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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송리 동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2624
한자 上松里洞祭
영어의미역 Village-ritual Ceremony of Sangsong-ri
이칭/별칭 동고사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상송리지도보기
집필자 석대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신앙|마을신앙|마을 제사
의례시기/일시 1월 15일(음력)
의례장소 마을 뒷산|마을 가운데|마을 앞
신당/신체 산제장|정자나무|조산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상송리에서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상송리란 지명은 예전에 이곳에 살던 일곱 성씨가 모두 마음씨가 곧고 결백하여 연악산의 상봉 상자(上字), 결백을 상징하는 소나무 송자(松字)를 따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상송리 동제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 상당과 하당 그리고 마을입구 조산 모두 세 곳의 제당에서 주민 공동으로 지내는 마을 제사이다. 이를 ‘동고사’라 부르기도 한다.

[연원 및 변천]

상송리는 1675년경에 이백용(李伯龍)이라는 선비가 정착하였고, 1681년경 이씨·서씨·배씨·윤씨·김씨·박씨·강씨 등 일곱 성씨가 들어와 살면서 형성된 자연마을이라고 전한다. 350여년 전후로 형성된 동제는 일곱 성씨가 ‘성밑’이라는 곳에 성을 쌓고 제사를 지냈으며, 또 일곱 성씨가 각각 한 그루씩 나무를 심은 것이 마을 정자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긴 세월 동안 마을 사람의 정성이 담긴 동제도 새마을운동을 벌이던 1978년 무렵에 끊어졌다. ‘상당’에 있던 소나무도 지금은 밑둥만 남아 있고, 조산도 새마을사업 때 길을 넓히면서 없어졌다.

[신당/신체]

상송리 동제를 지내던 장소는 모두 세 곳으로 ‘상당’ 또는 ‘국사당’이라 부르는 마을 뒷산의 산제장에서 먼저 제를 지낸 후 마을 내에 있는 여러 그루의 정자나무로 이루어진 ‘하당’에서 정성을 들였다. 마지막으로 현재 마을 앞 정미소 부근에 있었다는 조산을 위하였는데, 새마을운동 사업 때 길을 내면서 없앴다.

상당에는 제단과 여러 그루의 소나무가 있었으나 지금은 바람에 쓰러져 썩은 밑둥만 남았다. 제단 위에는 말 모양의 토우를 몇 개 모셔 놓았는데 제가 끊긴 후 점쟁이가 몰래 가져갔다고 한다. 상당의 소나무가 죽으면 하당에서 제 지낼 준비를 할 때 필요한 땔감으로 사용했다. 6·25전쟁 때 동고사를 지내는 상당 쪽으로는 총을 쏴도 총알이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동제를 지낼 때만 해도 하당에는 다섯 그루의 정자나무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네 그루만 남아 있다. 원래 그 곳에는 일곱 그루의 나무가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배를 만든다는 이유로 한 그루를 베어갔다. 그 후 동네 아이들이 속이 썩은 빈 나무 안에서 불장난을 하다가 남아 있던 여섯 그루의 나무 중 한 그루가 불에 탔다고 한다. 정자나무의 껍데기가 떨어지더라도 모시던 나무이기 때문에 함부로 건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절차]

정초에 총회를 열어 제관과 그를 도와줄 부제관을 각각 한 명씩 선출한다. 제관은 생기복덕을 가려 마을에서 가장 깨끗한 사람이 맡게 된다. 제관은 일주일 동안 목욕재계를 하고, 부부가 각방을 쓰는 등 정성을 들여야 한다. 또한 술과 담배를 금하며 외출을 자제하였다. 생기복덕이 맞는 사람이라도 장가를 두 번 간 사람은 제관을 맡을 수 없다. 제관은 제 지내기 3일 전부터 제 지내는 날까지 상당의 ‘뒷골’이라 부르는 옹당샘의 물을 매일 퍼야 한다.

동제를 지낼 때에는 삼일 동안 금기를 해야 한다. 제 지내기 3일 전에 다른 마을에서 상송으로 들어오는 입구마다 금줄을 쳐 놓는다. 금줄은 왼새끼를 꼬아 문종이를 끼워 만든다. 금줄을 치면 외부인은 물론, 외지에 나갔던 마을 주민이라도 들어오지 못하였다. 금줄은 제를 지낸 후 한쪽으로 거둬 돌멩이로 눌러 놓는다. 황토의 경우 각 제장에 15일 새벽에 뿌려 놓는다.

온 동민들은 제 지내기 하루 전에 비린 것을 먹지 않고 고기를 입에 대지 않는 등 정성을 들여야 한다. 또한 당일 날 새벽 각자의 집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린다. 마을 내 황토를 퍼가는 장소가 따로 있다. 이곳에서 제일 먼저 흙을 퍼 가면 복이 온다고 하여 가는 도중 서로 만나더라도 인사조차 나누지 않고 앞을 다투어 가져갔다고 했다. 황토는 귀신이 자빠지지 않고 찾아오라는 길 안내 표시라고 한다.

자정 무렵 상당에 오른다. 상당에 올라가는 제물은 돼지머리·마른 명태·문어·가오리·조기·삼실과·밥·시루떡 등으로, 제일을 3~4일 앞두고 제관이 ‘공성장’에 가서 장만한다. 돼지머리의 경우 마을에서 기르던 수퇘지를 잡는데, 정초 마을총회를 열어 제관을 뽑으면서 그 해 제물로 바칠 돼지를 함께 결정한다. 밥은 ‘뒷골’의 샘에서 씻은 후 미리 준비한 나무로 직접 지어 솥째 올린다. 이때 상당의 제단까지 쉬지 않고 단 한 번에 옮겨야 한다. 술은 막걸리를 쓴다.

제관은 동네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소지·산신령소지·제관소지 등을 올리며 정성을 들인다. 산제를 지내면 호랑이가 온다는 설이 있다. 제사를 잘 지내면 제물을 던져 주었을 때 호랑이가 먹는 소리가 나지 않으며, 정성이 부족하면 먹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또한 제사를 잘못 지내면 그 해 아이들이 홍진으로 많이 죽는다고 한다. 상당의 제가 끝난 후 횃불로 신호를 하면 하당에서 제 지낼 준비를 한다. 산제장에서 산을 내려오는 시각은 대략 3~4시 정도라고 한다.

하당에서 제를 지낼 때는 제관 이외에 마을 동장도 함께 참여한다. 상당과 달리 소지종이를 올리지 않고 간소하게 정성을 들인다. 동제를 지내는 날 만큼은 조용히 보내야 하기 때문에 칼질조차 삼가하였으며, 제 지내는 시간 동안 바깥출입을 자제하였다. 동고사 때 사용한 제기는 마을회관에 보관한다. 제물은 제관 집으로 가져와 그 다음날 동민들이 모여 음복하였다.

[부대행사]

상송리 동제를 마치고 난 다음날 아침에 동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음복을 하고 풍물을 치며 논다. 상송리 동제 때 필요한 비용은 집집마다 추렴한 돈으로 충당하는데, 음복을 하고 모여서 풍물을 치며 놀 때 결산을 본다. 제관과 부제관은 수고한 대가로 일 년 동안 마을 부역을 면제 받는다. 제관을 맡았던 사람은 금전적으로 이득이 없어도 그 해 일 년간은 괜히 마음이 기쁘고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든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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