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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2115
한자 南思舜旌閭扁額
영어의미역 Jeongryeo Plaque of Nam Sasun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산촌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광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편액
제작시기/일시 1864년 11월연표보기
제작지역 구미시 옥성면
재질 목재
높이 30㎝
너비 172㎝
소장처 남사순 정려각
소장처 주소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산촌리
소유자 영양남씨 종중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산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남사순(南思舜)의 정려편액.

[개설]

남사순은 영양인(英陽人)으로 자는 사효, 호는 충의당이다. 어려서부터 천성이 충량(忠良)하고 재질이 뛰어나 어른들이 큰 인물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 장년이 되어 전력부위용양위좌부장으로서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임금을 보위할 때에 성의를 다하였다.

병자호란이 나고 호성공신(扈聖功臣)이 되었으며, 사후 통훈대부장악원정을 증직 받았으며, 고종(高宗) 때는 통정대부병조참의를 추증받았다. 조정에서 정려를 내려 ‘충신남사순지문(忠臣南思舜之門)’이라 하고, 단청(丹靑)으로 집을 지어 후세에 귀감이 되게 하였다.

[형태]

편액은 172×30㎝의 판목에 주칠을 하였고, 정명(旌銘)은 ‘충신증통훈대부장악원정행전력부위용양위좌부장증통정대부병조참의남사순지문(忠臣贈通訓大夫掌樂院正行展力副尉龍驤衛左部將贈通政大夫兵曹參議南思舜之門)’으로, 글자의 크기는 5×6㎝이며, 정려 연명은 ‘상지원년갑자십일월일명정(上之元年甲子十一月日命旌)’으로 1864년(고종 1)이다.

[특징]

단칸 정려각 내 후벽에 정문(旌門)을 세우고 편액을 걸었다. 1990년 8월에 정려비를 세웠다. 제명은 ‘증통정대부병조참의충의당남공휘사순정려비(贈通政大夫兵曹參議忠義堂南公諱思舜旌閭碑)’이다.

[의의와 평가]

옥성면 산촌리에 세거한 영양남씨(英陽南氏) 일문의 역사와 조선시대 충효열(忠孝烈)에 바탕을 둔 유교적인 이념으로 왕을 호종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표(旌表)한 것으로, 역사적으로 그 의의가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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