비로운 원형을 보여주고 있다. 주민의 말에 의하면 부녀자들이 부처의 눈과 코를 파먹으면 자식을 낳을 수 있다는 속설을 믿고 마구 파헤쳐서 원형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적림리 석불입상 두상 위의 반파된 8각 개석은 파손된 부분에 원형 구멍의 시공 흔적이 뚜렷하고, 검은 유연(油煙)이 남아 있는 점으로 보아 팔각원당형의 부도나 석등의 부재로 추정된다. 목이 짧아서 양 어깨가 올라간 듯 보이며, 전체적으로 균형을 잃은 둔중한 느낌을 주고 있으나 동체의 조각 수법이나 안상 등으로 보아 조성 연대는 고려 전기 이후로 보이며, 마멸이 심하나 석불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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