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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한리 사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1990
한자 鳳漢里寺址
영어의미역 Temple Site in Bonghan-ri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봉한리 산 75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이희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지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삼국시대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봉한리 산 75 지도보기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봉한리에 있는 삼국시대 절터.

[개설]

국보 제182호, 제183호, 제184호로 지정된 불상이 발견된 삼국시대 절터이다.

[위치]

봉한리 마을에서 2.5㎞ 떨어진 ‘대밭골’ 정상부 근처에 사지가 위치하고 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봉한리 사지에서 1976년 3월 11일 선산군 고아면 봉한1리 새마을 농로 개설 공사 때 보물 제95호와 같은 모양의 통일신라시대의 금동관음보살입상 두 점과 보물 제328호와 같은 모양의 금동약사여래입상 1점이 발견되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불상들은 발견되기 70여 년 전에 어느 농부에 의하여 ‘대밭골’에서 발견되었다가, 몇 년 뒤 현재의 장소에 다시 묻었던 것이라고 전하나 근거는 미약하다.

[현황]

당시 발견된 금동여래입상과 금동관음보살상은 각각 국보 제182호, 제183호, 제184호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되고 있다

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은 국보 182호로, 몸의 형태나 세부 표현이 부드럽고 단순하며, 옷주름이 정리되어서 단정한 인상을 주고 있고,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생동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아직 형태가 단순하고 자세가 굳어 있으며, 특히 날카로운 얼굴의 표현 수법에서 긴장감이 느껴지는 점으로 보아 만든 시기는 8세기 초로 추정된다.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은 국보 제183호이다. 현재 꽃장식 관의 왼쪽 윗부분과 양 손 아래로 내려뜨린 옷자락 및 왼손 손가락 일부가 파손된 상태이며, 광배(光背) 또한 없어졌다. 얼굴과 오른손에 녹이 슬어 있으나 도금 상태는 비교적 좋은 편이다. 전체적인 균형감이 좋고 조각 기법이 뛰어나, 통일신라 이전의 보살상을 대표할 만한 금동상이다.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은 국보 제184호로, 전체적으로 근엄하고 당당한 모습이다. 중국적인 요소가 강한 복잡하고 화려한 장신구의 표현이 매우 특이한 이 보살상은 7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시기 금동보살상으로서는 유례가 드문 작품으로 가치가 매우 크다.

[의의와 평가]

불상이 발견된 곳은 옛날에 사찰이 있던 곳으로, 절 이름은 알 수 없으나, 곳곳에 사찰 유지로 추정되는 삼국시대의 옛 기와조각과 토기조각들, 석재들이 많이 출토되어서 절터였던 것으로 추정한다. 정밀 발굴 조사를 실시하면 사역의 범위와 창건 시대, 경영 시대 등을 확인할 수 있고, 많은 양의 통일신라시대 유물이 지하에 묻혀 있다고 판단되므로 매우 중요한 사지로서 지속적인 보호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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