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1977
한자 龜尾桃李寺石塔
영어의미역 Stone Pagoda of Dorisa Temple
이칭/별칭 화엄석탑,도리사 모전석탑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403[도리사로 526]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이희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석탑
양식 이형석탑
건립시기/연도 고려시대
재질 석재
높이 445㎝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403[도리사로 526]지도보기
소유자 도리사
문화재 지정번호 보물 제470호
문화재 지정일 1968년 12월 19일연표보기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도리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

[개설]

화엄석탑(華嚴石塔)이라 부르는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우리나라 석탑 가운데 같은 유형을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로 조성되었다. 해평면 송곡리 도리사 극락전 앞뜰에 위치한다.

[형태]

지대석은 10장의 장대석으로 결구(結構)되었는데, 상면에 각형일단(角形一段)의 받침을 각출하여 기단부를 받치고 있다. 기단부 네 모퉁이에 방주(方柱)를 세우고 그 사이 각 면에 장방형의 판석을 세워 병풍처럼 둘러쌓았고, 동면·서면· 남면은 6장이고 북면은 7장이며, 남면 중앙부에는 종형으로 장방형의 두 문우(門隅)가 음각되어 있다.

기단 갑석도 네 모퉁이에 장대한 판석을 놓고 그 사이에 수매(數枚)의 돌로 결구했는데 각 면이 다같이 3장씩이다. 갑석 윗면에는 별다른 구조가 없고, 평면 위에 탑신이 놓였는데, 각층이 10개의 돌로 구성되어 있다. 탑신은 삼층으로 초층은 각 면이 장방형의 석재로 이루어졌는데, 동면은 15매석이고 남면은 13매석이다.

탑신 위의 지붕[옥개]은 일반형 석탑의 지붕돌 형태와는 달리 지붕형이 아니어서 받침이 각출되지 않았고, 그 위에 낙수면도 없으며, 모전 석탑에서 볼 수 있듯이 윗면에 여러 개의 층단이 마련되어 있다. 각 층단은 기단부 갑석과 같이 네 귀에 장대석을 배치하고 그 사이를 몇 장의 장방형 석재로 결구하였고, 그 위에 2층의 층단을 놓았는데 그 층단은 상하층 동쪽 면이 4매석으로 구성되었으며, 남면은 하층이 5매석, 상층은 4매석이다.

2층 몸체[옥신]는 각 면마다 2층으로 장방형 석재를 중첩하여 조립하였는데, 동면은 7매석이고 남면은 8매석이다. 남면에는 중앙에 문비형을 모각한 판석을 세로로 끼우고 그 위의 지붕 갑석은 네 귀에 장대석을 배치하고 각 면마다 그 사이를 장방형 석재로 메웠는데, 동면은 2매석이고 남면은 3매의 작은 석재로 구성되었다.

그 위의 층단 받침은 3단이다. 3층 몸체와 지붕은 각각 한 돌로 조성되었고 밑에 각형 1단의 받침이 있다. 낙수면에는 2단으로 굄을 만들어 그 위에 상륜부를 받치고 있는데 1,2층의 그것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정상에는 원형의 앙화와 보주가 놓였다. 앙화석에는 단엽의 앙련이 조각되었는데, 각 연봉의 줄기가 양쪽으로 꽃가지를 뻗치면서 아래까지 연결되고 있다. 그리고 연봉과 연봉 사이에는 화판(花瓣)에 연화(蓮花)장식이 양각되어 있다.

[현황]

구미 도리사 석탑극락전 앞뜰에 세워져 있으며, 일반 석탑과는 형태를 달리하는 특이한 모습이다. 석탑 주변을 수목이 둘러쌓고 있어 자연 통풍과 건조가 원만하지 못하고 습하기 때문에 초본류 및 지의류가 석탑 전체를 뒤덮고 있었으며, 각층 상부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는데, 2004년 지의류 제거 작업을 하여 보수· 복원해 놓았다.

[의의와 평가]

구미 도리사 석탑은 5개의 층단을 이루고 있는데, 맨 아래층은 기단일 것이고, 위의 두 층은 신부이겠지만, 맨 위의 두 층은 포개진 노반(露盤)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 맨 위 한 층만 노반으로 보고 신부를 세 층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한편 구미 도리사 석탑의 지붕돌 윗부분 층단과 신부의 구성 형식으로 보아 모전 석탑처럼 보이기도 한다.

구조상 지붕 낙수면이 층단을 이루고 있는 점이라든지 각 층마다 작은 석재를 중첩 결구하여 탑신부를 형성하고 있는 점 등으로 보아 오히려 모전 석탑의 계열에 가깝다. 이 탑을 현지에서는 ‘화엄석탑(華嚴石塔)’이라 일컫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확실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기단부의 남쪽 면 가운데에는 세로로 긴 장방형의 문비가 있어 사리 봉안의 상징성을 보이고 있다. 축조 연대는 남면 상하부에 모각된 양 문비형의 양식과 상륜부의 조각을 비롯한 각 부재의 돌을 다듬은 수법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중엽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